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슈미트 방한 이후의 생각들

그동안 여러가지 일을 겪으면서 느낀 건, 세상에 이기고 지는 건 없다는 겁니다. 한 번 이기면 결국 다음에는 져야 합니다. 함께 이길 수 있으면 계속 이길 수 있지만, 내가 이기고 상대는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승리는 한두 차례는 올지 몰라도 지속되지는 못합니다.
이상주의자의 헛소리 같지만 사실 이 말은 협상 교과서에도 가장 먼저 등장하는 협상의 원칙이기도 합니다. 어제(8일) 방한했던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다시 이 원칙들이 떠올랐습니다. 슈미트 회장의 얘기가 이런 원칙들에 부합한다는 생각이었죠. 그는 참 존경스러운 인물입니다. 한국을 찾은 건 2007년 5월 구글코리아 사무실이 문을 열던 때 이후로 4년여 만이라는데, 개인적으로 그의 얘기를 직접 들은 건 올해 3월 화상 인터뷰 이후 8개월 만입니다. 그때도 논리정연하고, 어떤 종류의 질문에도 잘 준비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에 약 1시간 가까이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더 훌륭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됐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기자회견이 끝난 뒤 받은 인상은 요약하자면 이랬습니다. 한국은 초고속인터넷이 끝내주게 깔려 있고, 스마트폰도 엄청나게 보급해 놓았는데, 도무지 이걸 어떻게 써야 돈을 버는지를 모르는 나라같다. 그러니 구글이 도와주겠다. 우린 글로벌 사업을 해서 성공해 본 경험도, 노하우도, 네트워크도 있다. 그러니까 우리 손잡고 세계로 나가자. 너희가 성공하면 우리도 돈을 벌테니까.

제일 강조했던 게 소프트웨어 개발자 지원 프로그램이었죠. 생각해 보면 이런 겁니다. 한국에서 ‘앵그리 버드’가 나왔다고 치죠. 팔아보고 싶은데 우선 한국 안드로이드 마켓에는 게임 카테고리가 없습니다. 물론 이번에 슈미트 회장이 게임 카테고리도 열게 됐다고 얘기했지만, 과거엔 안 됐죠. 그래서 팔 시장이 없습니다. 해외에 나가면 팔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냥 안드로이드 마켓에 올린다고 팔리나요? 광고를 해야죠. 그러자면 게임 잡지에도 좀 소개되고 해야 하는데, 콩글리시로 e메일을 만들어 잡지사 기자들에게 돌린다고 해서 기사가 나올리도, 리뷰가 올라올 리도 없습니다. 1억 명을 대상으로 한 시장이라고 말은 하지만, 50개 국가로 나뉜 시장이라면 결국 200만 명 짜리 시장을 50회 공략해야 하는 셈인 것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그런데 구글은 이런 막막한 사람에게 ‘주목할 만한 게임’으로 프로모션도 해주고, 더 좋은 게임을 만들 때까지 버티면서 직원도 뽑을 수 있도록 투자도 해주고, 유명 퍼블리셔에게 한 번 팔아보라고 다리도 놓아주겠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이 회사가 구글의 것이 되면 대박이 터져도 구글이 돈을 법니다. 하지만 그러면 어떤가요. 구글이 큰 돈을 벌겠지만, 구글은 늘 위험을 질테고, 한국인 창업자도 큰 돈을 벌 텐데요.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이 구글 의존적이 되는 문제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의존적이었죠.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한국 정부가 수십억~수백억 원 써서 회계연도 결산 때까지 뚝딱뚝딱 성과 내기 위해 벌이는 정부 지원보다 훨씬 장기적이고 체계적이며 실속있는 지원이 될 겁니다. 구글의 잇속을 차리는 결과겠지만, 결국 우리에게도 이익입니다. 누군가 패배할 필요가 없는 제안이니 잘 될 거라고 믿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공격에 대한 집중이 눈에 띄었습니다. 7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과 슈미트 회장이 만났는데, 한 마디가 눈에 띄었습니다. 최 위원장이 동갑내기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를 언급하면서 남은 두 사람의 관계가 흥미진진해 보인다고 했거든요. 당시 슈미트 회장의 답변은 “앞으로 경쟁은 스마트폰과 클라우드 컴퓨팅일텐데, 이 분야에서 우리는 마이크로소프트보다 훨씬 나은 제품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고위 경영진은 경쟁사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꺼리는데 발언 수위가 높아서 의아했습니다.

이게 8일 기자회견에서는 훨씬 분명해 집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안드로이드의 특허 침해를 이유로 제조사에게 로열티를 요구하는데, 구글이 이걸 지원해 줄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였죠. 슈미트 회장은 “마이크로소프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로열티를 내야 한다는 게 거짓말이냐고 재차 묻자, “마이크로소프트가 안드로이드 기술에 대해 하고 있는 협박이 모두 거짓말이고, 안드로이드의 성공이 두려워 구글의 파트너를 협박하려는 전술에 불과하다”고 말했죠. 과거 제가 경쟁관계에 대해 질문했을 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구글의 경쟁자는 여전히 마이크로소프트이고, 다른 기업들은 직접적인 경쟁관계라고 보기는 어려운 단계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니까 공격이 필요한 곳으로 모든 공격을 집중하는 겁니다. 제겐 협상이 불가능한 상대에 대해 최고의 공격을 퍼부으려는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그러고나니 다른 것들도 하나 둘 연결지어 생각되더군요. 모토로라 인수, 노텔 특허 인수 시도 등에서 보였던 건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구글의 적의였던 겁니다. 노텔 특허 인수 과정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과 손을 잡았다는 사실에 대해 구글이 분노한 건 애플 때문이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였고, 모토로라를 인수했던 건 마이크로소프트가 노키아를 사실상 한 몸처럼 끌고 가게 되면서 여기에 대항하기 위한 하드웨어 제조업체가 필요했던 겁니다. 삼성전자는 좋은 파트너이긴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와도 협력하는데, 마이크로소프트와 대립각을 세워줄 제조업체가 모토로라라고 봤던 것이죠.

에릭 슈미트 같은 사람들이 한국에 더 자주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직접 만났을 땐 더할 나위 없지만, 먼 발치에서라도 볼 때면 늘 많은 걸 배우고 얻게 됩니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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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슈미트 방한 이후의 생각들”에 대한 1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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