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관리자의 종말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 우리의 세상을 쓸모있게 발전시키던 사람들은 장인이었습니다. 품질 좋은 낫과 괭이를 만들어 농업을 번창시키고, 아름다운 도자기와 맛있는 요리로 사람들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었죠. 이런 실용적인 기술을 갈고 닦아 세상을 앞으로 전진시키기 위해 그들은 오랜 기간 수련의 과정을 거쳤고, ‘명인’이 되기 위해서는 동료집단으로부터 그 뛰어난 기술을 인정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스승에서 제자로, 개인에서 집단으로 그들의 지식이 퍼져나갔고 우리는 그 과정을 발전이라고 불렀습니다.
모든 걸 변화시킨 건 산업혁명이었죠. 티끌하나 없는 그릇을 만들어내는 숙련된 장인의 노하우는 잘 설계된 기계가 대체했고,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농기구는 솜씨좋은 대장장이의 제품보다도 더 값싸면서 품질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소수의 명인은 살아남아 그들의 독특한 솜씨에 대한 대가를 인정받긴 했지만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더 이상 사회는 장인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기계를 켜고, 끄고, 부속품을 갈아줄 능력을 갖춘 단순 노동자가 필요할 뿐이었죠.

똑같은 변화가 최근의 정보기술 혁명을 통해 일어나고 있습니다. 중간관리자의 역할이지요. 전통적으로 산업혁명 이후의 현대 사회에서 중간관리자가 했던 일은 팀을 관리하는 일이었습니다. 한 회사에 오래 근무하면서 회사를 속속들이 파악해 고위관리자와 실무자 사이의 윤활유가 되어주는 역할이 하나였다면, 다른 역할은 서로 다른 업무를 맡아 수행하고 있는 후배들이 뭔가를 질문했을 때 어떤 질문에라도 대답해 줄 수 있는 조언자의 역할이었죠. 모든 게 변했습니다. 너무나 바쁜 현대사회는 더 이상 한 회사에서 평생을 바치는 직장인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한 회사를 속속들이 파악하는 중간관리자가 태어나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리고 후배들은 모든 걸 대답해 줄 수 있는 선배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모든 지식은 위키피디아에, 인터넷에 올라와 있습니다. 선배보다 더 많은 걸 답해 줄 수 있는 공간이 생겼죠.

산업혁명도 장인의 역할을 모두 빼앗아가진 않았습니다. 그들은 품질관리를 맡아야 했고, 기계를 설계하는데 지식을 보태야 했으며, 기계를 켜고 끄고 부품을 나르는 노동자로 변신하기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형태의 장인은 대부분 사라졌죠. 중간관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은 경험많은 중간관리자를 그다지 많이 필요로 하지 않으며, 중간관리자의 지식 같은 건 우스운 수준으로 전락시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신세대들은 이제 더 이상 중간관리자의 얘기 따위는 듣지 않습니다. ‘일일보고’를 올리고, 작업성과를 측정하는 루틴한 일들은 매니저가 할 일이 아니라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됐습니다. MIS가 그들을 도와주기 때문이죠. 단순 보고서 작성은 기계가 하는 일입니다. 대신 그들은 직장의 윗사람으로부터 조언을 기대합니다. 상사가 자신의 멘토나 코치가 되어주길 바라는 거죠. 산업혁명은 장인(master)에게서 숙련된 지식의 필요를 빼앗고는 그들을 관리자(manager)로 전락시켰습니다. 정보혁명은 관리자에게서 평범한 일상업무 관리라는 필요를 빼앗고는 그들로 하여금 장인(master)이 되어 21세기의 도제를 멘토링하고 코칭하라고 종용합니다.

이 내용은 런던비즈니스스쿨에서 노동의 미래에 대해 연구하는 린다 그래턴 교수가 하버드비즈니스리뷰 1월호에 기고한 ‘중간관리자의 종말’이라는 칼럼을 다시 정리한 내용입니다. 그래턴은 이런 변화를 맞아 개인은 마치 자신의 ‘서명’과 마찬가지로 자기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21세기의 장인이 되라는 것이죠. 우리 사회는 이미 자신의 존재가 ‘인사팀의 인정’이 아닌 ‘동료집단의 평가’로 규정받게 되는 사회로 변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좋은 내용이라 여기에도 옮겨봤지만, 사실 이 포스트를 쓰게 된 계기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 때문이 아니라 트위터에서 본 한 링크 때문이었습니다. ‘구글이 직장에서 과장(manager)을 없앨 수 있을까?’라는 글에 대한 링크였죠. 이 글을 읽고 나니 뭔가 좀 이상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경영저널이 중간관리자의 역할을 그렇게 단순하게 보고 있는 글을 실어주다뇨? 그래서 블로그가 참고한 기사를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이 기사 속의 키워드 몇 개로 검색해보니 린다 그래턴 교수가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기고한 이 칼럼이 검색됐습니다. 칼럼을 기사로 옮긴 것이었죠.

그래턴의 칼럼에 있는대로, 저 번역 기사에 있는대로, 우리는 순식간에 정보와 지식을 검색해보고 비교하고 평가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늘 두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늘 평가당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니까요. 중세의 장인들을 장인으로 만든 건 늘 그들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었던 동료 집단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 중세식 평가의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약간 오싹합니다. 제 동료와 후배들, 그리고 제 글을 읽을 독자들은 과연 저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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