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탭, 스마트폰과 아이패드 사이.

"안드로이드태블릿PC는 DOA(Dead on Arrival)가 될 것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최근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틀린 것 같습니다. 4일 국내 언론을
대상으로 공개된 삼성전자의 새 태블릿PC 갤럭시탭을
미리 써봤습니다. 며칠 동안 계속 들고다녔는데 아이패드와는
분명히 차별화되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국내보다 한발 앞서 갤럭시탭 판매가 시작된 해외에서도
갤럭시탭에 대한 반응은 "아이패드의 사실상 유일한 경쟁자"라고 얘기되고
있습니다.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아이패드가
처음 발표됐을 때 일부에서는 "아이패드는 크기만
큰 아이폰"이라며 이 제품을 비아냥거렸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대단하지도 않은 제품을 "마술적이고
환상적"이라며 자화자찬한다는 조롱이었죠. 그 말은 맞습니다.
아이패드는 그냥 크기만 큰 아이폰이었니다. 하지만 조롱이 무색하게도 그 ‘아이폰보다
크기만
크다’는 차이 하나가 정말 많은 걸 바꿔놓았습니다. 아이패드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죠. 제가 아이패드를 쓰기 시작한지도
6개월이 넘었습니다. 이제 전 아이폰으로 신문을 읽거나 전자책을 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작은 화면으로는 그저 e메일을 확인하고, 급한 서류나 동영상 정도를
볼 뿐입니다. 크기 차이는 단순한 차이같지만 사용자의 제품 사용행태를 완전히 바꿔놓습니다.

 

갤럭시탭의 7인치 크기도
그만한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갤럭시탭은 아이패드와는 정말 달랐습니다. 이 두 제품을
서로 비교하는 게 과연 합당한가 싶을 정도로요. 저는 컨디션이 좀 나쁘거나 돌아다닐 일이 많은 날에는 아이패드를 집에 두고 나옵니다.
무거우니까요. 갤럭시탭은 확실히 그런 부담이 적습니다. 집안에서는 일부러 리뷰를
위해 보는 게 아니라면 갤럭시탭을 딱히 찾지 않게 됐는데도 밖에 나가려면 아이패드보다는
갤럭시탭에 먼저 손이 갔습니다. 크기와 무게는 정말 중요한 차이입니다.

 

그러니까
두 제품은 마치 포켓북과 일반 단행본 같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실제로도 갤럭시탭은 포켓북 사이즈, 아이패드는 일반 단행본 사이즈죠. 생각해보세요.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포켓북으로도 소설을 읽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글에
집중하면 종이 크기가 좀 작은 건 별 문제가 아니거든요. 갤럭시탭으로도 소설을 읽거나 글이 많은 콘텐츠를 읽는 데는 별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양복 상의 안주머니에도 쏙 들어가니까
들고 다니며 뭔가를 읽기에는 더 좋았지요. 다만 전체 레이아웃이 중요한 신문이나 잡지
또는 도표나 그림을 많이 사용한 논문 등을 읽을 때에는 갤럭시탭은 부족했습니다.
화면이 큰 아이패드가 훨씬 나았죠. 7인치와 10인치라는 크기는 인치수로는 30% 차이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치가 대각선 길이를 뜻하기 때문에 화면 면적은 두배 차이가
납니다. 당연히 복잡한 레이아웃의 문서일수록 아이패드가 훨씬 보기 편합니다. 이건
어떤 제품이 우월하다 아니다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냥 다른 점인 셈이죠.

 

예를
들어 7인치라는 크기는 내비게이션 용도로는 최고였습니다. 갤럭시탭은 아이나비 내비게이션을 기본으로 설치한 채 판매됩니다.
한국 내비게이션 업체들의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특히 아이나비를 만드는
팅크웨어와 맵피를 만드는 엠엔소프트 두 회사의 내비게이션을 쓰다보면 다른 제품은
다 유치하게 보이죠. 게다가 갤럭시탭은 크기도 작고 가볍기 때문에 유리창이나 대시보드에 매달기 쉽습니다.
아이패드는 내비게이션으로 쓰기에는 크기와 무게가 좀 부담스럽죠. 게다가 갤럭시S와
마찬가지로 갤럭시탭에도 SK텔레콤의 T맵이 함께 제공됩니다. 내비게이션을 완벽히
대체해줄 수 있어 보입니다. DMB도 물론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갤럭시탭이 7인치 크기를 택하면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의 기준 화면 해상도인 800×480(가로 800개, 세로 480개의 점)
크기를 택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래야 앱 호환성이 보장되니까요. 그런데
뚜껑을 열고보니 갤럭시탭은 1024×600이라는 독자적인 크기의 화면을 택했습니다. 기존의 안드로이드 앱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리라는 우려도 나왔죠. 하지만 수십 개의 안드로이드 앱을 설치해봤는데
의외로 대부분의 앱이 제대로 작동했습니다. 특히 사용자가 많은 트위터나 구글지도 등의
앱은 갤럭시탭의 독특한 해상도에 맞춰서도 잘 작동했습니다. 인기 게임인 ‘앵그리버드’도 완벽하게 갤럭시탭의 화면 크기에 따라 실행됐죠. 다만 일반적인
안드로이드 앱은 스마트폰의 화면 크기를 고려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갤럭시탭의 넓은 화면 크기로 확대될
경우 메뉴나 아이콘의 크기가 약간 과장되게 커보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건 삼성전자의
문제라기보다는 태블릿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는 안드로이드 OS의 한계라고 봐야죠.

