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를 막을 권리

지난달 시끌시끌했던 주제가 하나 있다. 삼성전자와 KT 사이의 기 싸움이었다. KT가 삼성전자의 스마트TV의 인터넷 접속을 일부 제한했기 때문이다. 제한의 방법은 단순해서 삼성전자의 스마트TV 서버와 스마트TV 단말기 사이의 통신을 제한하는 식이었다. 그러니 일반적인 인터넷 사용에는 별 무리가 없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자체적으로 만들어 제공하는 스마트TV의 기능은 모두 차단된다.
이 문제와 관련해 최근 이석채 KT 회장을 만나 물어봤다. 사람들은 망 중립성 위반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KT의 공식 입장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인터넷을 오가는 콘텐츠의 종류를 제한하는 게 아니라 특정 서버와 단말기 사이의 비정상적인 트래픽을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조치는 가치 중립적이며, 정상적인 통신망 관리라는 뜻이었다.

삼성전자 쪽 입장은 전혀 달랐다. 특정 업체의 콘텐츠에 대한 차별이라고 했고, 별도의 망 이용대가를 낼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양쪽 의견에 다 동의할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다. 원래 세상 만사 무 자르듯 딱 떨어지는 건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여론전에서는 KT의 사실상 완패였고, 실리로는 KT의 승리였다. 결국 협상장에 불려 나온 건 삼성전자였고 KT는 “방송통신위원회에게 미운 털이 박혔다”는 것 정도만이 유일한 손해였다. 전 정통부 장관이 CEO로 있는 회사가 그 정도 미운 털에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을 것 같았다. 졸업식 축사 이후 만난 인터뷰여서 기사로는 이렇게 나왔고, 조금 자세한 얘기는 아래와 같다.

– 스마트TV 관련해서 소비자가 이미 대가를 지불한 통신망에 KT가 이중과금한다는 지적이 있어요. 소비자가 통신요금 내는데 왜 인터넷을 차단하느냐는 거죠.
= 어디라고 말 안해도 아실 테니 누가 그런 주장을 폈는지는 얘기 않겠습니다.(주: 당연히 삼성전자다.) 그 분들께 외국가서 얘기 한 번 해보시라고 하세요. 한국 시장은 작습니다. TV 시장도 그렇고, 휴대전화 시장도 그렇죠. 세계 시장 점유율로 5%가 넘는 시장을 찾기가 힘들어요. 그러니 한국 기업은 무조건 세계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세계 어느 곳이라도 한국 기업이 스마트TV를 팔 때 네트워크 사업자와의 협력 없이 물건 팔 수 있는 곳이 있습니까? 지금 스마트TV는 자원 먹는 하마 같은 수준이에요. 네트워크 사업자와의 협력이 없으면 스마트 디바이스는 스마트하지 않습니다. 제조업체들 보면 전기를 절약해준다는 건 엄청나게 강조해요. 그런데 네트워크는 어떻습니까?

– 왜 굳이 KT가 총대를 메고 그런 얘길 꺼냈나요?
= 제가 지금 하는 건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기업들이 해외 나갈 때 ‘한국에선 이런 식으로 통신사와 협력해서 스마트TV를 팔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지 않겠어요? 전기기구를 쓸 때 장점을 막 설명하는데 전기 콘센트가 없으면 어쩔 겁니까. 그렇게 세상을 봐 주셔야죠.

그러니까 이 회장의 통신은 ‘전기’다. 유한한 자원이지만 꼭 필요한 자원이기 때문에 사용료는 낮춰야 하지만 낭비는 막아야 한다는 논리다. 언뜻 들으면 타당하다. 통신도 꼭 필요한 자원이고, 그래서 정부가 통신 산업은 규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 전기회사는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업체와 전기를 송배전하는 한국전력으로 나뉜다. 발전회사가 석탄이나 석유를 태우면 전기가 나오고, 이를 어느 곳으로 얼마나 보내 얼마를 받을지는 한국전력이 정한다. 반면 통신회사는 데이터가 어디로 흐를지는 관리하지만 데이터를 생산하지는 않는다. 데이터를 생산하는 건 네티즌이고, 콘텐츠 업체고, 포털 사이트고, 전자상거래 업체다. 발전회사가 없는 한국전력인 셈이다. 이런 구조에서 전기와 통신이 동등한 비교가 가능할까? 오히려 도로공사와 비슷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교통체증이 있는 곳에 도로공사는 안내 방송을 내보내 분산을 유도한다. 명절 날 혼잡이 예상되면 가장 혼잡이 예상되는 시간을 미리 예보하기도 한다. 신호등이나 운영 톨게이트 수 등으로 진입량을 제한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사고나 보수가 아니면 도로 자체를 차단하는 경우는 없다.

이 회장이 물꼬를 튼 덕분인지, 통신사 CEO들이 너도나도 정당한 망 사용료를 받겠다고 나섰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는 명심했으면 좋겠다. 이분들이 늘 비교하는 수도와 전기, 도로는 모두 국유화된 자원이다. 산업에 꼭 필요한 인프라이기 때문에 정부가 최대한 이를 싼 값에 묶어두기 위해서다. 정당한 망 사용료를 받으면서 값을 낮출 수 있다면 기업에게 돈을 받든, 무제한 데이터요금제를 없애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하지만 그러려면 공무원이 전기료와 수도료를 인상해서 자신들 월급을 올릴 때 국정감사와 행정지도 등 각종 규제를 받고, 필요할 경우 다시 급여를 삭감당하는 것 정도의 안전 장치가 필요하다. 민간 통신사도 통신료를 인상해서 보너스 잔치를 벌이거나 엉뚱한 신사업(빵집을 차린다거나)에 진출할 때 즉각적인 사업권 반납까지도 각오해야 한다는 얘기다. 스스로 그런 강한 규제를 당할 자신이 있다면, 그리고 정부가 그렇게 호되게 규제의 칼을 휘두를 자신이 있다면, 그 때는 정당한 망 사용료에 대해서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도 환영한다. 물론, 그런 날이 오기 전에 통신사가 국유화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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