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써도 덜 쓴다 (3) 카테리나의 사업

카테리나 린디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하지만 학교가 싫었다. 미국도 정권이 바뀌면 교육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건 한국과 다를 바 없었다. 그녀는 ‘끌려다니는 인생’을 사는 게 싫었고, 그래서 학교를 그만뒀다. 하지만 대학에서 심리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영어와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등 4개국어를 할 줄 아는 그녀도 학교 울타리 밖에선 먹고 살기가 막막했다. 결국 새 인생을 찾겠다고 나와서 다시 손에 잡은 일이 대학교 교직원이었다. 재미있을리 없었다. 직업을 또 바꿔봤다. 이번엔 방과후 교사였다. 돌고 돌아 다시 초등학교 교사가 된 셈이었다.
모든 게 변한 건 지난해 아버지의 장례식 이후였다. 그녀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순간이었다. 40년 이상을 사실 철없이 살아왔던 셈이다. 어차피 모두 죽는 거라면, 제대로 살아봐야 하는 게 아닐까? 그녀는 생각했다. 마흔두살의 일이다.

제일 먼저 그녀가 했던 일은 입학원서를 내는 일이었다. 이곳은 샌프란시스코. 기업가의 도시였다. 그녀도 기업을 해보고 싶었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학교를 다녀볼까. 그렇게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기왕이면 좋은 학교여야겠지. 그래서 인근의 스탠포드대와 버클리대에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지원했다. 쉽게 받아들여질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보란듯이 두 곳 모두에서 떨어졌다. 심리학 학사 출신의 전직 초등학교 교사를 받아들여주기엔 스탠포드와 버클리는 경쟁률이 너무 높았다.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카테리나는 “그렇다면 나 스스로 MBA를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다. 경영학과에서 공부한다는 커리큘럼을 살펴봤다. 재무와 전략, 마케팅… 한 권씩 책을 읽어나가면 공부가 되지 않을까. 혼자서 하기는 힘드니 친구를 만들자. 그래서 독서 모임을 만들었다. 이곳은 기업가의 도시였다. 이런 지식이 필요한 사람은 카테리나 만이 아니었다. 독서모임은 꾸준히 지속됐다.

“어차피 창업을 하려고 MBA에 가려던 건데, MBA를 하면서 동시에 창업도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던 터라 회사를 차리는데 불편한 건 없었다. 이미 맘은 먹었던 것이고, 문제는 해결 가능해 보였다. 우선 투자자가 필요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투자를 부탁했다. 500달러를 투자하는 친척, 100달러를 투자하는 독서모임 친구, 50달러를 투자하는 이웃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웹사이트를 만들려면 기술도 필요했다. 인터넷에는 수많은 사이트 제작기술이 올라와 있었다. 워드프레스를 택하고, 블로그를 만들고, SNS에 계정을 만들었다. 이걸로 마케팅도 할 수 있을테니까 열심히 배우고 익혔다. 검색엔진최적화(Search Engine Optimizaation;SEO)라는 처음 들어보는 기술과도 친숙해져야 했다. 말은 어려웠지만 실제로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블로그가 구글에서 쉽게 검색될 수 있게 하는지에 대한 요령을 배우는 것 뿐이었다.

사업의 어려운 과정마다 조언을 해주고 중요한 사람들을 연결해 줄 네트워크는 훨씬 절실했다. 만약 스탠포드 MBA에 입학했다면 자연스레 얻게 됐을 재산이었다. 하지만 이미 스탠포드에서는 거절당했다. 그래서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창업동아리’에 들어간 셈이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을 알게 됐다. 월요일 오후 1시, 카테리나는 이들을 매주 집으로 불러 모았다. 10명 남짓한 멤버 가운데 늘 5, 6명 정도가 참여한다. 힘들면 안 오면 되고, 바쁜 일이 있으면 건너뛰면 된다. 하지만 모두에게 필요한 모임이었다. 서로는 서로에게 앤젤투자자가 돼 주기도 했다. 참여하는 멤버도 다양했다. 현재 다니는 직장에 만족하지 못하는 직장인, 카테리나와 닮은 사람이었다. 막 벤처창업을 시작한 사람, 카테리나가 곧 되고픈 모습이었다. 나이는 모두 비슷했다. 중심은 40대였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나이를 먹어서 뭔가 할 수 없는 사람은 젊은 시절에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뿐이었다. 이 모든 일을 하는데 겨우 1년 반이 걸렸다. 스탠포드와 버클리에서 입학을 거절당한 이후 그녀가 했던 일이다.

지금은 본격적으로 돈을 들여 건물을 임대하고 직원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서재에 앉아 나홀로 창업을 했던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들어간다. 실패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하지만 카테리나는 낙관적이다. “실패해도 그 실패의 경험이 내게 버클리와 스탠포드를 다니는 학비보다 더 많은 걸 가르쳐주고 성장시켜 줄테니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그녀의 믿음이었다.

그녀를 만난 건 릴레이라이즈 때문이었다. 릴레이라이즈는 자신의 차를 등록해 놓으면 주위 이웃에게 필요한 시간에 차를 빌려주는 서비스다. 2011년 10월 초에는 세계 최대 자동차업체인 미국의 제너럴모터스가 이 회사와 손을 잡고 자동차 공유 서비스 시장에 뛰어들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카테리나는 릴레이라이즈를 통해 매월 250달러 정도를 벌어들인다. 에어비앤비가 집을 공유한다면 릴레이라이즈는 일종의 ‘승용차의 에어비앤비’라고 할 수 있다.

