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에서 1등한 뒤 전국 1등한다는 생각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비키 스토리.

어느 순간 이상한 기업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내수 시장 같은 건 아예 관심도 없고 이를 건너뛰고 해외로 나가겠다는 생각을 하는 기업들이었습니다. 시작은 딱 1년 전, 소셜 게임을 만들겠다는 벤처 창업가들의 모임에 갔을 때였습니다. 이분들의 머릿속에는 한국 시장같은 건 없었습니다. Born Global/창업부터 세계 시장 노리는 슈퍼 벤처 시리즈의 아이디어가 생겼던 때입니다.
가슴속에 담아두고만 있던 아이디어를 제대로 한 번 써보겠다고 맘 먹게 된 것은 이런 기업을 하나둘 만나게 되면서부터였습니다. 올해 1월, 비키의 호창성 문지원 대표님을 만나게 된 건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이들이야말로 본 글로벌이었죠. 테크크런치가 주최하는 크런치어워드에서 비키가 Best International 부문을 수상한 계기로 샌프란시스코와 싱가포르를 오가는 두 분의 바쁜 일정 사이에 시간을 좀 냈습니다. 솔직히 새로운 세상을 배우는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냉정하게 말하면 비키는 그렇게 대단한 성과를 낸 회사가 아닙니다. 아직 의미있는 사용자를 모으기 위해 서비스를 확장하는 중이고, 대규모 투자를 보상할 큰 수익을 내고 있지도 못합니다. 사실 한국에 이런 회사가 있었다면 벌써 망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회사에 사람들이 걸고 있는 기대는 생각보다 큽니다. 역설적으로 비키가 한국에 있는 회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회사는 전통적으로 큰 수익을 내지 못하는 비주류 콘텐츠, 예를 들어 한국이나 인도, 이집트, 인도네시아의 드라마와 영화를 철저하게 매니아 시장에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통시키며 틈새 시장을 노립니다. 다만 그 틈새 시장의 소비자가 글로벌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틈새 치고는 꽤 크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사이트를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비키의 모델은 단순합니다. ‘비주류 국가의 콘텐츠(한국, 인도 등)를 사다가 자막을 달아서 각국 언어로 번역한 뒤 세계 시장에 유통시킨다’는 것이죠. 다만 자막을 다는 작업을 네티즌이 하기 때문에 번역 비용은 제로에 가깝고, 번역의 수준은 높으며, 번역에 걸리는 시간은 짧습니다. 경쟁사가 쉽게 따라하기 힘든 선점효과가 있기 때문에 주목받는 겁니다. 시리즈 2회는 이렇게 게재됐고, 다음은 미처 다 옮기지 못한 두 분 대표님과 나눈 대화 내용입니다.

– 두 분 관계가 언제 시작되셨나요?(문-호 대표는 부부입니다.)
“문: 1994년에 대학교 입학하자마자 만났어요. 저는 전공이 특수교육이고 미술을 복수전공했어요.”
“호: 연인과 함께 창업한 것이죠. 2000년 4월에 졸업하면서 웹씨인터미디어라는 그래픽 회사를 창업했어요.”
“문: 막차 탔던 거죠.”
“호: 창업 후 1주일 뒤 닷컴버블 붕괴라는 신문기사가 나왔어요. 주위 사람들은 다 쉽게 앤젤투자 받던데, 우리가 창업하니까 투자는 사라지고 회사는 운영해야 하니까 외주 용역을 받아서 그거 개발하느라 시간 다 쓰고…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서 3, 4년을 허우적댔죠. 2003년 말, 정리했어요. 그리고 저는 한화리조트 식품사업부에 갔어요. 예. 전혀 관계없는 일을 시작했죠.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신사업기획부서였거든요. 그 때 시간도 좀 났고, 시간 났을 때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후딱 결혼하게 된 겁니다.”
“문: 그러니까 우리 인생 최악의 시기에 결혼하게 된 거죠.”
“호: 결혼했던 그 시절이 너무 우울해서 종합적으로 당시 기억이 안 좋아요. 그리고 2006년에 같이 유학을 가게 됐죠. 한국에선 온라인게임 말고는 비전이 없어 보였거든요. 그러면 외국 가서 견문을 넓히고 기회를 찾아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MBA를 스탠포드로 갔고, 문 대표는 하버드대 교육공학 석사를 갔어요. 원래 전공이 교육이고, 커리어는 IT니까 잘 맞았죠. 그 때 1년 동안 떨어져 지냈습니다.”

