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꾀에 흥한 애플, 제 꾀에 망할까.

11월입니다. 아이폰이 이달 중 한국에 나올 거라는 얘기가
여전히 무성하기만 합니다. 미국시장에선 오늘 ‘드로이드’라는 휴대전화가 나왔습니다.
아이폰이 AT&T라는 1위 통신사에서 독점으로 판매되자, 2위 사업자인 버라이즌이
모토로라와 손잡고 내놓은 스마트폰입니다. 두 회사의 이해관계는 일치합니다. 버라이즌은
AT&T의 스마트폰 사업에 배가 아팠으니 이를 무찔러야 하고, 모토로라는 지금
휴대전화 사업에서 철수할지 모르는 상황이니 어떻게든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래서 두 회사가 택한 건 ‘구글’입니다. 구글의 휴대전화 OS ‘안드로이드’가
드로이드의 OS이기 때문입니다. 소프트웨어는 구글이, 단말기는 모토로라가, 통신망은
버라이즌이 제공하고 1위 사업자인 AT&T-애플 연합에 대항하는 형세죠. 광고가
재미있습니다. 전반부 하얀 바탕화면은… 어디서 많이 보던 형태입니다. 아주 대놓고
비아냥댑니다. "i는 키보드도 없고, i는 멀티태스킹도 안 되고, i는 500만 화소
카메라도 없고, i는 어두운 곳에선 사진이 찍히지도 않고, i는 배터리를 갈아 끼울
수도 없고, i는 개발자들이 열린 환경에서 개발할 수 있도록 돕지도 않는다"는
식입니다.

 

이 하얀 하얀 배경 위에서 팬시한 음악이 흐르며 매끈하게 디자인된 제품이 나타나는 형태의
광고는 애플의 광고 형태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직접 광고 최종 완성본을 확인하고서야
승인을 한다는 ‘미니멀리즘’
스타일의 광고죠. 버라이즌은 이걸 한 차례 뒤집고 비틉니다. 거칠고 터프해
보이며 강인해 보이는 이미지로 드로이드를 포장한 게 과연 좋은 생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드로이드는 아이폰과 한 번 붙어볼 만한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남깁니다.

 

"(멍청한) 아이폰은 할 수 없지만 드로이드는 가능한 일"을
노골적으로 암시하는 저런 광고에 애플은 소송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신다면,
오산입니다. 애플은 절대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해온 전례가 있기 때문이죠.
유명한 ‘MAC과 PC’ 광고 시리즈입니다. 매킨토시가 윈도 OS를 사용하는 컴퓨터보다
훨씬 좋다는 얘기죠. 보기만 해도 지루해 보이는 정장 차림의 뿔테 안경을 한 아저씨가
멋진 캐주얼 복장의 샤프한 젊은이와 함께 등장하는 이 광고는 ‘윈도 7’이 등장한
최근에도 새 버전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예전엔 참 위트있어보이고 재미있어보였던
이 광고 시리즈가 유독 윈도 7 버전에선 좀 구차해 보입니다. 치사해 보이기도 하고요.

 

 

PC(윈도를 사용하는 컴퓨터)가 맥(애플의 매킨토시 컴퓨터)에게
말합니다. "윈도 7이 나왔어. 윈도 7에선 윈도 비스타에서 생겼던 것 같은 문제가
또 일어나는 일은 없을거야." 맥이 답합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린데?"
과거를 회상합니다. "윈도 비스타는 윈도 XP에서 생겼던 문제를 반복하는 일은
없을거야.", "윈도 XP는 윈도 ME에서 생겼던 문제를 반복하는 일은 없을거야.",
"윈도 ME는 윈도 98에서 생겼던 문제를 반복하는 일은 없을거야." 이 광고의
제목은 ‘깨어진 약속들'(Broken Promises)입니다.

 

지금 이 글이야 (ActiveX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윈도 7에서
쓰고 있지만, 전 매킨토시 사용자입니다. 스티브 잡스에 대한 책도 썼고, 어릴 적부터
애플의 팬이었습니다. 아이팟은 세대별로 다 갖고 있고, 애플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가 만든 ‘NeXT’ 컴퓨터를 보러 일부러 용산전자상가를 들러서 집에 오기도 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봤습니다. 제가 애플을 좋아했던 이유는 뭘까요?

 

물론 제품도 좋고,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도 멋지고, 애플의 디자인
철학과 사용자를 최우선에 두는 제품의 편리함이 뛰어나서였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애플을 쓴다는 건 부당하게 소외당하고 핍박받은 2위, 또는
약자의 제품을 쓴다는 것이었습니다. 애플은 스스로에게 순교자의 이미지를 부여했죠.
누구보다 브랜드 마케팅에 능했던 스티브 잡스의 능력 덕분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컴퓨터를 1984년에 처음 내놓으면서 거대 기업 IBM이 자본력으로 독점하려는
PC 시장을 매킨토시로 지켜내겠다고 외칩니다. 유명한 ‘1984’ 광고도 이때 나왔죠.

 

애플은 지금까지 늘 ‘골리앗’ 같은 거대 기업에 맞서 싸우는 ‘다윗’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실제로 애플이 그런 회사였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애플의 위치는 실제로 그렇게 별볼일 없었고, 애플은 늘 1위 기업을 타깃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마니아들이 엄청나게 생겼던 것이고, 저와 같은 사람들이 애플이란 회사를
몹시도 좋아했던 것이죠. 하지만 이제 스티브 잡스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났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 비스타의 실패 덕분에 욕을
먹을대로 먹은 뒤 혁신적인 새 제품을 내놓았습니다. 그게 바로 윈도 7입니다. 캐치프레이즈가
의미심장하죠. "여러분의 아이디어로 만들었습니다."(Windows 7, it’s
your idea!) 마이크로소프트는 한없이 몸을 낮췄습니다. 버라이즌과 모토로라, 구글은
모두 뒤쳐진 기업입니다. 버라이즌은 AT&T 다음이고, 모토로라는 노키아와
삼성전자, LG전자 다음이며, 구글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 다음입니다. AT&T와
애플 연합군은 지금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휩쓸고 있고, MP3플레이어와 음악산업계에서
애플의 위치는 골리앗 그 자체입니다.

 

더 이상 애플은 약자가 아닙니다. 1등을 지켜본 경험이 별로 없는
이 회사, 과연 어떻게 스스로의 이미지를 쌓아나갈까요? 여전히 스스로를 쿨하고
혁신적인 기업으로 포지셔닝할 계획이라면, 그건 그저 ‘종교적 신념’일 뿐이라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1등에겐 1등의 역할이 있는 법입니다. 쿨하고 혁신적인 모습은 똑같이
연출할 경우 2등, 3등의 기업들이 훨씬 설득력있게 연출할 수 있게 마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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