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000000과 #FFFFFF.
컴퓨터는 이를 검은색과 흰색으로 인식한다. 여기에 오류는 없다. 0은 이론상 어떤 빛도 표현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고, F는 빛의 밝기를 최고로 표현한 상태를 뜻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1677만7214가지의 색이 있다. 이 가운데 적(Red), 녹(Green), 청(Blue)의 채도가 없는 회색만 254가지다. 실제로 자연에 존재하는 회색은 훨씬 많다. 하지만 컴퓨터가 구별하는 254가지의 회색조차 사람의 눈으로는 쉽게 차이를 찾아내기 힘들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시각은 약 1000만 가지의 색채에 반응한다고 하는데, 대부분의 컴퓨터가 표현하는 색이 약 1677만7216가지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이 가운데 흰색과 검은색은 단 두 가지다.

전에 한 번 트위터에서 미국 아마존닷컴에 올라온 이명박 대통령의 영문 자서전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여기 달린 이 대통령 자서전에 대한 호의적 리뷰(별 다섯개)의 대부분이 아마존에서 다른 리뷰를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달았던 것이라는 글을 소개한 것이다. 간단히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이 대통령의 측근이나 또는 이 대통령에 호의적인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알바’ 짓을 한 셈이다. 그런데 해당 글에서는 그것만 지적했다.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이 대통령에 반대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최하점인 별 한 개의 리뷰를 단 사람들 가운데에도 상당수가 아마존에서 다른 리뷰를 쓴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거의 대부분이 소위 ‘알바’였던 별 다섯개의 리뷰와는 달리 별 한 개를 단 사람들 가운데에는 아마존을 열심히 쓰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별 다섯개 리뷰의 99%가 알바라고 친다면, 별 한개 리뷰의 95%가 반대쪽 알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은 아마존의 이 자서전 코너가 소개되면서 더 심각해지는 듯 싶다.

도대체 왜 그럴까?

2009년 8월,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이런 극단적인 현상을 기사로 쓴 적이 있다.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중도는 사라지고 찬성과 반대 의견으로만 극단화된다는 것이었다. 무식하게 조사했다. 직접 사람이 댓글을 읽어 찬성과 반대를 손으로 셌다. 오류를 막기 위해 5명이 수천 개의 댓글을 일일이 확인하고 기업에서 불량품 검사를 하듯 표본검사를 통해 신뢰도도 재확인했다. 그 결과 정말로 시간이 지나면 의견은 늘 극단화됐다. 기사에는 유감스럽게도 이 대통령 사례 한 건만 실렸다. 하지만 조사는 다른 기사에 대해서도 진행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이 대통령이 극단적인 논쟁을 불러 일으키는 사람이기 때문이고, 아마도 한국의 대통령은 좌와 우를 막론하고 그런 자리였기 때문에 선택했을 뿐이다.

이런 걸 캐스 선스타인 교수는 발칸화(Balkanization) 또는 양극화(Polarization)라고 표현했다. 서로 다른 의견이 인터넷이라는 시공의 차이를 좁혀주는 기술 매체를 통해 쉽게 분열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소셜네트워크는 듣기 싫은 의견은 배제하고, 자신과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견해만 더 많이 접하게 하는 효과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을 더욱 부추기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시대는 괴롭다. 특히 두 개의 큰 선거가 눈 앞에 있는 2012년은 나 같은 회색분자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해다. 내년이 벌써부터 걱정된다. “너는 누구 편이냐”고 물어댈 그 수많은 사람들 때문에. 하지만 흰색과 검은색은 각각 1개씩일 뿐이지만, 회색은 그 사이에 254개나 존재한다. 컴퓨터 같은 기계도 그 정도 단순한 사실은 알고 있다. 사람들도 제발 단순한 진리에 눈감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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