– 비키는 그 때 시작된 거죠?
“호: 우리가 참, 영어를 정말 못하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영어를 못해서 한이 맺혔습니다. 그게 계기가 돼서 비키란 아이템을 갖게 됐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문: 자막을 만들면서 미드를 보면 영어 공부가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자막 만드는 과정을 자세히 조사했어요. 그러다보니 이런 자막 작업이 전 세계적인 현상이더라고요. 팀을 이뤄서 일하는 자막 제작 프로세스라거나 자막팀 내의 알력 등이 비슷한 거에요. 예를 들어 미드 번역팀이면 영어 실력에 따라서 팀 내에서 갖는 권력이 달라져요. 영어 잘 하면 큰 소리치고, 영어 못 하면 번역 대신 타임싱크만 맞추게 되고… 이런 걸 기술로 구현해 주면 어떨까 싶었어요. 타임싱크 쉽게 맞추는 프로그램 만들고, 번역 많이 하면 점수 올라가 평판이 높아지고, 사용자들끼리 서로 투표해서 좋은 번역 고르게 하고… 처음부터 사업화 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는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놀아도 사업화를 고민하죠. 그리고 사업도 한 번 해봤으니까 이땐 좀 어찌 해야할지 알고 있었어요. 처음에 사람부터 뽑는 게 아니라, 내가 좀 해놓고 그 다음에 어느 시점에 사람을 뽑아야할지 알게 됐던 것이죠.”
“호: 제가 투자를 모아왔어요.”
“문: 그동안 제가 뺑이치며 비키를 만들었죠.”
“호: 7개월 정도 걸쳐서 프로토타입을 개발했습니다. 한국에 기존에 알고 지내던 개발자 두 명을 리모트로 아웃소싱했었죠. 2008년 2월 정도에 프로토타입이 나왔어요. 이걸 갖고 스탠포드 MBA 창업 클래스에서 소개했습니다다. 여기서 비즈니스모델 프리젠테이션을 했는데 우리처럼 working prototype이 있는 곳이 없었어요. VC가 패널로 오셔서 피드백을 주는데 그 중 한 분이 우리 멘토가 되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멘토를 1개월 하시더니 투자를 하겠다는 겁니다. 시드머니 25만 달러가 이렇게 투자됐어요. 2008년 3월 이야기입니다. 여기까진 잘 풀렸어요. 그러다 2009년 망할 뻔 했죠.”
“문: 그 때 미국에 경제위기 왔거든요. 우리가 뭘 하는 타이밍이 참 그래요.”
“호: 2008년 9월에 막 베타서비스 시작하려는데 리먼 사태가 터졌죠.”
“문: 하필 그 때 회원이 갑자기 엄청나게 늘었어요. 기분은 너무 좋은데, 정말 폭발적이었거든요. 그런데…”
“호: UV(방문자)가 월 100만이 넘고, 150만도 넘었습니다. 2009년 말 거의 200만까지 갔어요. 그래도 좀처럼 펀딩이 안 되더라고요. 결국 그때 다시 개인돈 집어넣었죠.”
“문: 그때까지 벌어서 모아둔 돈 다시 태워넣었죠. 펀딩은 안 되도 사용자는 늘어나니까 중단하기 너무 아쉬운 거에요. 25만 달러로 2년을 버틴 셈인데, 너무 힘들었어요. 정상적으로 미국에서 사업하면 이 돈으로 못 버텨요. 별 수를 다 썼어요. 한국에서 원격으로 작업하면서 사무실 비용 아끼고, 몸으로 때우고…”
“호: 2010년 초에는 사용자가 250만 넘어서 300만 가까이 됐어요. 그러면서 미국 경기도 바닥을 쳤죠. 이때부터 콘텐츠 라이센싱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이젠 방송국에서 꺼리더라고요.”
“문: ‘윗분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사업 모델’이라니까 기다려야죠. 어쩌겠어요.”
“호: 첫 계약은 2009년 여름. 그룹에이트(꽃보다 남자)였어요. 이후 KBS도 들어왔고, 그러면서 벤처캐피탈도 주저주저하다가 투자하더라고요. 콘텐츠 라이센싱 비즈니스가 워낙 힘들다고 투자를 꺼리는데 우리가 라이센싱을 따내니까 믿게 된 것이죠. 2010년 5월에 430만 달러 투자 받았어요. 그때가 시드머니 이후로 두번째 투자였죠.”
“문: 라이센싱이 중요해서 그쪽 전문가가 필요했어요. 라즈믹 CEO가 NBC유니버셜의 SVP였죠. 해외 비즈니스, 그러니까 외국 콘텐츠 수입 또는 NBC 콘텐츠 해외수출 전문가입니다. 호 대표 스탠포드 1년 선배기도 하고요. 원래 우리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2010년에 합류한 것이죠.”

