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전쟁, 그리고 상호확증파괴 MAD

애플과 삼성전자의 특허 공방이 뜨겁습니다. 애플이 삼성의 디자인을 문제삼더니, 삼성은 애플의 기술 특허를 걸고 넘어졌습니다. 애플은 노텔의 특허를 사들이면서 기술 특허에 맞섰고, 삼성은 애플의 디자인 특허가 매우 일상적인 것이라며 “애플의 디자인 특허가 독창적이라면 세상의 세단 승용차는 한 업체만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맞받습니다. 뒤에는 더 복잡한 얘기가 많습니다. 애플은 사실상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견제하려는 생각이고, 여기에 안드로이드를 견제하고 싶은 마이크로소프트가 끼어들어 애플과 손을 잡습니다. 그러자 애플도, 안드로이드도 싫은 노키아가 무대에 올랐고, 그 과정에서 구글의 ‘가장 약한 에이전트’ 격인 대만의 HTC가 집중 포화를 받습니다.
급기야 구글이 참지 못하고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냅니다. “안드로이드를 공격하는 모든 이들은 지금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는 겁니다. 구글은 또 “우리는 (특허를 출원하고, 사들이고 있지만 이를 이용해) 다른 기업에 대해 특허침해 소송을 건 적이 한 차례도 없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러자 비난이 들끓습니다. IBM 특허를 잔뜩 사들이면서 특허 소송을 아직 한 번도 안 걸었다고 얘기하는 게 무슨 소용이냐는 비난, 과거 경매에 다 참가하지 않았느냐는 지적, 원래 구글은 역사가 짧아 보유 특허가 적기 때문에 당하는건데 경쟁사들은 수십년 동안 노력해 온 지적재산을 인정받는 것 뿐이라는 반론…

2005년, 재미있는 글이 LA타임즈에 실린 바 있습니다. 로렌스 레식 스탠포드 법대 교수의 “천 개의 구글이 꽃피게 하라”는 칼럼이었습니다. 구글이 ‘구글북스’라 불리는 도서 스캔 프로젝트를 시작하던 때의 일이었죠. 출판사와 저자들은 반대했지만 레식 교수는 감탄했습니다. 지적재산권을 침해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편하고 민주적인 방법을 열어주겠다는 계획인데 거부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구글이 베스트셀러나 권리가 명확한 책을 스캔한다면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구글은 도서관의 책들을 마구잡이로 스캔했습니다. 물론 이를 인터넷에 모두 올리지는 않았습니다. 책의 일부만을 검색하도록 해 합법적 구입을 도왔죠. 하지만 수십만 권의 책의 저자를 일일이 찾아 책을 스캔한다는 허락을 얻은 것도 아니고, 책의 일부를 보여주는데 동의를 얻은 건 더더욱 아닙니다. 공익을 위한다는 게 구글의 주장이지만, 지적재산권은 애초에 공익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입니다.

이런 걸 ‘소유의 역습 그리드락'(Gridlock Economy)의 저자 마이클 헬러 교수는 ‘미활용'(underuse)이라고 표현합니다. 수십만 권의 책들 가운데 상당수의 책들은 아무런 경제적 가치도 갖지 못합니다. 팔리지도 않고 읽히지도 않으니까요. 구글은 여기에 검색될 수 있는 기회와 판매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활용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죠. 하지만 활용을 위해서는 개별 저작권자를 모두 만나야 합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구글이 법률적 위험을 무릅쓴 이유입니다.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지적재산권을 엄격하게 제한하면 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입니다. 지적재산권의 시효는 점점 늘어납니다. 레식 교수는 그래서 새로운 방안을 소개합니다. 5년마다 지적재산권 시효 연장을 요청하지 않는 저작권자에 대해서는 지적재산권을 말소시키자는 겁니다. 인터넷과 전화가 뒤덮은 세상에서 이는 그리 어려운 과정 없이도 연장 신청이 가능하다는 주장입니다.

1년 뒤, 레식 교수의 당황스러움과 구글을 위한 변명은 엉뚱한 곳에서 또 촉발됩니다. 과학소설 작가 마이클 크라이튼의 뉴욕타임즈 칼럼은 호모시스테인 검사라는 심장병 진단 방법을 얘기합니다. 심장병의 원인 가운데 하나는 콜레스테롤입니다. 하지만 콜레스테롤이 심장병의 모든 원인은 아닙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이라도 심장병이 발병하는 환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 심장병을 검사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아미노산의 일종이 호모시스테인 검사입니다. 하지만 이 검사는 특허로 보호받습니다. 호모시스테인 수치로 심장병의 위험을 찾아내는 의사가 있다면, 그리고 이렇게 심장병의 위험을 찾아냈으면서도 로열티를 내지 않았다면, 그건 불법이 됩니다. 지적재산권 침해죠. 생각에 대해 로열티를 매기는 특허라… 그 1년 뒤 크라이튼은 ‘생명에 매기는 특허'(Patenting Life)라는 칼럼을 또 씁니다. 이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유전자에 특허를 신청하고, 유전자를 연구해 치료제나 검사법을 만드는 사람들을 특허 침해로 고소하면서 혁신을 가로막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였죠. 이건 아이폰을 쓸까, 안드로이드폰을 쓸까 고르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죽고 사는 일이었으니까요.

비슷한 일이 수없이 많은 분야에 존재합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분야가 하나 있습니다. 반도체 산업입니다. 인텔, AMD, ARM, 텍사스인스트루먼트, 인피니언… 반도체 산업 분야란 매년 수조 원의 돈을 투자라며 쏟아붓고, 이에 기반해 수조 원의 돈을 거둬들이는 기업들의 전쟁터입니다. 기술 발전도 그만큼 빠릅니다. 고든 무어는 ‘무어의 법칙’이라는 법칙까지 만들어 이 업계의 엄청난 속도경쟁을 묘사했을 정도입니다. 특허도 엄청납니다. 하지만 반도체 업계의 기업들은 다른 경쟁 업체에 대해 특허소송을 상대적으로 적게 겁니다. ‘방어적인 특허 포트폴리오’ 덕분입니다. 충분히 큰 열강의 전쟁터에서 이들은 서로를 두려워해 방어적으로 특허를 사들였고, 그 덕분에 서로 불필요한 소송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냉전시대 서로의 무기가 두려워 전면전을 꺼릴 수밖에 없었던 미국과 소련 사이의 전쟁억지력을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 MAD)라고 부릅니다. 비슷한 두려움이 반도체 업계의 불필요한 미활용을 막아줬던 겁니다.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지만 결국 지금의 스마트폰 업체들도 그 단계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특허로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하다 수많은 특허를 나눠가지고 나면 열강 상호간의 싸움을 중단하는 MAD의 단계 말입니다. 구글이 IBM의 특허를 사들일 수밖에 없던 건 구글이 안드로이드 제조업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것 밖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약간 아쉽습니다. 좀 더 공격적으로, 좀 더 빠른 속도로 특허를 사들여야 할텐데 말이죠. 애플은 로드시스라는 특허괴물이 자신들의 개발자를 공격하려 들 때 바로 로드시스에 대한 법적 대응을 시작했습니다. 구글은 애플이 안드로이드 제조사를 공격할 때 그저 징징댔을 뿐입니다. 무기 없이 징징대는 쪽에게 두려움을 느낄 상대방은 어디에도 없게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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