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써도 덜 쓴다 (1) 새로운 경제

공유경제 시리즈를 최근 마쳤습니다. 지난달 실리콘밸리 출장 결과를 담은 연재였습니다. 에어비앤비와 릴레이라이즈 같은 회사의 성공 사례는 간혹 소개되곤 했으니 아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도대체 이런 기업들이 왜 등장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이며 앞으로 이런 기업들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된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엔 공유경제란 웹2.0이나 소셜웹, 그리고 지금도 매우 뜨거운 주제인 모바일에 대해 얘기하는 바로 그 만큼 중요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새로운 트렌드죠.
그래서 신문 연재를 마치고 기사로 다 소개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적어봅니다. 연재기사의 링크는 다음과 같습니다.

전문: 따로 소유, 함께 소비… 따뜻한 ‘공유경제’ 온다
[공유경제 시대가 온다] 공동소비, 삶을 바꾸다
[공유경제 시대가 온다] 생산설비도 빌려줍니다
[공유경제 시대가 온다] 블랙컨슈머가 사라진다

“생각해 봐요. 클라우드 컴퓨팅이 보급되면, 컴퓨터 산업은 지금보다 더 성장할까요?”
파괴적 혁신으로 기존 기업을 압도하는 새 기업들을 다루는 새 기사를 준비할 때였다. 같이 기사 얼개를 짜던 김현수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지금까지 컴퓨터 산업의 발전 패러다임이 과연 앞으로도 먹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컴퓨터 산업의 발전이 과잉 생산과 과잉 소비 덕분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단순히 인터넷을 켜고 다음 카페에 접속해 쇼핑 정보를 얻으려는 주부도 5년에 한 번은 ‘최신 컴퓨터’로 업그레이드를 했고, 학교 숙제를 하기 위해 워드프로세서가 필요할 뿐인 초등학생조차 최신 듀얼코어 프로세서가 달린 컴퓨터와 컬러 프린터를 장만하곤 했다. 세계 인구가 70억 명을 향해 갈수록 컴퓨터 수요도 함께 증가했다. 아니, 정보화가 진행되는 나라가 늘어났으니 컴퓨터의 수요는 이보다 훨씬 빨리 늘어났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많은 회사의 눈부신 성장을 지켜봤다. 인텔이 천문학적으로 성장했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우리 모두가 아는 신화를 썼다. HP가 실리콘밸리의 상징이 됐고, 애플컴퓨터가 드라마틱한 부침을 겪고 난 뒤 오늘날의 애플이 됐다. 소니도 컴퓨터를 만들었고, 삼성전자도 컴퓨터를 만든다. 심지어 대만의 에이서 같은 회사는 한 때 HP를 위협하던 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회사가 됐다. 이 상황에서 이 질문이 나왔다.”과연 앞으로도 이런 식일까?”
신영증권의 이승우 애널리스트는 클라우드 컴퓨팅이 컴퓨터 산업을 축소시킬 거라는 얘기를 했다. 오늘날 이 분야는 컴퓨터 산업의 미래로 꼽힌다. 구글과 아마존은 물론이고,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도 클라우드 컴퓨팅 얘기를 한다. IBM과 HP도 물론이다. 그런데 왜 산업이 줄어든단 말인가. 이 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IT 산업의 급격한 변화는 자원의 효율화다. 예를 들어 오늘날 지구상에는 약 15억 대의 PC가 있는데 사실 이 가운데 3분의 2는 꺼져 있는 상태다. 하지만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을 이용하면 이런 비효율을 줄일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지금의 비효율을 수정하면 수요도 3분의 2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기존의 반도체 업체도, PC 조립업체도, 디스플레이 업체도 모두 3분의 2가량의 시장을 잃게 된다. 지금까지 자본주의 경제는 거품과 과잉공급, 과잉소비를 통해 경제성장을 반복해 왔다. 하지만 IT의 발전은 앞으로 하드웨어 업체의 설 자리를 점점 사라지게 할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실리콘밸리는 사무실 임대료가 오르고, 직원을 구하지 못한 기업이 인력난을 겪고 있으며, 창업을 꿈꾸는 수많은 예비 기업가에게 돈을 대려는 벤처캐피탈이 줄을 서 있다고 했다. 그런데 미국의 다른 지역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나. 실업률은 회복되는 듯 싶었다가 다시 치솟고, 경제성장률을 설명하는 지표는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고 있었다. 이건 뭔가 불공평해 보였다.
넷플릭스가 성공하면 DVD업체들이 문을 닫아야 하고, 야후뉴스가 성공하면 신문사들이 문을 닫아야 하며, 냅스터가 성공하면 음반산업이 망가져야 했다. 물론 현명한 수익배분 시스템이 개발되고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인터넷은 소수의 손에 부를 집중시켰다. 효율화가 이뤄지면 비용 절감의 혜택은 만인에게 조금씩 돌아가지만 이로 인해 매출이 급감하는 기업들이 순식간에 쏟아졌다.
최근에는 더 큰 문제가 생겨나고 있었다. 지금까지 인터넷이 가져온 위협은 대부분 디지털 콘텐츠 산업에 한정됐다. 영화, 신문, 책, 음악… 하지만 이젠 달랐다. 집카(Zipcar)와 릴레이라이즈(RelayRides)는 자동차 산업을 혁신하고 있었고, 에어비앤비는 호텔 산업을 혁신하고 있었다. 말이 좋아 혁신이지, 이제 사람들은 차를 살 필요가 없게 됐고 호텔에 묵을 필요가 없게 됐다. 이런 회사의 근무자는 기껏해야 수백 명 수준이지만, 자동차 회사의 종업원은 수십만 명에 이르고, 호텔 체인의 종업원도 수만 명이다. 이제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일해야 하는 걸까.
미국의 유명 IT 매체 ‘와이어드’의 편집장 크리스 앤더슨은 세계 경제가 변화하면서 앞으로 ‘제3의 산업혁명’이 올 거라고 내다봤다. 앤더슨의 생각에는 제1의 산업혁명은 증기기관의 발명이었다. 생산력이 높아지는 기계 혁명인 셈이다. 제2의 산업혁명은 정보화 혁명이다. 디지털 정보가 급속도로 유통되면서 금융과 콘텐츠, 통신 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했다. 제3의 산업혁명은 물리적 디지털 혁명이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형태를 갖춘 물질이 마치 웹2.0의 시대에 디지털 재화처럼 대중의 손으로 만들어져 대중 사이에서 분배되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은 기업가가 될 것이고, 기업가의, 기업가에 의한, 기업가를 위한 세상이 도래하리라는 예상이었다. 이것이 그가 말한 제3의 산업혁명이다.
혁신을 이끌고자 하는 창업 정신에 충만한 샌프란시스코의 예비 기업인들에게는 꿈처럼 행복하고 창의적인 미래다. 하지만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회사에서 평생 나사만 조이며 살았던 노동자에게는 이게 과연 어떤 미래로 느껴질까? 한국에서 벼농사를 짓는 농부라거나, 중국에서 높은 빌딩을 올리고 있는 건설노동자에게는? 이런 경제가 과연 이들과 같은 수많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고용과 밝은 미래를 보장해 줄까? 앤더슨은 내게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솔직히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아마도 그들을 위한 재교육이 필요할 것”이란 얘기를 더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모두가 기술을 배우지 못한다. 그럴 마음도 없다. 인류는 터미널에 커맨드를 입력하는 법을 모른 채로도 수만년의 문명을 쌓아왔다.
누구도 답을 얘기해주지 못했고, 나는 갑갑했다. 하지만 해답은 늘 그렇듯 현장에서 찾아왔다. 9월 말 떠났던 실리콘밸리 여행이 그 시작이었다.