– 본사는 싱가포르인데 비즈니스센터는 미국에 있다면서요?
“호: 미국에는 두 명 밖에 없습니다. 한국에 3명, 나머지는 싱가포르에 있죠.”
– 왜 싱가포르인가요?
“문: 싱가포르가 우리 같은 회사가 제품 개발하기에 환경이 좋습니다. 물론 미국이 환경이 더 좋죠. 그런데 비용이 두 배 이상 차이 나요. 반면 싱가포르는 정부에서 ‘제2의 실리콘밸리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실리콘밸리 DNA를 싱가폴에 심겠다면서 실리콘밸리 출신이 싱가포르에서 일하도록 보조금을 지원합니다. 특정 조건을 만족시키는 직원을 고용하면 직원 임금의 일정 부분을 보조하는 것이죠.”
– 한국보다 싱가포르가 좋은가요?
“호: 미국에 비해서 인력의 다양성은 많이 떨어져요. 하지만 눈뜨고 찾아보면 좋은 사람 많습니다.”
“문: 한국보다 나은 면도 있어요. 한국에 똑똑한 사람들이 적다는 게 아닙니다. 일단 싱가포르 엔지니어는 영어가 되기 때문에 좋아요. 외국어 능력 때문이 아니라, 영어로 정보를 접하고 배우니까 개발언어라거나 개발환경 측면에서 이들이 글로벌스탠다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요. 반면 한국 친구들은 ‘한국식 기술’이나 ‘한국적 환경’에 따라 기술을 배우죠. 세계 시장과 동떨어져 있는 겁니다.”
“호: 예를 들어 싱가포르 사람들이 만든 웹사이트는 파이어폭스나 크롬에서 잘 돌아가는데, 한국 엔지니어는 이런 데 별로 신경을 안 써요. 사소한 사례지만, 중요한 태도 차이죠. 그러니까 한국 사람들은 필요한 게 있으면 직접 다 만들어요. 그런데 외국에서는 직접 만드는 대신 이미 남이 만들어놓은 걸 돈 주고 사와서 조립만 해요. 혼자 다 만드는 것보다 남의 걸 가져와서 만드는 게 훨씬 좋은 방식입니다.”
“문: 왜냐하면, 검증이 됐고, 서비스 자체의 안정성이 높고, 호환성도 좋거든요.”

