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 괴롭히는 ‘데이터 돼지’를 위한 변명

지난해 1월이었습니다. 미국 최대의 이동통신사 버라이즌 와이어리스의 CTO 딕 린치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오늘날 우리 통신 환경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한달에 몇 기가바이트씩 데이터를 사용하는 ‘데이터 돼지들'(bandwith hogs)을 위해 불과 몇메가바이트밖에 쓰지 않는 보통 사람들이 대신 돈을 내줘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이런 환경은 장기적으로 지속불가능하며 소비자들도 결국 ‘데이터 돼지들을 위한 보조금’을 내는데 환멸을 느끼게 될 거란 주장이었습니다.
1년 뒤, 버라이즌은 발렌타인데이 시즌에 맞춰 아이폰4를 선보입니다. 그리고 AT&T가 거둬들이겠다던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자랑스럽게 내놓습니다. “여러분! 버라이즌에서는 무제한 데이터 통화가 가능합니다!” 지속불가능하다던 말에 동의하면서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거둬들였던 AT&T는 올해 초부터 슬금슬금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 가입을 다시 받기 시작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아니지만, “다시 이용하고 싶다”고 강하게 요구하거나,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 가입이 불가능해 항의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재가입을 받기 시작한 것이죠. AT&T의 공식 입장은 “우리는 소비자 개개인의 요구사항을 면밀히 검토해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바다 건너 얘기를 꺼낸 건 최근 무제한 데이터 요금을 쓰는 소수의 통신 사용자가 보통 소비자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는 논리의 보도들 때문입니다. 이런 기사들을 보다보면 제가 꼭 앞서 얘기한 ‘데이터 돼지’가 된 느낌입니다. 지난해부터 저는 계속해서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해 왔습니다. 현재의 통신환경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헤비 유저, 그러니까 통신사의 표현에 따르면 ‘데이터 돼지들’에게 일정량 이상의 사용에 대해 제한을 가하면 될 거라는 대안도 소개했습니다. 실제로 해외의 여러 사업자들이 일정량 이상의 사용자에게 전송 속도를 강제로 떨어뜨린다거나, 사용이 붐비는 시간대에 접속 제한을 한다는 식의 대안을 실행한 바 있습니다. 이 요금제를 국내 처음으로 도입했던 SK텔레콤도 동영상과 음악을 이용하는 사용자의 경우 패킷 분석을 통해 접속 제한을 해서 통화 품질을 유지하겠다고 얘기한 바 있습니다. KT와 LG유플러스도 “우리도 그 정도 접속 제한을 한다면 데이터 무제한 요금을 도입하고도 통화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그래놓고 지금 와서 통화 품질 문제가 생기자 너도나도 말 바꾸기입니다. “데이터를 많이 쓰는 소수 사용자가 다수의 일반 소비자에게 피해를 준다”며 편가르기를 합니다. 데이터를 많이 쓰는 소수 사용자에게 제한을 가하겠다고 요금 약관 신청도 해놓고, 그럴 기술이 있다고 기자간담회까지 열었던 회사들이 이제와서 소비자 탓을 하는 셈이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통신 선로가 주고받는 데이터 용량을 뜻하는 ‘대역폭’은 늘 부족함을 겪게 마련입니다. 대역폭의 발전 속도보다 이 대역폭을 이용한 새로운 서비스들의 발전 속도가 조금씩 빠르기 때문이죠. 여기서 눈여겨 볼 건 대역폭을 이용한 서비스의 발전 속도는 늘 대역폭 자체의 발전 속도보다 ‘조금만’ 빠르다는 겁니다. 이용할 수 있는 통신환경에 제한이 있는데 서비스만 앞서 나갈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최근의 무선통신 관련 문제점은 ‘유선 환경’을 위해 만들어진 서비스가 무선 환경에서 서비스되면서 나타나는 문제입니다. 많이 앞선 서비스를 덜 발전된 통신환경에서 쓰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와 관련된 본질은 서비스에 뒤쳐진 통신환경을 어떻게 발전시키느냐의 문제입니다. ‘지속불가능한 서비스’라거나 ‘일부 소비자의 과욕’ 같은 게 전혀 아닙니다.

가끔 과거에 써놓은 기사를 몇년 지난 뒤 읽다보면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있습니다. 요즘도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다행히 2007년 경쟁이 심했던 상황에 다른 분야에 있어 3G(WCDMA, 현재 아이폰의 통신방식) 서비스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많이 쓰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러저런 간접적인 언급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주로 “WCDMA 서비스가 시작되면 얼굴을 마주보는 영상통화와 초고속 무선인터넷 서비스, 음악감상 서비스들이 활짝 꽃피게 될 것”이란 예상이었습니다. 2005년 통신사들이 펼친 청사진을 받아쓰기했던 결과입니다. 6년이 흘렀습니다. 그들이 ‘곧 온다’던 그 시기가 드디어 6년 만에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서비스를 꽃피운 사용자들을 ‘돼지’라고 부릅니다.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이 네트워크준비지수라는 통신환경 발전 지수를 발표했습니다. 한국은 일반 소비자와 기업들의 통신 사용률과 응용도 측면에서 최고 점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통신요금과 서비스, 정부의 제도적 지원에선 하위권입니다. 종합 점수는 그나마 세계 10위권입니다. 누구 덕분일까요? ‘데이터 돼지들’ 덕분이지 않았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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