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게 빛나는 기업, HTC. 피터 초우 CEO 뒷북 인터뷰.

지난해 5월, HTC가 한국에 첫 스마트폰 ‘디자이어’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그 때 피터 초우 CEO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주어진 시간은 30분, 하지만 그는 달변이었고, 많은 얘기를 들려줬습니다. HTC라는 회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던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신문기사는 지면 한계 때문에 그 때 나눴던 이야기를 다 적기는 힘들었죠. 그래서 나중에 블로그에서 그 이야기를 소개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당시 인터뷰를 적어놓았던 수첩을 잃어버렸습니다. 집안 정리를 워낙 안 하는 탓이었죠. 얼마 전 책 스캔을 시작하면서 아내가 책꽂이의 책들을 재분류하자 그제야 수첩이 발견됐습니다. 책 사이에 잘 꽂아놓았더군요. 1년도 더 전에 진행했던 인터뷰입니다. 하지만 HTC는 그새 수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전보다 더 훌륭한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HTC는 스스로의 능력에 자신을 갖는 회사지만, “말보다는 행동”이라며 겸손한 태도를 강조합니다. 장점을 설명해 달라고 하면 “장점은 금세 따라잡힌다. 중요한 건 진화능력”이라며 변화를 강조합니다. 이 회사를 움직이는 철학은 ‘레버리지’라고 합니다. 남에게 잘해주면 더 큰 보상을 받는다는 걸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죠. HTC는 애플처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만드는 회사도 아니고, 삼성전자처럼 부품을 직접 만들며 수직계열화를 이루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가격경쟁력이 뛰어나고, 최고급 스마트폰들과 나란히 경쟁하는 제품을 계속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놀랍고, 이 인터뷰 기록을 다시 찾아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다음은 피터 초우와의 대화입니다.

– 슬로건이 독특합니다. 뜻이 뭔가요?
“‘Quietly Brilliant’라는 슬로건은 ‘위대한 일을 겸손한 자세로 해내자’는 우리의 다짐입니다. 인생의 중요한 일은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정말로 중요한 일은 겪어내야만 하는 것이죠. 그래서 말로 설명하지 말고 우리의 제품도 위대한 경험처럼 제대로 만들자는 뜻입니다.”

– 그래서 제대로 만든 건가요?
“이런 위대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많은 일을 했습니다. 주소록을 통합했고, 위젯을 만들었지요.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미세조정(fine tuning)에 엄청나게 신경씁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디테일을 잡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지요. 우리에게 비젼을 물어보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우리는 비젼을 내세우는 회사가 아닌, 그냥 기술 회사입니다. 비젼이 없다는 게 아니라 그걸 내세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5년 전 우리는 임계점(threshold)에 도달했어요. 우리 브랜드란 게 없었고, 우리의 혁신적 노력을 외부에 알릴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채널도 없었습니다. 쉽게 말해 우리에겐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 때 스마트폰이 기회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모든 노력을 기울여 그 기회를 잡았고, 여기까지 온 것이죠.”

– 운 좋게 앤디 루빈과 아는 사이여서 성공한 게 아니고요?
“사실 우리의 핵심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게 설명해야 합니다. 기술로는 최고에 이르겠다는 게 우리의 목표죠. 특히 통신기기용 기술에서 말입니다. 그게 바로 구글이 우리를 택한 이유입니다. 그전까지 업계에서 스마트폰을 만들려는 회사도 별로 없었고, 우리처럼 할 수 있는 회사도 사실상 없었습니다.(주: 컴팩 시절 컴팩이 만들던 iPAQ이라는 PDA를 OEM으로 만들던 회사가 바로 HTC였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도 유일한 선택이었어요. 사실 앤디 루빈이 제 친구이긴 합니다. 그것도 이유가 될 수는 있겠죠. 이렇게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군요. 첫째, 우리의 이노베이션은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는 최고 기업 수준에 이르러 있었습니다. 둘째, 앤디가 우리가 그런 회사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다행이었죠. 셋째, 우리는 상황이 어려운 회사였습니다. 제로(0)에서 갑자기 무언가를 완성시켜낼 의지와 문화가 회사에 존재했던 거죠.”