– 훌루나 넷플릭스랑 비슷해 보입니다.
“호: 지금 현재 훌루가 우리 파트너사에요. 콘텐츠 공급하고 있습니다.”
“문: 우리는 니치를 찾은 겁니다. 기존 콘텐츠 마켓이 아닌 기존 마켓에 진입하지 못하던 외국 콘텐츠를 유통시키는 채널로 봐주세요. 비키는 크라우드 소스를 활용한 콘텐츠의 글로벌라이제이션입니다. 한 축은 번역이죠. 다른 축은 소셜액티비티에요. 외국 콘텐츠는 일단 자막이 있어야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자막이 생긴 콘텐츠를 유통시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인지도가 없으니 기존에는 전통적인 마켓에 비주류 콘텐츠가 들어가기 힘들었지만 소셜미디어가 이런 걸 바꾸는 거죠. 한편으로 자막 만들고, 다른 편에선 이 커뮤니티가 입소문을 냅니다. 자막 완성되면 자막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에피소드1 자막이 완성됐다, 진짜 재밌다” 이런 내용을 막 올려요. 그러면 사람들이 봅니다.”
– 누가 보나요?
“호: 북미 40%, 유럽 30%, 동남아 30% 정도로 분포를 보시면 됩니다.”
“문: 우리 콘텐츠가 대부분 한국 드라마니까 한국 사람들은 볼 일이 별로 없죠.”
“호: 미국 사용자만 보면 40~45%가 백인이고, 한국 교포는 3% 정도, 히스패닉과 흑인이 각각 15% 정도, 나머지는 아시아계 미국인이에요. 이 정도 분포다. 미국에 있는 한국인이 보는 사이트라고 생각하시면 오산입니다.”
“문: 헐리우드 유통시장은 거의 독점 시장이에요. 진입 불가능한 시장이죠. 한국 콘텐츠가 아무리 좋아도 이걸 내다 팔 수 있는 커넥션이 없습니다. 웹이 이래서 중요해요. 하지만 웹에 올려만 놓는다고 사람들이 보는 게 아니죠. 훌루에 들어만 간다고 보는 게 아니에요. 거기 콘텐츠가 얼마나 많은데요. 네이버에서 뭐 찾아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비키는 그래서 징검다리고, 우리는 징검다리를 놓는 일을 하는 거죠. 우리가 제휴사 네트워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지금 미국에서는 훌루와 비오에 콘텐츠가 들어가요. 또 유럽에서는 유튜브의 유일한 경쟁자라는 데일리모션이 파트너고요. 우리가 비키로 버즈를 일으키면 그런 파트너사에서 많이 노출되는 것이죠.”
“호: 우리 시리즈에 페이스북 ‘라이크(Like)’ 버튼을 달면 한 시리즈에 5만~6만 개가 모여요. 이 정도로 소문이 퍼진다는 얘깁니다. 우리가 시리즈 하나를 띄우는데 이 정도의 역할을 한다는 걸 콘텐츠 제작자들께서 좀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비키가 아주 좋은 모델인 이유죠

얘기가 끝나갈 때 즈음 물어봤습니다. 해외에서 사업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고요. 한국에서 성공을 거둔 뒤 그 성공을 바탕으로 해외를 나가는게 안전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이들은 다른 답을 들려줬습니다.

“호: 실리콘밸리에 있으면 한국에서 견학도 많이 오고, 관심도 많아요. 개인적 연락도 많이 받죠. 한국에서 이러이런 우수한 기술 개발했다며 미국 시장 진출하겠다는 분도 많이 봅니다. 그런데 90% 정도의 케이스가 답이 잘 없어요. 무슨 얘기냐면, “한국에서 제품 개발을 마쳤으니 글로벌 시장으로 가기 위해 현지화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오시는 거에요. 그런데 이렇게 할 수 있는 제품이 그리 많지 않아요. 기획 단계부터 글로벌 시장에 맞는 컨셉과 스펙으로 나가야 하는데, 제품 개발 스펙이 한국에서 어느 정도 다 나온 다음에야 이걸 현지화하겠다고 나서니 잘 될 리가 없는 것이죠.”
“문: 이건 ‘반에서 1등하고, 전교에서 1등하고, 전국에서 1등하겠다’는 마인드 같아요. 한국에서 잘 해서 1등 한 다음에 세계에서도 1등으로 인정받겠다는 얘기죠.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완전히 시장이 다르거든요. 한국 소비자가 관심있는 것과 글로벌 소비자가 관심이 있는 게 달라요. 그러니 무엇을 만들어야 하느냐는 단계부터 생각을 글로벌에 맞춰 해야 사업이 되는 겁니다. 어떻게 만드느냐는 제작의 과정도 중요해요. 글로벌스탠다드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야죠. 그러지 않으면 해외 진출이 잘 되기 쉽지 않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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