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rehead

1970년대, 실리콘밸리의 고등학생들은 전자공학 클럽의 회원을 가리켜 ”와이어헤드(wirehead)”라고 부르곤 했다고 합니다. 일종의 소속감을 느끼기 위한 은어였는데, 아마도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전깃줄머리”, ”전선대X리” 등등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사실 경멸적인 표현은 아니었다고 해요. 실리콘밸리 고등학생들이 전자공학을 하는 사람들을 보는 시선에는, 적어도 대전의 고등학생들이 카이스트 학생들을 바라보는 시선만큼의 감흥은 담겨 있었을 테니까요.

이 와이어헤드 가운데에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있었습니다. 애플의 두 창업자들이죠. 하지만 이 두 스티브 가운데 유명세를 탄 것은 스티브 잡스였습니다. 결국 그저 ”워즈”라고 불리게 된 스티브 워즈니악은 나름대로 유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티브 잡스보다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애플컴퓨터를 개발하고, 초기 애플컴퓨터 기술의 핵심이었던 그의 위치에 비교하자면 억울할 지경이었죠. 그건 워즈가 스티브보다 못나서가 아니라, 아마도 스티브가 교활했고, 요령이 있었으며, 자신만이 돋보이는 상황이 될 때까지 고집을 피워댔기 때문일 겁니다. 정작 학창시절부터 공부도 잘했고, 전자공학에 재능도 있었으며, 사람들이 인정하는 엔지니어였던 건 워즈였습니다. 스티브는 그저 이것저것 기웃거리고, 자신이 돋보일 방법을 궁리했으며, 탁월한 요령으로 ”과정보다는 결과”를 얻어내던 학생이었죠.

아타리(”퐁” ”벽돌깨기” 등으로 1970년대의 초기 비디오게임 시장을 점령했던 회사)의 창업자인 놀런 부슈넬은 젊은 스티브와 워즈를 고용할 일이 있었는데, 이런 캐릭터의 스티브 잡스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그는 당시의 스티브에 대해 스티브는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싶으면 나한테 몇 달이나 몇 년이 아니라 며칠이나 몇 주만의 시간을 요구했다. 나는 이런 게 마음에 들었다"고 회고합니다.(iCon 스티브 잡스)

과연, ”과정”이 좋지 않은 스티브가 저런 뛰어난 결과를 자신만의 능력으로 얻어냈을까요. 천만에요. 스티브가 저런 평가를 얻을 수 있던 것은 바로 ”워즈”였습니다. 컴퓨터 천재 워즈가 친구였기 때문에 워즈에게 이러저런 개발과 연구를 맡기면 됐던 것이죠. 결국 스티브와 워즈는 나중에 크게 싸우게 됩니다. 재주는 워즈가 넘고 돈은 스티브가 챙기니, 제대로 유지되기 힘든 우정이었죠.

스티브는 매우 능력있는 인물입니다. 프로젝트를 맡으면 단기간에 끝장을 보겠다고 달려드는 집중력, 끝장을 볼 때까지 밀어붙이고야 마는 추진력, 그리고 사람들을 휘어잡고 자신의 뜻에 따라 사용하는 능력. 다만 인간적인 리더라면 이렇게 성과를 낸 뒤에는 그 보상을 자신의 지도에 기꺼이 따라준 팀원들과 나눌 텐데, 스티브는 팀원들에게 성과를 나눠주는 데 인색했습니다. 속이 좁고, 배려가 부족했다는 것이죠. 사람들은 스티브의 인성이 원래 이 모양 이 수준인 것으로 믿고 있곤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스티브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것도 매우 능력있는 사람들이 득시글거렸죠. 독불장군에 괴팍스러운 성격의 스티브 잡스가 일종의 ”귀무가설”이라면, 그 주위의 수많은 인재를 보여주는 것이 ”대립가설”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그저 시작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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