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버스 그 이후, 그리고 그 이후

스마트폰 쓰는 분들이 거의 모두 갖고 있는 앱이 하나 있습니다. ‘서울버스’라는 앱이죠. 집안에 앉아서도 가까운 정류장에 버스가 몇 분 쯤 있다가 도착할지 짐작하게 해주는 앱입니다. 예전에 ‘스마트폰 이용하는 중장년’ 기사를 써보려고 만났던 한 주부는 이 앱 때문에 스마트폰을 사게 됐고, 이후 스마트폰 강좌까지 찾아다니고 계실 정도였죠. 추운 날 미리 밖에 나가 벌벌 떨며 기다리는 시간을 줄여주니까요. 그리고 또 하나 많이 알려진 얘기가 이 앱을 만든 사람이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란 사실입니다. 2009년에 고2였고, 지금은 대학생이 됐죠.
최근 이 앱을 만든 유주완 씨가 서울버스에 광고를 달았다가 곤혹을 치뤄야 했습니다. 사용자가 반발했거든요. 서울버스 앱의 핵심인 버스 도착 예정시간 정보는 서울시나 각 지방 자치단체가 갖고 있는 공공재산인데 그걸 이용해 개인의 돈벌이에 쓴다니 너무하다는 겁니다. 게다가 제가 보기엔 우연히도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인터넷 기업 다음의 ‘다음지도’ 앱에 있는 버스 도착시간 안내 기능이 디자인 측면에서 유 씨의 서울버스 앱과 너무 비슷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고교때 스마트폰 앱 서울버스 만든 연세대생 유주완씨의 좌절’이라는 기사를 썼습니다.

어린 학생이 연습삼아 만들어 본 작은 프로그램 하나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사건이 한국에서 프로그래머라는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단적인 문제를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소비자의 인식입니다. 한국에서 지적재산권으로 보호받는 대부분의 무형 재산은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소프트웨어는 물론 책, 만화, 영화, 음악 등 수많은 문화콘텐츠가 그렇죠. 그래서 예전부터 “인터넷을 돈 주고 깔았는데 왜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없느냐”거나 “컴퓨터를 돈 주고 샀는데 왜 MS워드를 쓸 수 없느냐”는 식의 문의가 통신사나 PC업체로 쏟아지곤 했죠. 불법복제가 너무 일상적이라 돈을 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사라진 겁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절이었습니다. 지적재산 자체가 홀대받다보니 무엇이 표절인지를 엄격하게 자기 스스로 성찰하는 습관도 없게 마련이죠. 다음이 유주완 씨의 서울버스 앱 디자인을 사실상 모방했다는 게 바로 그런 내용입니다. 조금만 살펴보면 수직선 구조에 버스의 실시간 위치를 나타내는 디자인은 독창적 작업의 결과라는 걸 알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유주완 씨의 서울버스 앱이 성공한 이후 수많은 유사 버스 앱이 등장했고, 모조리 유 씨의 버스 위치 안내 디자인을 따라했습니다. 고등학생 프로그래머는 앱을 만들면서 자신의 디자인을 특허로 보호하지도 않았고, 이에 대해 유사 앱이 등장했을 때 이를 막지도 않았습니다. 유 씨는 “제가 직접 해당 디자인을 만든 건 맞지만 이후 다들 그냥 저처럼 하는데, 그게 문제라는 것도 사실 잘 몰랐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사실상의 디자인 표준을 유 씨가 만든 겁니다. 애플이었다면 처음부터 이런 디자인에 특허를 내거나 아니면 고유한 외모를 침해했다고 소송을 걸었을지도 모를 일인데 말이죠. 그래도 적어도 다음 정도 되는 기업이라면 이런 걸 만들 때 유 씨에게 대가를 지급한다거나, 적어도 상의라도 해본다거나, 아니면 최소한 서울버스 앱의 디자인이 사실상 고유한 디자인이라고 courtesy라도 밝혀줬으면 어땠을까요. 법률적으로 보호받는 권리는 아니더라도 그 덕분에 이후 수많은 동일한 디자인이 등장해 소비자를 편리하게 해줬으니까요.

기사에 다루지 못한 주제도 하나 있습니다. “과연 서울버스는 공공재인가?”라는 질문입니다. 다음 윤석찬 님께서 ‘서울버스의 딜레마’라는 글로 비슷한 주제를 다뤄주셨는데, 전 그냥 제 생각만 적겠습니다. 복잡한 논란을 약간 거칠게 표현하자면, 서울시가 보유한 버스 정보는 공공재가 맞습니다. 그런데 이를 활용한 서비스도 공공재인가요? 바꿔 말하면 이런 겁니다. 서울광장은 공공재입니다. 그런데 서울광장에서 사진을 돈 받고 찍어주는 행위도 공공재인가요? 이것도 생각해 보시죠. 맑고 깨끗한 한강 상류의 물은 공공재입니다. 이 물을 퍼다가 생수로 포장해 파는 행위도 공공재인가요?

서울광장에서 사진을 찍어주는 행위는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모두가 디카와 휴대전화를 갖고 있는 시대에 광장의 사진사는 극소수에 불과해 시민이 광장을 이용하는데 별 불편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 한강 상류의 물은 아무나 퍼올려 판매하지 않습니다. 그랬다가는 상수원의 물이 말라 하류 사람들의 생활이 지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가 취수 행위를 관리감독하게 되죠. 서울버스는 어떤 경우일까요? 시작 당시에는 사진사였습니다. 하지만 인기를 끌자 생수업체가 됐죠. 그런데 지자체의 공공정보는 물이 아닙니다. 데이터란 우리 모두 알다시피 물리적 자원과 달리 끝없이 복제 가능합니다. 서울시가 이를 api 형태로 공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원한다면 누구나 가져다 이 정보를 사용하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세금으로 만든 정보를 시민의 편리를 위해 쓸 수 있도록 공개한 뒤에는 그걸로 돈벌이를 하든 무엇을 하든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현재 서울시 api의 약관에는 ‘상업적 이용을 금지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이는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 하나는 2차 이용까지 규정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런 정보를 마치 공무원의 소유물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는 해석입니다. 또 하나는 현실적인 제약입니다. 실시간 정보 제공 부담으로 비용이 발생하는데, 이를 상업적 활용까지 허용하면 세금이 엉뚱하게 낭비될 수 있으니까요.

약간은 복잡한 뒷얘기라 지면에는 미처 쓰지 못했던 얘기를 여기에 마저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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