 

카메라가
달린 건 좋았습니다. 큰 화면으로 영상통화를 하고 싶다는 욕심은 별로 들지 않았지만
구글고글(영상검색)을 쓸 수 있다거나 증강현실 프로그램도 동작시킬 수 있는 점은
아이패드와 비교해 확실한 장점입니다. 그런데 카메라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았는지
카메라 자체의 품질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습니다. 삼성전자 휴대전화의 카메라가
일반적으로 품질이 꽤 좋았다는 점을 떠올리면 약간 의외였습니다. 그리고 셔터음은
너무 작위적이어서 기계 자체를 싸구려처럼 보이게 만드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제가
써본 건 시제품인만큼 최종 소비자용 제품은 이런 디테일까지 잘 가다듬었기를 기대합니다.
게다가 LCD를 사용하면서도 AMOLED 갤럭시S의 색감을 맞추려고 해서인지 기본 색상
설정에서 채도와 명암 대비가 지나치게 높았습니다. 같은 사진을 아이패드에서 보면
자연스러운데 갤럭시탭에서 보면 좀 과장돼 보이더군요. 사용자가 일일이 색 설정을
다시 하기란 좀 번거로운 일입니다.

 

안드로이드
새 버전인 프로요를 사용하는 것도 괜찮았습니다. 10시간을 버티는 아이패드보다는 배터리
시간이 다소 짧지만, 7시간을 버티는 갤럭시탭의 배터리도 결코 부족한 성능은 아닙니다.
그 덕분에 갤럭시탭을 모바일핫스팟(3G 통신망을 무선랜으로 바꿔주는 프로요의 기능)으로
쓰면 안정적으로 어디서나 노트북 등을 이용해 무선인터넷을 쓸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아직 최적화가 덜 됐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화면 전환 등에서 갤럭시탭이 약간씩
버벅거리는 느낌이 들더군요. LG전자의 스마트폰 옵티머스원이 훨씬 떨어지는
기계 성능에도 불구하고 매끄럽게 움직이던 것과 비교하면 갤럭시탭은 조금 더 손을 봐야한다는 게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물론 삼성전자가 차기 안드로이드 버전을 염두에 두고 갤럭시탭을 빠르게 업그레이드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갤럭시탭은 장점이 뚜렷한 태블릿입니다. 아이패드보다 낫거나 모자란 게
아니라 용도에 따라 뚜렷하게 선호가 갈릴 것 같았습니다.
제 개인적인 사용습관으로 얘기를 해보자면 저는 아이패드를 지하철과
거실 소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합니다.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휴대전화의 작은 화면으로
뉴스를 보자면 눈이 아프기 때문이지요. 또 소파에서 노트북을 켜는 것보다
아이패드를 켜는 게 훨씬 쉽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갤럭시탭의 사용습관은
조금 달랐습니다. 지하철에서 쓴다는 건 똑같았습니다. 오히려 갤럭시탭이 더
가벼워서 들고 다니기 편하다는 장점이 있었죠. 대신 갤럭시탭으로는 뉴스를 읽는
대신 영상을 보는 일이 늘었습니다. DMB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영상 재생이 잘
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역시 크기가 중요한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주머니에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갤럭시탭은 휴대전화와 비슷합니다. 편하죠. 아이패드는
불편합니다. 한 번 보려면 가방을 열고 꺼내야 하고, 다 보면 다시 가방에 넣어야
합니다. 아이패드는 가방에서 꺼낼 때 뭔가를 하겠다는 목적의식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직업상 뉴스를 빠르게 훑어봐야 하고, 많은 글을 읽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휴대전화를 꺼낼 때 딱히 뭘 하겠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시간이 남으니
휴대전화를 꺼내죠. 휴대전화 화면으로는 글을 읽기보다는 TV로 야구중계를 볼 수
있다면 더 좋습니다. 갤럭시탭은 그런 점에서 화면크기로는 태블릿에 가깝지만 사용행태로는
휴대전화와 더 비슷합니다.

 

갤럭시탭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국내에서야 7인치 태블릿은 물론, 태블릿 자체가 거의 보급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일단 갤럭시탭이 이 시장을 선점할 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아이패드는 둘째치고 갤럭시탭과 똑같은 OS, 똑같은 화면 크기를 가진 경쟁사의
태블릿이 시장에 쏟아져 나올 겁니다. 갤럭시탭보다 조금 더 얇고 가볍다면, 갤럭시탭보다
더 좋은 카메라를 달고 있다면, 갤럭시탭과 달리 무선랜(WiFi) 기능만 갖춰 값을
낮춘 제품이 판매된다면… 갤럭시탭의 진짜 능력은 그때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겠죠.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활발한 경쟁이 벌어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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