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통화료가 제한하는 발전의 가능성

오늘아침자로 데이터요금에 상한선이 없어 사용자들이 요금 걱정 때문에 무선인터넷을
쓸 때마다 심리적으로 위축된다는 기사를 썼습니다. 이런 심리적 위축이 결국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다던 무선인터넷을 자발적으로 덜 사용하게 만드는 장벽이 된다는
것이었죠. 몇 가지 얘기를 좀 더 해보려 합니다.

 

첫째는 상상력입니다. 예를 들어 온라인게임, 그 가운데에서도 MMORPG라는 게
한국이 처음으로 생각해내고 처음으로 만들어낸 건 아닙니다. 기본 개념은 이미 MUD라는
형태로 텍스트 게임으로 존재했죠. 그런데 이게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꽃핀 이유가
뭐였을까요? 초고속인터넷입니다. 사용량에 따라 과금하지도 않고, 얼마를 쓰든 매월
일정 금액만 내는 엄청나게 빠른 통신망 덕분에 세계 어느 나라도 꿈도 못 꾸던 네트워크
환경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거대한 가상 사회를 구성할 수 있던 거죠. 그럴 수
있을것이라 꿈만 꾸던 서비스가 한국에선 현실이었던 겁니다. e스포츠라는 게 생기고
프로게이머란 직업이 나타난 것도, 싸이월드라는 수많은 사진을 올려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이야기를 공유하는 서비스가 일찌감치 활성화된 것도, 하루 종일 스트리밍을
통해 음악을 듣는 멜론과 도시락, 벅스와 엠넷 같은 서비스가 생겨난 것도, 한국이니까
가능했던 겁니다. 하지만 사용량에 따라 통신 사용료를 부과하겠다면 이 모든 서비스들은
존재가 불가능해집니다. 요금제의 제한이 결과적으로 상상력의 제한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 게 가능하긴 할까?"라고 꿈만 꾸는 것과, 그런 걸 "한
번 해보자"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니까요.

 

둘째는 무선랜입니다. 최근 정치권에서도 공약으로 무선랜 설치를 내놓고 있고,
방송통신위원회나 KT, SK텔레콤, LG텔레콤 같은 통신사들도 무선랜을 설치한다는
공약을 계속 얘기합니다. 무선랜이 3세대(3G) 이동통신망보다 유지비용이 적게 들고,
많은 이용자들이 공짜로 쓸 수 있는만큼 보급을 늘려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최근
무선랜 투자를 위해 실측을 해본 한 통신사의 추산에 따르면 이미 전국에 개인이
사서 설치한 ‘사설 무선랜 접속장치(AP)’가 200만 개에 가깝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약 60%가 암호나 비공개 설정이 돼 있지 않은 누구나 접속 가능한 개방형 AP라고도
하고요. AP 숫자로는 제 생각엔 이미 세계 5위 권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통신사가
설치한다는 무선랜이 KT가 밝힌 게 올해말까지 1만4000개입니다. 기존 설치된 AP와
합쳐도 2만7000개 정도입니다. SKT도 그정도 설치하겠다는 계획이고요. 물론 통신사들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거리, 백화점, 극장 등을 중심으로 AP를 설치할테니 효용이 다소
높긴 하겠지만, 사실 120만개에 이른다는 개방형 AP에 비교했을 때 이런 통신사들의
대규모 투자 역시 ‘새발의 피’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선랜으로 무선인터넷을
확산시킨다는 게 그리 만만치 않은 것이죠. 게다가 무선랜은
값이 싸고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동을 전제로 개발된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한계도 분명합니다. 전파 도달 범위가 좁고, 하나의 접속지점(AP)과 다른 AP를 이동할
때 통신이 끊기지 않도록 연결을 이어주는 이른바 ‘핸드오버’ 기능도 제한적이라
정해진 공간에서 쓸 때나 유용하죠. 무선랜에 대한 환상을 가질 시간에 차라리 데이터통화
무제한 정책을 준비하는 게 훨씬 더 소비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 아닐까요?

