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의 실패, 분노 지켜내기, 그리고 미친 쇠고기

이번 주 초, 세계 최대의 인터넷 서점아마존닷컴이 "노골적인 성적 묘사가 들어있는 책들을 검색 결과에서 삭제하겠다"며, 동성애 또는 성적 소수자의 권리를 기술한 책들까지 우루루 검색 결과에서 삭제하자 영미권의 인터넷이 들끓었습니다. 이른바 아마존의 실패’사건이죠. 이 사건이 벌어지자 네티즌들은 아마존닷컴을 가리켜
성적
소수자의 권리를 무시하는 몰상식한 기업이며, 사용자의 검색 권한을 앗아간 악덕 기업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비난에는 아주 강력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마존이 고의로 동성애 관련 키워드가 들어간 책들을 검색 결과에서 삭제했다"는 믿음이었죠. 보수적이고, 성적 편견에 사로잡힌 아마존의 임직원들이 이런 일을 고의로 저질렀다는 음모론은 이후 인터넷에서 정설이 됐습니다.

 

시작은 몇몇 블로거였지만, 비난의 행렬은 점점 길고 두꺼워졌습니다.
융단 폭격의 행렬에 공신력을 더한 건 작가들이었습니다. 성적 소수자에 대한 키워드가 들어갔을 뿐, ‘노골적인 성적 묘사와는 상관 없는 저술을 했던 작가들은 자신의
책이 아마존 검색 결과에서 삭제된 데
대한 분노를 강하게 느꼈습니다.끌리고 쏠리고 들끓다‘(Here
Comes Everybody)
의 저자인 클레이 셔키 뉴욕대 교수도 이런 지식인
그룹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셔키 교수는 정의를 위해 기꺼이
아마존을 맹비난합니다. 개인 블로그에서부터 촉발된 이 사건은
이후 가디언과 같은 주류 언론에까지 보도됩니다. 아마존은 이 과정에서 기업 이미지에 큰 피해를 입었고요.

 

하지만 미국 시간으로 어제(16), 셔키 교수는 절절한
반성문
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립니다. 아마존닷컴을 부도덕한 기업으로 몰아갔던 자신의 행동은 지식인으로서
쌓아올렸던 자신의 커리어 전체가 부끄러울 정도의 아주 멍청한 행동이었으며,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는
반성이었습니다.

 

아마존의 실패의 진실은 이랬습니다. 아마존은 성인물을 검색 결과에서 제외하겠다며 특정 키워드가 포함된 글들을 삭제했는데, 이 과정에서 분류값을
참고합니다. 예를 들어 게이라는 키워드가 소설’이라는
분류의 책에서 자주 등장한다면 포르노 소설일 가능성이 높다는 식의 단순한
알고리듬을 적용한 것이죠.

 

대중이 분노한 것은 실수가 아닌 아마존의 ‘악한 의도였습니다. 그런데
사실이 밝혀지고 보니 아마존은 악하거나 편견에 가득찬 의도’와
관계
없이, 단순히 실수했을 따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인터넷에서 아마존의 실패는 계속 회자됩니다. 구글에서 한 번 ‘amazon failure’를 검색해 보세요. 섬뜩한 욕설이 가득한 글과 댓글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지속될까요? 셔키 교수는 이를 분노 지켜내기’(conservation of outrage)라고 부릅니다. 한 번
끓어오른 분노의 근거가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된 근거 때문에 분노를 철회하기보다는
분노를 유지시킬 수 있는 새로운 근거를 찾아낸다는 것이죠. 아마존의 실패가 딱 그런 상황입니다. 아마존의 임직원들은 그런 의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고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영미권
네티즌들은 아마존의 수많은 다른 잘못들을 들춰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존은 검색 결과를 삭제한
것 부터가 잘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존은 고객 대응을 잘못한 게 잘못이다는 식이었죠.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는데도, 대중의 분노는 쉽게 수그러들질 않습니다.

 

남의 얘기 같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우리 사회의 대중의
분노를 이끌어냈던 키워드는 미친 쇠고기였습니다. 미국에서는 주저앉는 소를 도축해 팔고 있고, 이 소는 광우병에 걸린 소이며, 이런 게 팔렸던 영국에서는 채식주의자였던 영국
총리 딸의 친구마저 광우병에 걸려 사망했다는 식의 내용이 대중의 분노를 이끌어냈습니다. 아직도
미국과 영국에서는 쇠고기가 팔리고 있고, 주저앉는 소와 광우병에 걸린 소 사이의 직접적
연관관계는 없으며, 인간 광우병 발병 사례는 점차 줄어들어 현재 통제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수준이라는 이야기는 모두 묻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협상을 잘못한 게 잘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우병 발병 확률이 완전히 ‘0’이 된 것은 아니니
잘못이다
얘기를 했습니다. 분노 지켜내기의 결과였죠.

 

저는 지금 영미권의 네티즌이 잘못했다거나, 한국의 네티즌이 잘못했다는 식의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후의 대응이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보자는 겁니다.

 

셔키 교수는 반성문을 올립니다. 그리고 분노 지켜내기에 지식인들이 현혹되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자신들의 그릇된 초기
판단으로 인해 아마존닷컴이 큰 피해를 입었으니,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잘못 판단했던 내용을 밝히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겁니다. 애초부터 자신과 같은 지식인들이 아마존닷컴의 성적표현을
담은 도서에 대한 검색결과 삭제같은 방식을 ‘삭제가
문제’라며 비판했다면, 아마존은 ‘성인물
차단등의 기능을 만드는 등 훨씬 더 생산적인 결과가 나왔으리라는
얘깁니다. 지식인들이 그러지
못해 결국 근거가 잘못된 분노만 생겨났으니 이를 바로잡자는 주장이죠. 셔키의
이 글에 대한 반대와 공감이 토론을 일으키면서 아마존의 실패는 봉합 단계를 향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아마존닷컴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잘못과 서툴렀던 설계상의 문제를 솔직히 밝히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어땠을까요? 지식인들은 자기 반성 없이 분노
지켜내기에만 동참했고, 그 반대 축에 서 있던 한국 정부는
잘못된 분노를 촉발시켰던 언론인을 체포하고 구속하는 등 강경 일변도로 대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토론은 없었고, 대결만 지속됩니다.
아마존의 실패는 일주일도 안 돼 생산적인 논의로
이동하는 반면, 한국의 미친 쇠고기 1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사회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광우병은 하나의 예일 뿐입니다. 분노는 산불과 같아서, 일단
불타오르면 걷잡을 수 없어집니다. 다행히 진화에 성공했다고 해도 분노가 훑고 지나간 곳은 잿더미로 변해
버립니다. 그런데 그 분노의 근거가 잘못됐다면? 자기 반성의
미덕이 부럽고, 빨리 사과하고 대책을 마련할 줄 아는 논의의 상대방이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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