2011년 10월 5일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였다. 하지만 5년만 지나면 이 날은 아마도 미국 자동차 산업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날로 기록될지 모른다. 이날 미국 최대의 자동차업체 GM은 보스턴에서 창업해 샌프란시스코로 본사를 옮겨간 작은 벤처기업 ‘릴레이라이즈’와 손을 잡았다. 릴레이라이즈는 ‘자동차 공유'(Car Sharing)라는 다소 생소한 서비스를 하고 있는 회사다. 일반적으로 한 번 만들어진 자동차는 하루 24시간 가운데 평균 23시간 가량을 제자리에 서 있는다. 달리기 위해 태어났지만, 사실 전혀 거의 달리지 않는다고 봐도 틀리지 않은 얘기다. 이 차를 그냥 제자리에 세워놓는 대신 다른 사람들과 나눠 탄다면 어떨까. 릴레이라이즈는 이런 생각에서 출발한 서비스였다. 차량 소유자는 임대료를 벌 수 있고, 차를 빌리는 사람은 시간당 7∼10달러 정도의 이용료만 내면 차를 맘껏 쓸 수 있었다.
실리콘밸리에 가보니 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비슷한 종류의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을 위한 잡지와 네트워크 모임, 이들이 한 데 모일 수 있는 이벤트도 다양했다. 그리고 릴레이라이즈와 같은 모델은 무수히 많았다. 에어비앤비는 집을 빌려줬고, 야드셰어는 정원을 공유했다. 테크숍은 값비싼 생산설비를 회원제로 값싸게 빌려쓸 수 있게 했고, 태스크래빗은 노동력을 이웃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주차장이 필요하다고? 파크앳마이하우스를 찾아보면 된다. 아이옷이 작아졌다고? 스레드업에서 이웃과 교환할 수 있었다. 이런 세상에서 소유는 의미가 없었다. 누가, 언제, 얼마나 쉬운 방식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에 접근해 이를 쓸 수 있느냐는 사실만 중요했다.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GDP는 굉장히 적었다. 사실상 이런 일을 하는 기업들은 GDP를 한없이 0에 가깝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들어가는 인력을 줄이고, 생산되는 제품을 줄이며, 거래 비용을 낮췄다. 심지어 수많은 비즈니스가 물건이나 서비스를 공짜로 주고받도록 북돋았다. 기존의 GDP 개념에서 보자면 성장률은 더 줄어들 것이 분명한 사업 형태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속에서 더 많은 풍요를 누렸다. 새것은 아니라도, 새것같은 제품을 훨씬 많이 즐긴다. 풍요롭지만 절대로 낭비하지 않는다. 환경운동가들이 외치고 강변했던 ‘절제를 위한 사회적 노력’ 같은 건 없었다. 이런 생활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건 기술이었다. 그리고 기술을 이렇게 활용하는 법을 찾아낸 사람들의 좋은 두뇌가 놀라웠다. 이들은 모두 더 쓰면서 동시에 덜 쓰는 삶을 살고 있었다.

