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로부터 100만 원 받아내기, 그리고 그 이후.

4월 말 애플의 아이폰에 10개월치 위치정보가 수집돼 논란이 생겼던 바 있습니다. 애플에서는 일주일 뒤에야 “실수였다”고 해명했죠. 그리고 일이 끝나면 해피엔딩에 가까웠겠지만, 그렇게 쉽게 끝날 일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논란이 일어난 직후 경남 창원의 한 변호사가 애플코리아를 상대로 ‘정신적 위자료’를 청구합니다. 사생활이 담긴 위치정보가 동의 없이 아이폰에 저장되는 줄 몰라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 변호사는 13일 자신이 애플코리아 유한회사로부터 100만 원의 위자료를 받았음을 입증하는 금융거래내역과 법원의 애플코리아 계좌에 대한 압류명령서를 언론에 공개합니다. 한 언론사는 단독보도라면서 이를 “아이폰의 위치추적 피해소송 첫 패소 사례”라고 보도합니다.

뭔가 그럴싸해보입니다. 법원이 정의로운 변호사의 손을 들어준 것 같기도 하고, 애플의 불법 행위가 한국 법원에 의해 증명된 것 같은 느낌도 줍니다. 이 변호사는 피해를 입은 약 300만 명의 국내 아이폰 사용자를 대신해 집단소송도 진행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판례가 있으니 누구라도 100만 원 위자료를 받아내는 게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애플이 한국에서만 3조 원의 손해를 볼 일입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렇게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당장 이번 사건의 당사자인 김형석 변호사의 방법을 본따 애플에 위자료를 청구하는 사례는 늘어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번 법원의 판단이 ‘판결’이 아니라 ‘지급명령’이었다는 걸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애플코리아가 김 변호사에게 민사소송 패소에 따라 위자료를 지급한 게 아니라 법원이 민사소송법에 따라 위자료의 ‘채권자’인 김 변호사가 애플코리아에게 ‘채무’인 위자료를 받아낼 수 있도록 이를 지급하라고 명령한 것이죠.

지급명령은 일종의 간이 법적절차입니다. 소송은 원고와 피고가 존재하고, 판사 앞에서 자신의 옳고 그름을 증명하는 법적 행위입니다.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며, 항소와 상고 등 오랜 재판 기간이 필요합니다. 반면 지급명령은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빠르게 채무를 받아내기 위해 신청하는 법적 절차입니다. 채무자는 법원의 지급명령을 받은 뒤 2주 이내에 법원의 명령에 대해 이의 신청을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대로 지급명령이 확정되죠. 이 제도는 채무자가 적극적으로 빚을 갚도록 법원이 독려하고, 법원의 민사소송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제도입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게 아니라 절차적 효율을 위한 제도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법원이 애플코리아의 위치정보 수집이 불법이라고 ‘판결’한 게 아니라 김 변호사가 “난 애플에게 받을 돈이 있다”고 주장하니 “그러면 빚을 갚으라”고 (채무자라고 여겨지는) 애플코리아에게 명령을 내린 겁니다. 정상적이라면 애플코리아가 여기에 대해 이의 신청을 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애플코리아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김 변호사는 서울중앙지법에 애플코리아의 은행 계좌에 대해 위자료 압류를 해달라 부탁합니다. 법원은 역시 기계적으로 애플의 이의제기가 없었으니만큼 압류 및 추심 명령을 내립니다. 이렇게 압류된 100만 원은 수수료 2000원을 제한 채 김 변호사의 계좌에 들어옵니다. 이걸로 사건은 끝났습니다. 법원은 위치정보법에 대한 판단을 한 게 아니라 두 당사자의 채무 분쟁에 대해 기계적인 지급 절차를 진행한 겁니다.

이런 지급명령은 다른 지급명령에 대해 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김 변호사는 애플코리아로부터 100만 원의 위자료를 받아낼 수 있었지만 이후 동일한 신청이 이어질 경우 애플코리아는 이의를 신청할 테고 그 다음에는 소송으로 가야한다는 얘기입니다. 긴 법정 소송이 진행되면 집단소송에 나선 소비자들이 승리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옥션 사건 등에서 보듯 한국 법원은 기업의 영업활동에 대해 상당히 관대한 편이니까요. 다만 애플이 첫 지급명령에 대해 철저한 무대응으로 일관했던 게 약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은 나옵니다. 취재 과정에서 한 현직 판사에게 문의한 결과 “애플코리아가 논란이 생기는 걸 꺼려 대응을 아예 피했던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지급명령 신청이 줄이으면 애플도 이의 신청을 할테고, 그러면 결국 집단소송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집단소송에 대해서는 애플코리아도 정식 법정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다만 애플코리아가 이번 지급명령에 대해 이의 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건 소극적으로 위자료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보일 수 있어 애플코리아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하더군요.

자 그러면 이 사건의 승자는 누구일까요? 애플은 이어지는 법정 소송에서 약간의 불리함을 감수하게 됐습니다. 큰 피해는 아니죠. 이익을 본 건 없지만, 큰 손해를 볼 것 같지도 않습니다. 소비자는 어떨까요? 집단소송의 승소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사건 당사자인 김 변호사는 어떨까요? 1만 명만 소송에 참여한다해도, 그리고 수임료로 1만원씩만 낸다고 해도 당장 1억 원의 수입이 생깁니다. 국내의 아이폰과 아이패드 사용자는 약 300만 명에 이르는데 이들이 ‘밑져야 본전’이라며 100만 명만 참여한다면 수임료가 100억 원에 이릅니다. 그래서 요즘 변호사들은 집단소송을 사랑합니다. 푼돈이 모이는 결과가 엄청나기 때문이죠.

많은 분들이 그래서 이럴 때 제게 묻곤 합니다. “그러면 나도 집단소송을 해볼까?” 저희 어머니와 아내도 아이폰을 씁니다. 제가 가족에게 충고한다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그런 데 신경 쓸 시간에 그냥 손자(아들)와 좀 더 놀아주세요.” 똑똑한 변호사의 법률 장난에 우리까지 괜히 함께 춤을 춰 줄 이유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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