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죽일 것인가, 온라인뉴스에 돌아간 첫 퓰리처상

      죽음의 냄새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병원 예배당의 나무문을 삐걱대며 드나드는 구조대원의 움직임조차 이 불길한 냄새에 파묻혀야만 했다. 예배당 안에는 짧은 침대보로 덮인 십수 개의 몸뚱아리가 아무런 움직임없이 누워있었다. 하얀 천이 그들을 덮었고, 뒤엉킨 백발이 그 위로 살짝 빠져나와 있었다. 벌어진 무릎과 파랗게 질린 손이 파란 환자복과 함께 드러나보였다.

<누구를 죽일 것인가-메모리얼 병원의 선택>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온라인 저널리즘으로는 처음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아주 긴 기사입니다. 사람들은 온라인 매체가 드디어 퓰리처를 수상했다고 얘기합니다. 훌륭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기사를 읽으면서 깨달았습니다. 중요한 건 매체가 아닙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훌륭한 이야기가 본질입니다.

메모리얼 병원은 해마다 허리케인 피해를 겪는 뉴올리언스에서 허리케인 대비가 가장 잘 돼 있는 시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카트리나가 몰려오던 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역 주민들은 매년 그랬듯 메모리얼 병원으로 피난을 왔고, 움직일 수 없는 환자들도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문제는 카트리나가 카트리나였다는 겁니다. 엄청난 허리케인은 메모리얼 병원마저 심각하게 훼손시켰고, 전기와 수도가 끊어졌으며, 비상용 발전기마저 망가뜨리고 말았습니다. 구조를 기다리는 인근 지역 주민들이 2000여 명, 메모리얼 병원의 입원 환자들이 200여 명에 이르렀습니다.

카트리나가 심상치 않자 병원은 대피를 결정합니다. 구조 헬기가 오고 있었고, 자원봉사자가 자신의 요트를 몰고 사람들을 구하러 왔습니다. 누구를 먼저 살려야 할까요? 병원은 고민합니다. 병원에는 200여 명의 환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에겐 전기와 약, 그리고 깨끗한 물이 필수였습니다. 일찍이 겪어보지 못했던 비상상황, 의사들은 역사적인 회의를 합니다. 최선이라 생각하고 내렸던 이 결정은 이후 미국 사회를 뒤흔들고, 미국의 재난시 응급구호 시스템과 의사들의 역할에 대해 완전히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결정은 단순했습니다. 살 가능성이 높은 사람부터 살리고, 죽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죽이자는 겁니다. 이른바 DNR(Do Not Resuscitate)이라 불리는 환자들이 첫 대상입니다. 이들은 생명활동이 정지되면 소생조치를 하지 않기로 결정된 사람들입니다. 자발적인 의사가 있거나 보호자가 그렇게 요청한 경우죠. 대개 매우 고령이고 중증의 환자들입니다. 이들을 살리기 위해 병원은 전기와 약품, 꾸준한 간호활동을 벌였지만 카트리나라는 비상사태 앞에서는 간호사가 지치는 것도 용납할 수 없는 자원낭비였던 겁니다. 그리고 상황이 악화되면서 의사들은 환자들을 세 범주로 분류합니다. 1과 2와 3이었죠. 가슴에 1이라 써붙인 환자는 비교적 건강해서 스스로 움직임이 가능했습니다. 이들은 가장 먼저 구조헬기와 요트에 타게 됩니다. 2로 분류된 환자들은 의식이 있고 살아날 가능성이 있지만 비교적 중증이라 움직임이 어려운 환자들입니다. 이들은
1분류 환자들이 모두 구조된 뒤 구조가 가능합니다. 3은 중증 환자들입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병원은 이런 결정을 내립니다. 만약 3 분류의 환자들부터 구조하고자 한다면 이들 가운데 한 명이 구조되는 동안 1과 2분류의 수많은 환자들은 약품과 간호 등의 부족으로 여러명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사를 쓴 셰리 핑크 기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메모리얼 병원은 그리 단순한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병원의 의사들은 이런 결정을 내렸지만 약 70명에 이르는 중증 환자들은 메모리얼 병원이 아닌 ‘라이프케어’라는 병원 속 병원에 의해 따로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라이프케어는 생명유지장치를 달고 실낱같은 삶의 가능성을 놓치 않으려 투병하는 노인들을 위한 별도의 전문 치료기관입니다. 이 병원의 의사와 관리자들은 메모리얼 의사들의 결정과는 달리 자신들의 환자부터 살려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라이프케어의 환자들은 대부분 ‘3’으로 분류된 환자들입니다. 갈등은 계속 이어집니다. 요트를 타고 다른 사람들을 구하러 온 사람 가운데에는 ‘3’으로 분류된 늙은 어머니를 구하러 온 아들 내외도 있었습니다. 이들이 요트를 몰고 왔는데 병원에서는 어머니 대신 엉뚱한 (상대적으로) 건강해 보이는 사람들을 구해 가라고 요구합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지요. 게다가 메모리얼병원의 의사들은 주사기를 들고 “편하게 해주겠다”며 몰핀을 주사해 DNR 환자를 안락사시킵니다.

구조를 기다리던 사람들 가운데에는 이를 목격하는 사람들도 나옵니다. 이들은 이런 의사들을 살인자라고 생각합니다. 의사들도 나중에 인터뷰를 하면서 솔직하게 얘기합니다. “그걸 뭐라고 표현하겠어요… 고통을 덜어준다? 아닙니다. 우린 사람을 죽였던 겁니다.” 다만 그들은 필요해서 죽였던 겁니다. 엄청나게 괴로운 상황이었던 건 모두에게 마찬가지였습니다.

재난이 끝나고, 이 사건은 법정에 가고,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새로운 재난 대처 매뉴얼을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당시 이 ‘죽음의 선택’을 이끌었던 의료진은 강연을 다니며 자신들의 절박함과 재난 시기에 존재해야 하는 새로운 매뉴얼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셰리 핑크는 이 기사를 위해 병원 관계자와 당시 목격자 140여 명을 인터뷰합니다. 그리고 카트리나 피해 4주년을 맞은 지난해에야 당시의 일을 기사로 써내죠. 7명을 안락사시켰다던 병원과 의사 측의 주장은 이 기사를 통해 사실은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안락사됐던 걸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이 기사를 읽고 나면 의사들을 비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기사를 읽은 모든 이들은 잠도 제대로 못 이룬채 죽음의 공포 속에서 파김치가 되어 있던 의사와 간호사, 병원 관계자들을 선뜻 비난하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이들이 자의적으로 누군가의 사랑하는 이를 먼 곳으로 떠나보내기로 결정하는 살인자라고 생각할지라도. 하지만 이와 함께 본의 아닌 안락사의 대상이 됐던 사람들의 억울함도 잊기 힘듭니다. 이 기사는 ‘3’으로 분류됐다 결국 구조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사람의 이야기도 함께 적고 있으니까요.

재난 앞에서 우리는 쉽사리 망가질 수 있는 약한 존재가 됩니다. 메모리얼 병원 바깥에선 총을 튼 약탈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쉽게 망가진 약한 존재들이었죠. 하지만 울타리 안, 병원 속에서는 이들과는 다른 삶의 갈등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극한에 몰린 육체와 두뇌를 부여잡고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선택 앞에서 갈등했던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결코 평범하지 않은 행동이었죠. 그리고 셰리 핑크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그 상황을 알 수 없었을 겁니다. 온라인이면 어떻고, 오프라인이면 어떤가요. 이런 것이 저널리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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