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 Sermo

약을 복용했는데 특이체질이라서 10만 명에 한 명 쯤 발생하는 부작용을 겪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제품의 불량이라면 1000개에 1개 정도면 참을만한 수준이지만, 사람의 건강과 생명은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것이라서 1000번에 1번 심각한 부작용을 겪는게 ‘참을만한 수준’일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신약이 세상에 나오려면 수많은 임상실험을 거치는 것이기도 하죠. 그래도 문제는 어디선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더 많은 실험을 거쳐 완벽한 약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일단 어디선가 발생한 부작용을 빠르게 보고받고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면 훨씬 효율적이겠죠. 세상에는 오늘도 계속해서 약을 처방하는 수많은 의사가 있을 테니까요. 문제는 의사들이 이런 경험을 나누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제약회사에 문제점을 보고해봐야 제약회사에서는 충분한 사례가 보고될 때까지는 드문 부작용을 크게 알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겠죠. 실제로도 약의 부작용 때문인지, 다른 문제 때문인지 쉽게 결론내릴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FDA나 한국의 식약청 같은 곳에서 이런 수많은 예외사례를 하나하나 검토하기도 인력과 예산 문제 등을 감안하면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그래서 다니엘 팔레스트런트는 인터넷을 이용해 서비스를 하나 만듭니다. 일종의 의사들을 위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였죠. 페이스북도 어차피 처음에는 하버드대학 학생들을 위한 SNS였으니 특정 직업을 위한 SNS를 만드는 것 자체가 그렇게 별다를 것도 없었습니다.

이 서비스가 특별해진 건 가입할 때 의사 면허 등 구체적으로 자신이 의사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요구하면서도 정작 서비스 상에서 활동할 때에는 의사 개인을 익명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해줬기 때문입니다. 가입 때에만 의사라는 증명을 요구할 뿐 일단 이 증명만 마치고 나면 스스로 정한 닉네임만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해주죠. 실명이었다면 제약회사의 소송이 두려워 아무 얘기도 못했을지 모르는 의사들이 자유롭게 약물 부작용의 가능성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의견을 나누는 사람들이 모두 의사들이어서 괜한 말을 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엄청난 변화가 생긴 거죠. 혹시나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의견에 대한 평가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만약 의도적으로 잘못된 약물 부작용 정보를 올리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의사들이 이를 의심해 나쁜 평가를 주고, 이게 쌓이면 해당 닉네임은 신뢰도가 낮아지는 시스템이죠.

그러자 결과적으로 10만 명이 넘는 미국 의사들이 이 사이트에 가입하게 됐습니다. 혼자 떨어져 환자를 돌봤더라면 알지 못했을 다양한 진료 경험이 인터넷을 통해 공유되는 건 물론 특정 약물에 대한 부작용이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날 경우 전문가 집단 사이에 일종의 ‘경고’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한 겁니다. 모두가 이 서비스를 좋아했습니다. 의사들은 신뢰할만한 동료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아했고, 환자들은 개별 의사들의 경험이 간접적으로나마 풍부해지기 때문에 의료행위에 대한 신뢰를 더 가질 수 있어서 좋아했죠. 일부 제약회사들은 약물 부작용에 대한 ‘잘못된 소문’이 돌 수 있다며 불편하게 생각했지만 사람들은 이들의 주장을 그다지 설득력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의사들은 이 서비스를 이용할 때 돈을 내지 않습니다. 가입비도, 이용료도 없습니다. 신뢰할만한 좋은 경험을 무료로 얻을 수 있으니 가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대신 돈은 제약회사나 연구소, 정부기관 등이 지불합니다. Sermo의 서베이나 이 서비스를 통해 모아진 전문가 의견 등이 워낙 품질이 높다보니 기꺼이 돈을 내고 사겠다는 것이죠.

비슷한 모델을 다른 전문가 집단에도 적용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예를 들어 학교의 급식을 담당하는 영양사들만 접속할 수 있는 소셜네트워크라면, 주어진 예산 안에서 짤 수 있는 훌륭한 식단이라거나 지역별로 나는 특산 재료 위주로 식단 만드는 법 등을 이들이 고민해서 아이들에게 예산 범위 내에서 더 좋은 밥을 먹일 수 있지 않을까요? 기술이 엔지니어의 손 안에서만 머물 때 기술은 그저 상품이 됩니다. 하지만 기술이 전혀 다른 분야와 결합해 퍼져나가면 기술은 문화가 되죠. 한국의 다니엘 팔레스트런트는 어디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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