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ORPG 이야기 ② 아둔함의 일관성, 게임의 심리학

MMORPG의 공통된 특징이 있다면 그건 바로 ‘노가다’입니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캐릭터의 다양한 능력치를 높이기 위해(레벨업을 위해) 사냥을 반복해서 하면서 ‘경험치’를 주는 괴물을 잡는다거나, 수많은 퀘스트(대부분의 경우 잡일)를 하면서 경험치를 얻는 것이죠. 퀘스트라고 거창하게 얘기해봐야 결국엔 특정 괴물을 잡아다 달라거나 어떤 장소에 가서 누군가에게 뭔가를 전달해 달라는 식의 ‘심부름’에 불과합니다. 그걸 마치면 약간의 돈(게임머니)과 아이템을 얻을 수 있죠. 겨우 그걸 하자고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시간씩 온라인게임에 접속합니다.
놀라운 건 정말로 게임에서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이 이런 노가다임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게임을 설명할 때에는 대단한 배경 스토리나 게임 속에서 벌어지는 장대한 드라마, 다른 사용자들과의 끈끈한 커뮤니티 등을 강조한다는 겁니다. 아마도 이런 활동을 위해 사용하는 시간은 대부분의 게임 사용자들이 게임을 하는데 있어 절반도 되지 않을 겁니다. 일단 레벨업을 이뤄야만 하는 초기 단계에선 90% 이상의 시간을 노가다에 쓰는지도 모를 일이죠.

이렇게 수십~수백 시간에 이를 값진 시간을 노가다에 쓰는 일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많은 게임회사들이 초기에는 이런 노가다를 줄여보고자 애를 썼습니다. 이런 단순반복적 행위가 게임 중독을 낳고,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보내게 만든다는 비판 때문이었죠.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작업을 매우 즐기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게임 게시판에서도 “편안히 몬스터를 사냥하면 상념이 사라진다”거나 “사냥의 재미, 격렬한 타격감, 내가 게임을 하는 이유”라는 식의 칭송이 종종 올라오는 걸 알 수 있었죠. 도대체 왜 그럴까 하는 질문에 전문가들은 여러 분석을 내놨습니다.

대표적인 게 보상이 합리적이란 거죠. 노가다를 통해 레벨을 올리는 일은 매우 간단합니다. 레벨에 맞는 몬스터를 잡거나, 퀘스트 공략 웹페이지를 게임과 함께 띄워놓고 그걸 보면서 시키는대로 하면 됩니다. 타고난 능력도, 재능도 필요없습니다. 시간을 많이 쏟으면 실력은 올라가서 내 캐릭터가 점점 강력해진다는 논리입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이런 보상 시스템은 현실 어디에도 없습니다. 현실은 집안이 부유하면 건강도 좋고 교육수준도 좋게 마련이며, 타고난 재능이 뛰어난 친구는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가 없게 마련이죠. MMORPG의 세계에선 그런 거 없습니다. 많이 시간을 투자한 사람이 최고입니다. 와이어드에서는 이를 가리켜 ‘아둔함의 일관성'(Consistency of Idiocies)이라고 표현하더군요. 일관되게 미련한 자가 승리하는 아름다운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노가다를 즐기는 이유는 남들보다 우월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른바 ‘지존’ 또는 길드나 혈맹의 리더가 되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다른 사용자와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기도 했죠. 그럼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은 과연 행복했을까요? 팔로알토연구소(PARC)의 연구원 닉 이(Nick Yee)는 MMORPG 상의 사용자 4만여 명을 조사하는 방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다이달로스 프로젝트라는 연구로, 게임 관련 학자들의 단골 인용 소재죠. 이 가운데 길드 리더의 심리를 조사한 연구도 있었습니다. 결과는 좀 의외였습니다. 게임 플레이어 가운데 15% 가량이 길드를 이끄는 리더가 되곤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게임을 통해 자신이 (가상의) 사회에서 인정받는 존재가 되면 그 사실에 대해 곧 괴로워하게 됩니다. 남들을 통솔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 데다, 많은 이들이 감사보다는 불평을 쏟아내죠. 취재 과정에서 만났던 한 분은 이런 얘길 했습니다. “길드 마스터 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냥 만렙이었던 해당 캐릭터 지워버리고 바닥부터 다시 다른 이름으로 시작했어요. 가진 게 없으니 맘이 편하더라고요.”

리더라는 건 그렇게 고독한 자리입니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분들도 계시죠. 이인화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께선 “난 전에는 골방에서 소설이나 쓰고 책만 보는 사람이었는데 게임이 나를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아시겠지만, 이 교수는 정조 암살설을 다뤘던 ‘영원한 제국’이란 베스트셀러 소설의 작가입니다. 인상적이었던 건 현실에선 나이나 직업, 직위 등의 사회적 권위도 존재하고, 얼굴 표정과 몸짓으로 다양한 표현도 할 수 있는데 반해 게임에선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이 교수께선 “대화와 제한된 몸짓 표현만으로 전혀 공통점이 없는 게임 속 동료들을 인솔하고 설득하는 게 현실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며 “그것도 해냈는데 그 뒤에 대학에서 프로젝트 하는 건 ‘이 정도야’라는 생각이 들더라”더군요.

게임업체들도 게임을 많이 바꿔갑니다. 레벨을 올리고 지위고하를 만드는 것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용자들이 많아지자 각종 ‘스킬’을 만드는 거죠. MMORPG 속에서 낚시를 하고, 요리를 하고, 물건을 만들어 내다 파는 일종의 ‘메타 게임’들이 늘어나는 게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역시 별다른 보상은 없습니다. 다만 이런 일을 하는 것도 현실과 비슷해서 다양한 사회적 관계가 비슷한 (게임 속) 취미를 통해 일어나게 됩니다. 또 입고 있는 옷도 자신을 말해주기도 하죠. ‘마비노기’를 즐겨하는 제 아내는 비슷한 옷을 입은(유행이 지나 요즘 캐릭터들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사람과 게임 속에서 만나 그 옷을 아직도 입고 다니는 배경, 게임을 하지 않고 쉬었던 기간 등에 대해 한참 수다를 떨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런 심리는 다시 복잡한 사회적 관계로 귀결됩니다. 리더의 고단함, 리더를 따르는 낮은 계급으로서의 편안한 종속감, 이른바 ‘버스기사’라고 불리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위해 노력봉사하는 게임 속의 권력자… MMORPG의 세계가 알면 알수록 더 넓은 세계로 확장되는 이유입니다. 게임을 하지 않는 분들이라면 용어가 조금 낯설겠지만 이 교수님이 멋진
기고
를 통해 설명해주셨던 ‘서민살성‘ 만화를 보시면 이런 식의 역할(Role)에 따른 새로운 삶의 체험(Play)이 결코 만만치 않은 체험의 공간이란 걸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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