스타크래프트와 공공의 이익

한국 e스포츠협회,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케스파(KeSPA)라고 불리는 단체가 어느날 스타크래프트는 ‘공공재’라는 논리를 꺼내들었을 때 나는 어이없는 소리라며 그 논리를 일축했던 바 있다. 케스파는 스타크래프트를 만든 블리자드에게 라이센스 사용료를 지불하고서 스타크래프트 게임 중계와 관련 리그를 만들어 왔는데 이 돈을 내기도 싫고, 블리자드가 간섭하는 꼴도 보기 싫다는 게 주된 논리였다.

내 상식에서 생각할 땐 스타크래프트는 블리자드의 지적 재산이고, 이를 사용해 뭔가 새로운 영리행위를 할 때엔 당연히 사용료를 지불하는 게 맞는 얘기였다. 그런데 꼭 그런 식으로 생각할 일은 아니라며 케스파와 동일한 주장을 펼치는 논문이 나왔다. JOLT Digest » Crafting an Industry: An Analysis of Korean Starcraft and Intellectual Properties Law | Harvard Journal of Law & Technology. 그것도 무려 하버드 법과 기술 저널.

주장과 결론은 간단하다. 스타크래프트는 좋은 게임이지만, 이걸 잘 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이들의 시합 장면을 중계하겠다는 아이디어는 매우 독창적이다. 그리고 이런 ‘프로 게이머’를 탄생시키고 이들이 생계를 게임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에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과 자금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데 블리자드는 이 과정에서 아무 일도 안했다는 얘기다. 그러니 스타크래프트는 일종의 ‘유사 공공재’로 파악해 블리자드의 라이센스료 징수가 얼마가 되든 말든 중계는 중계대로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는 게 골자.

스스로 약간 반성하게 되는게 두 가지 지점. 케스파 얘기는 싸그리 무시하다가 하버드 논문이 나오니까 다시 이 일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이건 완전히 사대적 습성이다. 케스파에 약간 미안. 또 하나는 내 시각. 게임을 ‘공익’으로 보는 게 사실 이 저널의 핵심이다. 사회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스타크래프트 중계가 일개 기업의 영리 목적에 의해 방송 중단의 위기까지 겪게 된다면 그건 공익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게 명료한 철학이다. 나는 그보다는 저작권자의 입장을 더 고려한 것인데, 사실은 이게 칼로 무 썰듯 잘라서 볼 게 아니라 그 중간지대를 찾아야 하는 것이었다. ‘유사 공공재’라는 이상한 개념까지 만들 정도로 미국인이 관심을 갖는 주제에 대해 이 사회의 기자인 나는 어떤 원칙으로 문제를 바라봤던 건가 싶어서 반성 중.

댓글

  1. 짧게 생각한 제 견해로는 케스파의 공공재 주장은 결국 룰에 대한 저작권에 있어서 e스포츠와 기존 스포츠가 같은 문제인가 아닌가 였는데요. (기존 스포츠처럼 룰에 대한 저작권에 비해 공연公演에 드는 비용이 큰가) e스포츠에 경우 룰에 대한 수정/개선에 비용이 많이 들고 케스파 같은 단체에서 그걸 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개드립이라고 결론지었었죠. 리그를 발전시키려면 블리자드에서 추가적인 지원이 전제돼야 하는데 — 소스 코드를 받지 않는 이상 — 돈을 주지도 않고 우린 너네 없어도 잘 할 수 있어 라고 주장하는 건 어불설성이죠.

    1. 그다지 케스파를 응원하려는 뜻은 아니고요, 제 얘기도 그렇고 인용한 저널도 마찬가지고, 스타크래프트는 야구와 축구, 농구와는 분명히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성격이 있으니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줄이는 회색지대를 찾아보자는 얘기였죠. 말씀하신 부분은 저도 100% 동의합니다.

  2. 뭐 아무래도 케스파는 어떤 개연성도 없이 공공재 드립을 한거고
    하버드의 논문은 논리적으로 잘 설득할수 있는 내용이 있을테니까요….
    주인장님의 판단이 꼭 사대주의라고 보긴 힘든것 같습니다. ^^

  3. 하버드 논문을 자세히 읽어보진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저작권법상 공정이용 법리로 접근한 것 같네요. 완전 말이 안되는 이야기는 아닌데 한번 자세히 읽어봐야겠네요(여차하면 번역까지). 어제 이 내용 관련해서 글을 써서 보완하려고 검색하다가 읽게 되었습니다. 주소링크 남겨두겠습니다~

  4. 하버드 저널을 자세히 읽어보진 않았는데 저작권법상 공정이용 법리로 접근한 것 같네요. 한번 자세히 읽어봐야겠습니다(여차하면 번역까지). 어제 제가 이거 관련한 글(http://t.co/5rF4PfTv)을 써서 보완하려다가 우연히 발견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1. 저도 정호영님 블로그 읽어봤는데 법의 시각에서 재미있는 시사점이 많네요. 두 건의 글밖에 없어 아쉽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지식 많이 나눠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