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의 사면초가

삼성전자와 LG전자, 두 회사는 겉보기엔 라이벌이지만 사실은 많이 다른 회사입니다. 일단 규모가엄청나게 차이가 나죠. 매출액 기준으로 보면 삼성전자가 LG전자의 두 배를 훌쩍
넘습니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LCD 패널 등 전자제품의 부품 사업도 대규모로
벌입니다. LG전자는 반도체는 외부에서 사다 쓰고, LCD 패널은 LG디스플레이에서
공급받죠. 규모의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국내 1, 2위의 전자업체인지라 저도 그렇고 많은 언론들이 이들을 한국
전자업계의 양 기둥으로 부르는데 인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CES에 다녀오면서 두
기업을 계속 유심히 지켜보니 전과는 조금 다른 게 느껴졌습니다. 일종의 ‘신사협정’같았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올해는 정말 이 두 기업이 치열하게 경쟁할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포문은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이 열었습니다. 가전사업에서 1위를 할 계획이고,
신흥시장에서도 1위를 하겠다는 경영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죠. LG전자가 삼성전자를
멀찌감치 앞서고 있는 거의 유일한 분야가 백색가전 사업입니다. LG전자의 에어컨과
냉장고, 세탁기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1위죠. 게다가 삼성전자가 앞선 흑색가전(TV와
휴대전화를 이르는 표현입니다)에서도 시너지 효과가 생겨 저만 해도 혼수품을 장만할
때 LG 냉장고와 세탁기를 사러 갔다가 그 자리에서 TV까지 LG 제품으로 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삼성전자의 백색가전 사업은 꼭 천덕꾸러기 같았습니다. 이익도
별로 못 내고, 시장점유율도 낮고,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를 지키는 데에도 별 도움이
못 됐으니까요. 최 사장이 이 가전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건 1등을 하던 TV를 더 잘
하겠다는 각오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백색가전을 염두에 둔 것이었습니다. 최근 폴란드
백색가전 회사를 인수하고, 냉장고와 에어컨 사업 계획을 공격적으로 짜는 등 행보가
빨랐거든요. LG전자로서는 텃밭에 강력한 경쟁자가 들어온다는 선언을 들은 마당이니
긴장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신흥시장 1위라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LG전자와 비교해 상대적인 강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프리미엄 브랜드로
성공하려면 미국과 유럽이란 선진국 시장에서 1위를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반면 LG전자는 중남미와 아프리카, 인도 등 서남아시아 시장에서 높은 브랜드 인지도를
자랑했습니다.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한 시장에서 1등을 하겠다는 전략이었죠. 삼성전자는
‘작은 시장’이라며 이런 신흥시장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 시장이 몇년째 제자리 또는 뒷걸음질을
치는 경향을 보이자 성장하는 시장을 두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LG전자 입장에선, 주력 제품군과 주요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경쟁이 심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LG전자는 훌륭한 제품을 잘 만드는 대단한 기업입니다. 그렇지만 국내에서 삼성전자에
치이고, 해외에서도 시장에서 부딪힌다면 올해는 쉽지 않은 한 해가 될 겁니다. 게다가
주력 사업인 가전 분야의 경쟁이 격화될 전망이고 TV 시장에선 소니나 파나소닉,
샤프 같은 일본 업체들이 ‘Again 2005’라면서 뛰어들고 있습니다. 휴대전화
시장은 프리미엄폰은 삼성에게 빼앗기고 스마트폰은 애플과 RIM에게 빼앗겨 체면을
구기고 있죠. 게다가 휴대전화 영업이익률마저 줄어들기 시작해 더 걱정입니다.

 

제 눈엔 지금 상황이 LG전자의 사면초가로 보입니다. 돌파구가 어디선가 마련돼야
하는데 안 나옵니다. 3D TV는 아직 시장이 열리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고, LED TV는
중국 업체들이 순식간에 따라오고 있습니다. 휴대전화는 아직 성과라고 내놓을 제품이
하나도 없고, 삼성처럼 자체 플랫폼을 만드는 장기 전략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백색가전에서의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만 하지만 지난해 글로벌생산관리시스템을 완성한
삼성전자의 공급망관리(SCM)는 직접 보니 그 효율이 놀랍다못해 경이적이었습니다.
LG전자는 삼성전자처럼 부품도 팔지 못하고, 신재생에너지 같은 신사업을 시작하긴
했지만 GE처럼 앞선 경쟁사와 비교하면 걸음마 수준에 불과합니다.

 

남용 LG전자 부회장은 올해를 ‘공격경영’의 해로 선언했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잠재력을 끌어올려 모든 지역에서 1위에 도전한다는, 최지성 사장이 했던 말과 굉장히
비슷한 말이었죠. 그 선언이 성공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하지만 1위가 2위하던 곳에서도
1위를 하겠다는 선언과 2위가 2위하던 곳에서 1위를 하겠다는 선언은 그 무게가 사뭇
다릅니다. 그게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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