하버드 법대의 로렌스 레식 교수는 크리에이티브커먼즈(Creative Commons, CC)라는 일종의 대안 저작권 제도를 만들면서 ‘공유경제(Sharing Economy)’라는 새로운 개념을 설명했다. 레식 교수의 얘기대로 세상의 수많은 재화는 많은 사람들과 나누면 나눌수록 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그가 얘기한 공유의 가치 대부분은 아무리 복사하고 공유하고 다시 오려붙여도 공유에 따른 열화가 없는 디지털 콘텐츠에 국한됐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트렌드는 디지털 콘텐츠가 아닌 현실에 실재하고 있는 물리적 재화를 대상으로 했다. 본질적으로는 다를 바 없었다. 어떤 경우든 나누면 더 커지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더 넓은 개념이 된 공유경제는 ‘협업소비'(또는 협동소비로 번역, Collaborative Consumptions)라고 불린다. 협업소비의 가치는 언뜻 보기에는 구식이다. 지금보다 덜 풍요로웠던 시절에 마을 사람들끼리 마차를 나눠 타거나, 지나가는 나그네를 재워주는 일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이런 옛 시대의 공유문화를 우습게 여기면서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를 통해 ‘마이카 시대’와 ‘호텔 시대’를 열었다. 우리는 그 덕분에 겉으로 화려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 결과 비싼 수업료를 내고서야 이런 발전방식은 결국 지구 환경에 부담을 줄 뿐이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몇몇 기업과 그 구성원은 이런 과잉생산-과잉소비의 사이클을 통해 부자가 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부가 많은 사람에게 제대로 분배되지 못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협업소비의 대표적인 모델로 꼽히는 릴레이라이즈나 에어비앤비 같은 새로운 공유경제 기업들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이용해 현재 쓰지 않는 자동차와 숙소를 필요한 사람에게 연결해준다. 이 과정에서 개인은 사업자가 돼 돈을 번다. 특히 최근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맞물려 이런 방식은 사람들 사이에서 급속히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와 함께 협업소비는 환경운동에도 새로운 시사점을 준다. 풍요를 포기하고 절제만 요구하던 과거의 환경운동은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줬다. 과거의 환경 전도사들을 따라 살려면 우리는 모두 중세 수도원의 성직자가 이끄는 것과 같은 고난의 길을 걸어야만 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협업소비의 전도사들은 고통의 회개 과정 대신 과거와 비슷한 수준의 풍요를 환경에 훨씬 덜 부담을 주는 새로운 방식으로 누릴 수 있도록 돕는다. 지속가능한 성장과 부의 재분배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협업소비는 모두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고 있다.
확대된 공유경제의 모델은 협업소비라는 말이 나타내는 다양한 소비방식 외에도 생산 측면에서도 혁신을 일으켰다. 예를 들어 멘로파크에서 처음 문을 연 테크숍은 일반인이 구하기 힘든 공업용 재봉틀은 물론이고 금속 가공용 사출성형기라거나 자동차 공장에나 있는 도장 가마 같은 전문 장비를 월 125달러만으로 일반인에게 빌려준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의 중심에 있는 건 변함없이 바로 당신이다. 그리고 우리다. 그게 공유경제의 핵심인데, 생각해보면 그건 인류 역사의 핵심이기도 했다. 우리는 지금 역사상 가장 불합리하게 모든 걸 낭비하고 내다버렸던 60년의 시대를 막 벗어나려는 단계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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