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는 사람들

평균 사이트에 머문 시간 1분 13초. 제 블로그를 방문해 주시는 여러분들께서 이곳에 머무르는 시간의 평균입니다. 대부분은 신규방문자이고, 바로 다른 페이지로 빠져나가는 이탈률도 상당합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방문하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죠. 평균 페이지뷰는 1.39이니 한 페이지에 쓰는 시간은 52.5초 정도 걸리는 셈입니다.

처음에 저는 이런 통계를 보고 두 가지 가설을 세웠습니다.
– 1. 이 블로그의 글 한 편을 제대로 읽는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한 1분 30초다. 따라서 50초 남짓한 시간만을 쓰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사람들이 글을 전부 읽지 않고 겨우 절반 조금 넘게 읽는다는 뜻이다.
– 2. 이 블로그의 글을 1분30초 이상 들여 읽는 사람이 한 명 존재한다면 거의 읽지 않고 그냥 나가버리는 사람들은 그 두배쯤 된다는 뜻이다.

최근 새로 번역된 책 한 권을 읽고 있습니다. 니콜라스 카의 The Shallows입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됐죠. 읽다가 재미있는 내용을 발견했습니다. 1997년 이뤄진 한 연구 결과였습니다. 지금은 오라클에 인수된 썬마이크로시스템즈 출신의 제이콥 닐슨이라는 웹사용성(web usability) 컨설턴트의 연구였습니다. 닐슨은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도대체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어떻게 글을 읽는가?”

그의 답은 명쾌했습니다.

“읽지 않는다.”

제 가설의 답도 분명했습니다. 2번의 가능성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냥 대부분의 사람들이 1번 가설처럼 글을 제대로 읽지 않는다고 봐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웹 문서를 전통적인 책이나 신문에 실린 글처럼 읽지 않았습니다. 대신 많은 이들이 글을 그저 스캔했죠. 눈으로 문서를 훑어보는 과정을 추적해 봤더니 ‘F’자 형태라고 합니다. 웹페이지 첫 줄은 끝까지 읽지만 그 뒤로는 그저 아래로 눈을 그냥 훑어내리고 도중에 걸리는 문구에서 잠시 멈춰섰다가 또 아래로 내려가는 식입니다. 방문자가 글을 다 읽어줄 거라 생각하는 건 웹페이지 제작자의 착각일 뿐인 것이죠.

당시 그가 벌였던 실험과 그에 따른 웹에서 통하는 글쓰기의 방식을 보시려면 제가 오늘 이 글에 군데군데 굵은 글씨를 섞어 쓰고, 1, 2로 번호를 매기는 방법을 가르쳐 준 닐슨의 페이지를 방문해 보시면 됩니다. 닐슨이 말하는 웹에 어울리는 글쓰기 방식이란 게 영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우리가 인터넷에 익숙해질수록 이런 식으로 정리하는 짧은 글이 편하게 다가온다는 생각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지금 500년 가량 같은 방향으로 발전해 왔던 읽고 쓰는 능력에 대한 최초의 심각한 변화를 겪고 있는 인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카의 생각은 사람들이 점점 ‘선형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게 변해 간다는 겁니다. 깊이있고, 논리적이며, 시간과 논리의 구조가 정연한데다 통제 가능한 방식의 사고 과정은 책과 인쇄매체가 우리에게 지식을 주는 지배적인 매체이던 시절에 각광받던 사고의 방식인데 지금 우리는 비선형적 사고를 하고 있다는 것이죠. 비선형적 사고의 과정에서는 연대기적으로 이어지는 서사가 전혀 중요하지 않고, 논리적인 맥락도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편적인 지식이라도 필요에 부합하는 지식을 최대한 빠른 시간에 많이 습득하는 능력이 훨씬 중요하게 대접받지요. 이는 세대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인터넷보다는 책을 이용해 정보를 습득하는 방식에 익숙한 세대는 논리적인 대화 방식을 선호하는 반면, TV가 첫 미디어였고 인터넷을 자라면서 공기처럼 사용했던 세대는 더 직관적인 대화 방식을 선호합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도 그렇습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신문에서 글을 쓰는 호흡에 익숙해졌으니 괜찮은데, 초기에는 선배들에게 꽤 많이 지적을 받곤 했습니다. 도대체 제 글을 보면 어떤 맥락에서 그런 결론이 튀어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였죠. 아마 지금은 몸에 익은 기술로 그저 그런 단점을 가리고 있는 것일 뿐 본질적으로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돈 탭스콧 같은 사람에 따르면 제 나이 정도가 이른바 ‘디지털 네이티브’의 시작이기 때문이죠. 저 스스로도 대학생 시절에 책은 읽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요약된 정보가 인터넷에 널려 있고, 구글과 야후가 순식간에 지식을 찾아주는데 책 한 권을 훑어가며 도서관에 틀어박혀 원하는 지식을 찾는 과정은 너무 지난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직접 원두를 볶고 그라인더로 갈아 뜨거운 물을 부어 내린 커피와 그저 단순히 뜨거운 물에 휘휘 저어 녹여낸 인스턴트 커피는 둘 다 카페인을 담고 있는 검은 물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우리에게 주는 경험은 완전히 다릅니다. 책 대신 인터넷을 택하며, 선형적 지식 대신 비선형적 정보에만 목말라 하는 우리의 뇌는 그런 커피향같은 건 필요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건 아닐까요.

p.s. 점점 블로그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줄어든다고 합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그 기능을 대신한다고 하죠. 책이나 논문, 잡지의 기사와 비교하면 턱없이 짧은 블로그 글조차도 더 짧은 글에 밀려 기능을 잃어갑니다. 이것도 읽지 않는 트렌드의 연장이라 생각하니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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