 

셋째는 통신사의 고민입니다. 무제한으로 데이터통화를 풀어주면 누군가는 하루종일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TV를 볼테고, 누군가는 노트북을 연결해 하루종일 인터넷을
할지 모르는데, 그러면 무선인터넷망에 부담이 가고, 궁극적으로는 통화 불통 사태도
올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AT&T가 아이폰을 이용하는 무제한데이터요금
이용 고객들이 일으킨 과부하로 이런 통화 불통 사태를 겪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AT&T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제한 데이터요금을 취소하기보다는 기지국을
증설하고 접속이 몰리는 지역을 분석해 AP를 설치해 트래픽을 분산시키는 등 투자로
정면돌파했습니다. 아예 통신망의 여력이 훨씬 커질 4세대(4G) 통신에 투자를 일찍
시작한다거나, 지금까지 일부 진전시켜왔던 와이브로 투자를 강화하는 것도 통신사가
고를 수 있는 옵션 가운데 하나입니다. 설비투자라는 장기적 방법 말고도 단기적인
방법도 있습니다. 소프트뱅크처럼 사용량이 비정상적으로 많은 고객에게는 돈을 더
받는 대신 인터넷 접속 속도를 강제적으로 낮춰서 통신망의 부담을 더는 것이죠.
하지만 한 통신사 관계자는 "해당 기술을 도입하기도 까다롭고, 기준이 높은
국내 고객들이 그런 품질 차등을 용납할지도 의심돼 실효성이 없어보인다"고
답하더군요. 과연 그런가요? 해보지도 않고 미리 예단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넷째는 인터넷 전화입니다. 국내 통신사들은 모바일 인터넷전화(mVoIP)에 적대적입니다.
mVoIP란 ‘스카이프’처럼 가입자끼리 무료 통화를 할 수 있는 인터넷전화를 말하는데,
스마트폰에 이런 서비스를 설치해 무료통화를 할 수 있는 겁니다. 이런 걸 허용하면
그동안의 투자가 물거품이 되고 엉뚱한 인터넷 사업자들만 이익을 본다는 게 통신사들의
반대 논리입니다. 그런데 이 말도 좀 의문입니다. 해외 통신사들은 이미 3G망과 같은
이동통신망에 mVoIP를 일부 허용하고 있거든요. 스카이프같은 회사와의 제휴에 따른
겁니다. 스카이프가 광고 수익의 일부를 통신사에게 나눠준다든지, 음성통화료를
일부 보전한다든지 하는 계약을 통신사와 맺는 거죠. 그러면 통신사는 가입자 기반을
늘리고, 안정적 수익이 보장되는 ‘스카이프 요금제’ 식의 통신요금을 가입자에게
팔 수 있습니다. 스카이프도 사용자가 늘어나니 좋고, 소비자도 국제전화 등의 이용이
잦다면 편리함과 이익을 얻게 되는 셈이죠. 게다가 유선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듯, 장기적으로는 무선 또한 현재의 070 인터넷전화처럼 인터넷전화로 대체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 때를 미리 준비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무선인터넷전화마저도 스카이프
말고는 국내 서비스라곤 아무 것도 남지않아 스카이프를 써야만 하는 건지 아쉬울
따름입니다.

 

최근에 모 통신사가 전자책 시장에 진출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 회사는
앱스토어도 만들고, 개발자 대회도 열고, 소프트웨어 진흥을 위해 돈도 쓰고, 콘텐츠
산업 육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합니다. 겉보기엔 다 괜찮은 소리 같은데, 제 생각엔
목마른 토양에는 비를 내려줘야지, 한컵씩 퍼다가 나무 한그루 아래에 뿌려준다고
가뭄이 해결되진 않는다 생각됩니다. 우리 개발자들이 경진대회 없어서 소프트웨어를
못 만들었던건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애플과 아마존이 앱스토어와
전자책 사업을 성공시켰을 때 미국 통신사들이 했던 역할은 아무리 책과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아도 소비자가 추가로 돈을 낼 필요없는 좋은 통신망을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직접 앱스토어와 전자책 상점을 만들었던 건 아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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