릴레이라이즈가 문을 연 건 2010년이었다. 창업 장소도 샌프란시스코와는 미국 대륙을 두고 반대편에 있는 보스턴이었다. 카테리나는 당시 창업을 준비하다가 기사를 통해 릴레이라이즈를 알게 됐다. 뭔가 “이거다” 하는 영감이 뒷통수를 쳤다. 이미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여러 형태의 자동차 공유 서비스가 등장했던 때였다. ‘집카'(Zipcar) 같은 사업이 대표적이었지만 릴레이라이즈는 이런 업체들과는 달랐다. 집카는 렌터카 회사처럼 많은 차를 직접 사들여 사람들에게 이용권을 파는 모델인 반면, 릴레이라이즈는 차를 소유하는 대신 차를 가진 개인들을 작은 사업자로 바꿔놓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카테리나는 릴레이라이즈 본사로 e메일을 보냈다. “이봐요, 난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카테리나라고 해요. 혹 관심 있으면 샌프란시스코에서도 그 사업을 해보지 않을래요? 내 차를 1호로 등록할게요.” 답장을 받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릴레이라이즈의 창업자 셸비 클라크가 직접 답장을 보내왔다. “꼭 우리의 첫 샌프란시스코 파트너가 돼 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처음에는 이용자가 있을 리 없었다. 캘리포니아로 출장을 온 릴레이라이즈 직원들이 카테리나의 주된 고객이 됐다. 하지만 릴레이라이즈도 열심히 노력했고, 이들이 본사를 샌프란시스코로 옮기면서 구글의 벤처투자조직인 구글벤처스의 투자를 받게 되자 카테리나를 제외하고도 많은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걸어서 10분 이내 이 주변 지역에만 릴레이라이즈 차량이 4대”라고 말했다. 많이 버는 사람은 릴레이라이즈를 통해서만 약 월 600달러를 벌어들인다고 했다.

이 경험이 그녀에게 용기를 줬다. 비슷한 사업 형태가 ‘공유경제’라는 이름으로 서서히 성장하고 있었고, 특별히 앞서 나가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지금 그녀는 이 시기를 닷컴 붐이 일었던 1990년대 말과 비슷한 시기로 보고 있다. 모두가 출발선에서 막 달리기를 시작했던 그 순간 말이다. 이렇게 문을 연 회사가 바로 지금 동업자와 함께 차린 작은 회사 ‘모푸즈’(Mo’ Foods)와 ‘셰어키친’(Share Kitchen)이었다.

모푸즈는 음식을 공유하는 사업이다. 에어비앤비는 숙소, 릴레이라이즈는 자동차를 공유한다면 모푸즈는 뒷마당에서 자란 과일이나 채소를 공유한다. 셰어키친은 이렇게 모푸즈에서 공유되는 음식을 판매하기 위해 필요한 부엌을 공유한다. 더 단순화해서 말하면, 뒷마당에서 그냥 썩혀 버렸을 과일을 가져다 잼이나 술을 담근 뒤 서로 교환하거나 판매하는 사업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선 음식을 팔기 위해서는 몇 가지 허가를 받아야 한다. 특히 뒷마당에서 그냥 썩어갔을 사과나 배, 포도를 이용해 음식을 만들어 파는 건 더 까다롭다. 무엇보다 개인이 만든 음식을 판매할 장소를 찾기 쉽지 않다. 슈퍼마켓 등에서 집에서 만든 음식을 팔려면 해당 음식이 주 정부의 인증을 받은 부엌에서 제조됐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이 인증 과정이 쉽지 않다. 부엌에 위생 설비를 갖춰야 하고, 정기적인 감독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집안에 그런 부엌을 두는 사람이 있을리 없다. 린디 씨는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처음에는 공유 시장을 찾았다. 린디 씨처럼 자신에게 남는 물건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모푸즈의 음식을 이런 곳에서 판매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허가받지 않은 음식물이라 판매가 금지됐다.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인터넷 판매 없이 공유 경제가 작동할 리가 없었다. 셰어키친은 이런 문제를 해결한다. 개인이 운영하기엔 너무 값비싼 부엌 설비를 만들어놓고 개인이 이를 나눠 쓰게 한 것이다. 모푸즈는 릴레이라이즈의 개인과 개인 간 거래를 이용해 만들었고, 셰어키친은 집카의 이용권 판매 방식을 본딴 셈이었다.

놀라운 건 수많은 다른 카테리나들이었다. 실리콘밸리는 물론 세계 전역에서 창업하는 공유경제 모델의 기업들은 유달리 여성 창업자가 많다. 업무공간과 프로젝트에 필요한 노동력을 교환하고 공유하는 루스큐브(Loosecubes)의 창업자 캠벨 맥켈러, ‘페이스북을 이용한 안전한 크레이그리스트’ 격인 헤이네이버(Hey, Neighbor)의 창업자 바바라 판투소 등 수많은 여성창업자들이 이런 사업을 시작한다. 엔지니어이기도, 아니기도 하고, 전업주부에 아이 엄마이기도 하고, 직장에서 일하다가 회사를 그만두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모델의 성공은 커뮤니티를 잘 관리하는데서 비롯되고, 고객 커뮤니케이션이 잘 돼야 가능하다는 점이다. 골방의 천재 과학자가 혼자서 만들어낼 수 있는 과거의 기업들과 차별되는 특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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