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들에 반한 이유


지난달 말 미국의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닷컴이 ‘킨들 파이어’라는 새 태블릿PC를 발표했습니다. 컬러 화면과 동영상, 인터넷도 되는데 값은 겨우 199달러(약 22만8000원)라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날 함께 발표했던 ‘킨들’이라는 단순한 전자책 단말기에 더 눈길이 갔습니다. 흑백에 책만 읽는 기계였지만 79달러로 값을 낮춰 팔겠다고 발표했는데, 세금을 포함해도 값은 10만 원 이하였거든요.

그래서 당장 하나 사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사실 책을 읽는 데 컬러 화면이나 동영상과 인터넷은 별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오히려 정신을 빼앗기지 않고 책에 집중하려면 이런 전자잉크(e-ink) 단말기가 더 낫습니다. 아이패드로 진득하니 책을 읽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예전에 인터파크에서 판매한 ‘비스킷’ 같은 기계가 킨들과 같은 전자잉크 방식이었습니다. 다만 이런 국산 전자잉크 단말기는 읽을 전자책이 없어 별 인기를 모으지 못했습니다. 킨들은 달랐습니다. 예약 판매 중인 스티브 잡스의 전기부터 최근의 경제위기를 지적한 마이클 루이스의 ‘부메랑’ 같은 베스트셀러 등이 모두 전자책으로 동시에 출간됩니다. 문제는 모두 영어책이란 점이었지만, 그래도 이 참에 원서나 빨리빨리 읽어보자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게다가 한글을 아예 볼 수 없는 건 아닙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에서 유명한 앱(응용프로그램)인 ‘인스타페이퍼’가 킨들용으로도 있어서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서 좋은 글을 찾았다면 이를 인스타페이퍼로 보내놓았다가 나중에 킨들로 읽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킨들은 PDF 파일도 읽어 들이기 때문에 제가 스캔해 놓은 종이책도 보려고 맘 먹으면 볼 수 있더군요. 전에 전자책 DIY, 불편한 진실이란 칼럼에서도 얘기했던 적이 있지만 최근 책을 스캔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기계 성능 자체가 뛰어난 편이 아니어서 PDF 책을 읽을 땐 다소 버벅거리는 건 감수해야 합니다.

킨들이 종이책보다 나은 점도 있습니다. 킨들은 최근 서점에서 파는 종이책이 아닌 아마존의 전자책 서점에서만 파는 ‘킨들 싱글’이란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200페이지가 넘어가는 단행본보다는 짧고, 신문이나 잡지 기사보다는 긴 새로운 형태의 전자책으로 100페이지 전후의 짧은 책입니다. 소설가 스티븐 킹의 단편소설이나 뉴욕타임스 음식칼럼니스트 마크 빗먼의 요리 에세이 등이 킨들 싱글로 출판된 대표적인 짧은 책이죠.

이런 게 요즘 출판계의 새로운 트렌드입니다. 저도 최근 리디북스란 전자책업체를 통해 비슷한 방식으로 짧은 책을 출판했습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잡스에 대한 책이었는데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내려면 보름은 넘게 걸렸을 겁니다. 하지만 전자책 회사를 거쳤더니 최종 원고를 건넨 뒤 24시간 이내에 책이 판매됐습니다. 신문과 잡지는 대개 이슈가 있을 때 빠르게 이를 전달하지만 아무래도 책보다는 길이의 제한도 받고, 시간도 많이 투자할 수 없어 깊이있는 지식을 전달하기엔 부족하죠. 반면 책은 한 번 나오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전자책은 책 제작에 들어가는 수많은 시간을 줄여줍니다.

킨들도 이렇게 전자책과 종이책 사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무엇보다 기계적 특성 덕분에 ‘아이패드’ 같은 태블릿PC와 달리 눈이 피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건 책을 읽다가 맘에 드는 구절을 보면 밑줄을 긋고 페이스북으로 보낼 수 있는 기능입니다. 이번에 산 킨들은 키보드가 없어서 노트를 남기기는 불편하지만, 그래도 밑줄긋고 기억하고 싶은 부분을 공유할 수 있다는 건 재미있는 경험이죠. 종이책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런 기계를 만들 수 있던 건 책에 대한 깊은 고민 덕분이었을 겁니다. 킨들을 사서 전원을 켜면 “김상훈 님, 환영합니다(Welcome, Kim)”라는 환영메시지가 보입니다. 아마존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제프 베조스가 쓴 편지죠. 편지는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이 훌륭한 기계를 들고 있다는 사실을 최대한 빨리 잊길 바랍니다. 그 대신 다른 수많은 독자가 그랬듯 작가와 함께 지적인 여행을 떠나세요.”

이렇게 기술을 자랑하기보다는 그 기술이 지향하는 목표에 집중해 성공했던 다른 기업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죠. “구글의 목표는 여러분이 최대한 빨리 구글을 떠나 인터넷을 여행하도록 돕는 겁니다.”

동아일보, 10월19일자 B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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