– HTC만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장점이란 건 시간이 지나면 경쟁자에게 따라잡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장점보다는 ‘진화능력’을 더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빨리 변하는 회사입니다. 부족한 게 있으면 금세 고칩니다. 구글이 우리와 일하면서 좋아한 건 우리의 이런 적응 능력이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스마트폰만 하니까 다른 사업에 시간을 나눌 필요도 없었죠. 구글이 원하는 게 바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었으니까요. 우리가 어느 순간 ‘넥서스원’을 만든 기업처럼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우리는 안드로이드와 함께 보낸 시간이 매우 깁니다. 초기부터 안드로이드 작업에 참여했어요. 2006년 초부터입니다. 당시 우리는 구글을 제외한 다른 기업 가운데 ‘안드로이드팀’ 인력을 가장 많이 갖고 있던 회사였습니다.”

– HTC는 대만 기업이지만 실리콘밸리 사람들과 친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저는 참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됐어요. 구글은 물론이고, 마이크로소프트와 퀄컴에 많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제가 DEC 출신인 덕분이죠. DEC는 큰 회사에요. 그게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 같은 주요 회사의 사람들을 아주 쉽게 만날 수 있는 배경이 됐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파트너십이 중요하다는 걸 배우게 됐습니다.”

– 제조업체의 파트너십은 종속적 하청 관계 아닐까요?
“우리의 경영 철학은 ‘레버리지'(Leverage) 경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파트너 관계를 잘 가져가고, 파트너에게 언제나 그들이 기대하는 것보다 더 많은 걸 주자는 겁니다. 우리가 더 많이 제공하면, 파트너는 더 큰 도움을 받죠. 그러면 당연히 그들도 나중에 우리에게 더 큰 걸 줍니다. 이걸 아까워하면 레버리지는 사라지게 됩니다.

– 애플은 원하는 걸 관철시키며 큰 성공을 거뒀는데요?
“애플과 우리를 비교하시면 안 됩니다. 파트너십이 우리 전략의 핵심이에요. 좋은 파트너 덕에 우리가 있습니다.”

– 말 나온 김에 애플이 HTC에 특허 소송을 걸었는데 어찌 보시나요?
“애플의 특허 소송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이 시장에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스마트폰을 만들어 왔어요. 우리가 이노베이션을 해내고, 산업에 기여한 측면이 상당합니다.”

– 한국 기업은 어떻게 보시나요? 삼성전자나 LG전자가 경쟁사인데.
“한국 기업에 대해 얘기하자면 무엇보다 대단하다고 얘기해야겠네요. 한국 기업들은 한 분야에 집중을 합니다. 스스로 무엇을 갖고 있는지 냉철하게 파악하고는 자신이 가진 장점에 강하게 집중하죠. 놀라운 집중력입니다.”

– HTC 제품은 싸지도 않고, 비싸지도 않습니다. 애플은 최고급 브랜드지만, HTC는 브랜드가 약한데도 싼 제품도 아니에요.
“HTC의 스마트폰은 샤넬이 아닙니다. 우리는 경쟁력 있는 제품을 원합니다. 페라리를 만들려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소비자에게 가치를 줍니다. 이 값에 이런 스마트폰이라면 살 만하다, 이런 제품을 만듭니다. 그래서 만드는 게 튼튼한(robust) 기기에요. 스마트폰은 손 안의 컴퓨터입니다. 험하게 굴리며 늘 휴대하는 제품인데, 이걸 고장나지 않게, 안정적으로 쓸 수 있게 만드는 기술이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휴대전화는 전파를 다루기 때문에 매우 민감한 기계입니다. PC는 아무나 만들 수 있을지 몰라도, 주머니에서 굴리는 기계를 좋은 품질로 만드는 건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노하우가 아니죠. 이런 측면에서 소비자가 가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우리가 가는 길은 늘 힘든 길입니다. 늘 도전이고, 늘 실패 가능성이 높죠.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나요? 도전이 우리 직원들을 움직이고, 저를 움직입니다. 동기부여란 도전에서 나오지, 현상을 유지하는 데서 나오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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