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써도 덜 쓴다 (6) 일자리의 끝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해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걸 누구나 안다. 우리에겐 이제 남은 선택지가 별로 없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지만 사실 공허하다. 지구는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곳인데, 너무 넓다. 또 다른 이유는 돈이 없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서 이제는 신용카드조차 만들 수 없다. 빚을 내서 산 집까지 헐값에 되팔게 생겼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언젠가 나아지지 않을까. 경기가 좋아지면 벌이가 좋아질테니까. 그런데 사실 이게 진짜 이유다. 벌이를 찾을 길이 점점 줄어든다. 가족 가운데 한 명은 실업 상태인 상황이 어느새 일반적인 상황이 됐고, 일자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계속 줄어든다.
많은 사람들이 ‘1%’의 탓을 한다. 완전히 잘못된 말은 아니다. 소득 상위 1%의 사람들이 너무 많이 벌고, 너무 많이 갖긴 하니까. 하지만 그 사람들 탓을 해봐야 달라질 건 별로 없다. 일부러 고개를 돌리고 눈 감으려 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 안다. 1%의 사람들에게 소득을 몰아준 건 99%의 나머지 우리들이다. 책 한 권 살 때 몇 천 원 더 싸게 사겠다고 동네 서점을 문닫게 했고, 영화 한 편에 거의 돈 만 원을 내야 하는 건 넌센스라며 인터넷을 뒤져 해적판 비디오를 돌려봤다. 돈을 냈다고 해도 상황은 딱히 나아지지 않는다. 영화 제작자들은 넷플릭스나 훌루를 통해 돈을 좀 벌었을지 모르겠지만 동네 극장도 망하고, DVD 체인점도 망했으며, 한국의 비디오대여점도 다 문을 닫았다. 동네 레코드 가게의 문을 닫게 만들어 놓고서 한 달에 5000원을 내고 수십곡의 노래를 내려받는 것도 비싸다고 말했고, 전단지 돌려주던 동네 광고업자 대신 네이버와 티켓몬스터에 광고비를 내는 것도 우리다.

잘못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기술의 변화에 따라 대세가 바뀌었는데 혼자 맞서려고 해봐야 소용없게 마련이다. 문제는 이런 기술 발전의 속도다. 역사적으로 몇 차례 인류는 기술 발전으로 인해 일자리를 일었다. 산업 혁신이 생산성을 늘려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하는 풍요의 시대를 열어주리라는 가설은 ‘너무 빠른 기술 발전’에 의해 종종 뒤집히곤 했다. 산업혁명 초기의 영국에서는 증기기관을 이용한 방직기가 방직공의 일자리를 대체했다. 대체되는 방직공은 다른 산업으로 흡수돼야 했는데 이들을 받아들일 공장이 늘어나는 속도는 일자리를 잃는 방직공의 속도보다 훨씬 뒤처졌다. 대공황을 마무리한 미국 기업들도 1930년대 초에는 직원을 고용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기계를 사들였다. 지금 이 시대에 일어나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어쩌면 지금의 속도가 인류가 여지껏 경험해 왔던 발전의 속도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일 것이라는 데 있다. 역사상 어느 때도 지금처럼 강력한 기계가 모든 산업에 걸쳐 파괴적인 혁신을 이끌어냈던 적은 없었다. 올해 초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 등이 참석했던 미국 대통령 직속의 과학기술 위원회는 독일의 컴퓨터 과학자 마틴 그뢰첼(Martin Grötschel)의 연구를 인용해 1988년부터 2003년까지의 컴퓨터 기술 발전 속도를 소개했다. 그뢰첼 교수에 따르면 이 시기 동안 컴퓨터의 성능은 약 4300만 배 발전했다. 두 가지 덕분이었다. 하나는 더 빠른 프로세서의 발명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소프트웨어에 임베드된 알고리듬의 개선이었다. ‘무어의 법칙’ 등으로 알려져 있듯 프로세서의 발전 속도는 놀라웠다. 약 15년 동안 무려 1000배나 빨라졌다. 대단한 숫자이긴한데 알고리듬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알고리듬은 같은 기간 동안 4만3000배 개선됐다. 하드웨어도 따라잡기 힘든데, 소프트웨어 기술은 말 그대로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일이 이렇게 진행되자 생각지 못했던 현상도 나타났다. 프로그래머나 금융공학자, 전문경영인, 의사와 법률가 같은 고급 기술을 가진 사람들의 수입은 계속 늘어났다. 당연한 일이다. 이런 고급 기술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임금은 정체되거나 줄었다. 그런데 이게 묘했다. 기술과 임금의 관계는 저급기술에서 고급기술로 올라갈수록 임금이 늘어나는 우상향 곡선이 아니라 ‘U자 곡선’을 그렸다. 최근 10년 동안 가장 수요가 줄어든 산업 분야는 기술 가운데에서도 중간 단계에 머문 기술들이었다. 고급 기술은 물론 괜찮았다. 그런데 낮은 수준이라 여겨졌던 기술들도 의외로 괜찮았다. 문제는 평균적인 기술이었다. 말하자면, 대학 교육을 받았던 도서관 사서와 은행원, 또는 기술을 수련해 온 공장의 숙련공 등에 대한 수요가 중학교만 나온 정원사나 미용사, 간병인보다 훨씬 더 급격하게 줄어들었던 것이다. 이 시대의 기계가 점점 인간의 육체적 능력 대신 인간의 정신적 능력을 대신해 온 결과였다.

