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다음을 괴롭게 하는가

최근 한국인터넷 기업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기사로 쓴 적이 있습니다. 모바일 인터넷이
새 성장동력일 것으로 보고 기대를 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스마트폰 시장은 워낙
거인들이 이미 확고히 점령해 둔 상태라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죠. IT 동네가 원래 몇
년 뒤진다는 게 그만큼 무서운 동네니까요. 그래서 그냥 현재 할 수 있는 거라도
잘 해보려고 했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다는 불만이 나왔습니다. 규제 문제가 국내
기업을 역차별하고 있다는 거죠.

 

규제 문제를 제기한 건 주로 다음이었습니다. 이 회사는 제한적 본인확인제, 지도
해상도에 대한 규제, 개정된 저작권법, 수사기관에 대한 e메일 기록 제공 협조 등이
구글과 같은 해외 기업에겐 제대로 적용되지 않아 이를 잘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다음이 상대적으로 손발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약간 독특했습니다. 왜 NHN이나
SK커뮤니케이션즈는 별 말을 않는데, 유독 다음만 이런 규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요.

 

우선 구글이 상대적으로 이익을 보는 측면이 있다는 건 사실 같습니다. 옳고 그르고의
판단은 제가 할 문제가 아니고 법학자나 사회학자 또는 정치를 하시는 분들이 생각하셔야
할 것 같지만, 적어도 현실적으로 정부의 여러 조치들이 있고난 뒤 구글이 한국에서
의미있는 시장점유율 상승을 경험했다는 통계적 사실은 엄연히 존재합니다. 그래서
저도 기사에서 약간이나마 규제의 문제를 다뤘습니다. 국내외 기업들에게 규제가
공평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건 어찌보면 당위의 문제입니다. 국내 업체가 역차별 받는다
느끼는 현상 자체가 존재해서는 안 되는 현상이지요.

 

이와는 별개로 도대체 왜 똑같이
차별적으로 규제를 받는다 느껴 마땅할 경쟁사업자들이 가만히 있는 동안 다음이란
회사만
불만을 내비치는 걸까 생각해봤습니다. 다음에서는 이
회사의 사용자
집단에서 그 답을 찾더군요. 회사 측 설명에 따르면 다음의 서비스 개편시 중요한
의견청취의 대상이 되고, 타 사용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핵심 소비자군’은
30대 후반에서 40대에 이르는 이른바 ‘386세대’들입니다. 이게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PC통신에 익숙했던 세대들이 2000년 전후로 다음의 한메일
사용자로 넘어왔고, 자연스레 여기까지 온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사실 트래픽
통계로만 따져보면 네이버와 다음 소비자 사이의 데모그래피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네이버가 연령대와 성별이 좀 더 고르게 분포돼 있고, 다음이 40대 사용자에서 약간
강점을 보인다는 것 정도가 다른 점이죠. 문제는 이들의 활동입니다.

 

뉴스 댓글이나 커뮤니티 서비스의 특성에서 볼 수 있듯, 네이버의 사용자군은
매우 젊습니다. 다음은 이보다는 정치색이 뚜렷하고 조금 더 나이많은 사람들의 집단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 회사 측의 설명에 따르면 ‘아고라’와 같은 다음의 대표 서비스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핵심 사용자들의 상당수는 386 세대라고 합니다. 이들이 떠나면
다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이죠. 그래서 제한적 본인확인제 같은 제도가 다음에
치명적이라는 겁니다. 정치적으로 예민한 386 세대들이 온라인에서 자신의 실명 정보를
공개하는 걸 ‘표현의 자유 제약’으로 받아들인다는 설명입니다. 전 익명성에 기대어야만
정치적 의사표현을 할 수 있다면 그건 우리 사회가 아주 치명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반증이라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한국이 민주국가가 아닌 사회로 전락하는 셈이니까요. 의사표현은
실명으로
하는 것이 사회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그리고 한국 사회란 곳이 익명에 기대어야만
의사표현을 할 나라라고 판단하시는 분들에게는 결코 동의하지 않고요. 다만
익명성을 실명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강제해야만 하는지, 그걸 강제로 할 필요가 있다면
언제까지 어떤 기준으로 강제해야하는지, 시민들이 자유롭게 어떤 합의를 이룰 가능성은
과연 어떻게 생길 것인지에 대해서는 더 깊이 고민을 해봐야겠죠. 하지만 아마도
이런 제 생각은 저
세대의 분들에게는 아주 순진한 생각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입니다. 서른넷의 아이아빠가
이다지도 순진한건지, 그 분들의 과잉의식인지는 각자가 판단할 몫이지만요.