디지털 기술은 과거에는 ‘인간만의 독점적 영역’이라고 받아들여졌던 정신노동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체스 게임이 그런 좋은 예다. 1997년 인간 가운데 최고의 체스 챔피언이었던 게리 카스파로프는 IBM이 만든 1000만 달러짜리 슈퍼컴퓨터 ‘딥 블루’에게 패하고 말았다. 여기에 생각할 점이 있다. 그 뒤로 컴퓨터를 이기는 인간 체스 챔피언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딥 블루를 이긴 컴퓨터가 새롭게 등장한 것도 아니다. 오늘날 지구상의 체스 챔피언은 개인이 아닌 ‘팀’이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인간인 것이다.

해답을 딥 블루가 전해줬는지도 모른다. 인류는 기계와 겨뤄야 하는 시기에 늘 최악의 시기를 보냈다. 기계를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계와 인류가 겨루는 시기는 재능있는 기업가를 영웅으로 만들어내는 시기이기도 했다. ‘구하기 쉬운 풍부한 노동력’과 ‘기술 혁신으로 인해 그 어느때보다 값싸진 기계’가 시장에 넘쳐나는 시기도 이 때이기 때문이다. 남아도는 인간의 능력과 쉽게 구할 수 있어 인간을 대체하기 시작한 기계의 능력을 잘 결합시킨다면 딥 블루를 이기고 세계 챔피언이 된 인간-기계 연합팀처럼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영웅이 나올 수 있다.

구글의 최고경제학자 할 배리언은 이런 성공을 거두는 기업가를 ‘마이크로다국적기업'(micro multinationals)이라고 부른다. 열 명도 안 되는 작은 사람들이 전 세계의 고객을 대상으로 제품을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에어비앤비는 수백명의 직원만으로 세계 수십개국에 힐튼 호텔체인보다 거대한 숙박 네트워크를 만들어냈다. 또한 이들은 지금까지 우리의 경제가 만들어낸 모든 혜택을 쓸 수 있는데 이는 세계적인 공급자와 파트너 네트워크에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장 하나 없는 애플이 세계 휴대전화와 모바일기기 시장을 휩쓰는 건 그 앞의 제조업자들이 만들어낸 역사적 분업체제 덕분이다.

승자만이 모든 걸 독식하는 ‘1%의 경제’로 지금의 시장을 바라보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정치운동일 뿐이다. 그런데 정치운동이 기술 발전을 멈추지는 못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건 새로운 중세시대 또는 국가적 차원으로 발전한 러다이트 운동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문제 해결의 열쇠도 기술과 혁신, 시장에서 찾아야 한다. 마이크로다국적기업의 시대에서 개별 시장의 숫자라는 건 상한선이 없다. 원칙적으로 수천만 명의 사람들은 수천만 개에 이르는 개별 시장에서 최고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크리스 앤더슨은 2004년 이를 ‘롱테일’이라고 부르면서 ‘100만 개의 틈새시장’으로 묘사했지만, 사실 이 틈새시장은 틈새라고 하기엔 너무나 크다. 글로벌한 틈새시장이라 단일 국가의 주류 시장보다도 훨씬 크기 때문이다. 기술 철학자인 토마스 말로니는 이를 ‘초 전문화'(hyper specialization)의 시대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매크로 시장의 마이크로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 가능성은 단순히 덧셈으로 늘어나는 게 아니다. 가능성은 곱셈으로 증폭된다.”
‘기계와의 경주(Race against the Mac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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