 

어쨌든 이런 이유로 수사기관이 다음의 e메일 내역을 받아가서 수사과정 중 내용
일부를 언론에 공개한다거나, 제한적 본인확인제가 적용돼 자신의 실명이 파악될
수 있다거나 하는 문제는 유독 다음에서는 아주 중요한 논쟁거리였습니다. 실제로
이런 규제로 인해 실명확인을 해야 한다거나, e메일 수사에 협조한 내용이 공개될
때마다 다음의 방문자 수는 10%씩 감소하는 등 크게 출렁였다고 합니다. 반면 상대적으로
이런 민감한 정치이슈에서 벗어나 있던 경쟁사들은 이런 규제 문제를 심각하게 느낄
필요도 없었던 거죠.

 

규제란 원래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만들어질 때 나름대로
여러가지 여론 향방을 감안하고 사회적 필요와 합의를 거쳐서 만들어지는 거죠. 제한적
본인확인제 또한 그랬습니다. 익명성에 기대어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저열한 인터넷
문화도 우리 가상사회의 어두운 측면임에 틀림없었으니까요. e메일 수사기록 협조도
마찬가지입니다. 범죄 수사를 위한 개인정보의 일정정도의 침해는 우리가 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공권력에게 허락한 사회적 약속입니다.

 

다음에선 어떻게 규제가 변하면 좋겠다는 얘기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기업의
영역이 아니라는 겁니다. 어느 정도는 맞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좀 더 해보면 어떨까요. 규제란 100% 선도, 100% 악도 아니기
때문에 이해당사자들이 계속 바꿔나가야 하는 제도입니다. 최근 이탈리아 법원은 한 소년의 명예를 훼손한
동영상이 유튜브에 수개월 동안 올라와 있는 걸 방치했다는 혐의로 구글의 미국 본사
임원들에게 실형과 집형유예를 선고한 바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탈리아 법원은
미국법을 열심히 공부했을테고(대륙법과 영미법은 출발의 철학부터 꽤 다르다고 합니다)
두 대륙 사이의 문화적 차이를 고려했을 것이며, 사회적 여론도 꾸준히 살폈을 겁니다.
그 뒤에도 실형을 선고했다는 건 인터넷에는 국경이 없어도 국민의 피해를 막기 위한
국가의 책임에는 국경이 있다는 뜻이었겠죠. 구글은 물론 항소할 예정입니다. 이들의
철학은 이탈리아 법원과 다르기 때문이죠. 한국에선 어떤가요. 규제를 만든 행정당국도
외국 기업을 규제하는 건 흐지부지입니다. 물론 골치아픈 일이긴 할 겁니다. 규제에
역차별을 당하는 국내 기업도 이런 문제에 대한 대안 제시에는 흐지부지입니다. 끝까지
고민하고 논쟁을 진행하며 해결책을 찾아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요. 우리 기업은 어떤 철학에서 움직이는지 참 궁금합니다.

 

구글이 자신들의 철학을 내세우는 논리는 명쾌합니다. 그게 그들이 자리잡은 국가의
사회적 합의이기 때문입니다. 구글은 제한적 본인확인제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익명성의
폐해는 수많은 건전한 다수의 자정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고, 실제로 미국에선
그렇게 해결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으니까요. 구글은 이런 해결을 돕기 위한
기술적 장치를 제공하면서 자정 노력을 지원합니다. 한국에선 어땠나요. 아직도 우리 네티즌들은 ‘신상털기’에
나서며 쾌재를 부릅니다. 그렇게 개인정보가 인터넷에서 탈탈 털릴 때까지 우리는
아이들을 교육시키지도, 이런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을 만들지도 못했습니다.
‘신상털기’를 통해 개인정보를 유포한 네티즌들을 추적해 처벌한 적도 없습니다.
떠도는 개인정보를 지우기 위한 상설 전담부서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를
줄여보고자 합의한 게 제한적 본인확인제였습니다. 시간이 지났으니 상황이 변했다면
이를 수정할 수도 있고, 다른 규제로 대체하거나 폐지할 수도 있을 겁니다.
문제는 누구도 그런 진지한 대안을 마련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저 "해외에선
안 그러는데 우리는 글로벌 표준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외칠 뿐이죠.

 

지구적으로
생각해도, 행동은 지역적으로 하라던 말이 있지 않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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