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출장길

고양이의 이름은 수나. 나를 보자마자 다가와 다리에 옆구리를 비벼댄다. 침대에 앉아 간단히 짐을 풀었더니 폴짝 내 침대위로 뛰어오른다. 목 뒤와 턱 아래를 살짝 쓰다듬었더니 가르릉 소리를 내면서 눈을 감는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친해졌다. 미국 출장길, 첫날 도착한 숙소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난 유독 혼자 떠나는 출장이 많은 편이다. 이런 출장 때마다 견디기 힘든 건 바보처럼 보내는 저녁 시간이다. 혼자 식사를 하고, 혼자 차를 마시고, 혼자 거리를 지나는 사람을 구경한다. 낯선 언어, 낯선 풍경, 낯선 사람들 속에서 난 도무지 할 일이 없다. 외롭다.

그런데 최근엔 이런 기분이 좀 달라졌다. 에어비앤비 덕분이다. 이젠 모든 출장에서 단체 여행이 아니라면 숙소를 에어비앤비를 통해 잡는다. 이번 출장은 캘리포니아를 거쳐 뉴욕에서 마무리되는 미국 출장. 첫 숙소는 벨몬트라는 실리콘밸리의 작은 도시에 잡았다. 수나는 이 집의 고양이 이름이다. 집 주인은 젊은 일본계 미국인 부부. 얼마전까지 필리핀계 미국인 룸메이트와 함께 아파트를 빌려 살다가 룸메이트가 나가면서 방이 하나 남게 됐다. 실리콘밸리의 임대료는 살인적이다. 집을 줄여야 할까. 부부는 고민하다가 에어비앤비를 택했다. 내가 이 집의 세번째 손님이라고 했다.

남편 유타카는 금융권 소프트웨어 개발사로 유명한 인투잇(Intuit)의 엔지니어, 아내 마유코는 런던에서 무용을 전공한 프로 댄서다. 낮에 출장 일정을 소화한 뒤 저녁에 이 부부의 집으로 돌아오면 난 더 이상 혼자 외로워 할 필요가 없다. 마유코는 남의 얘길 정말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서 내가 취재하는 내용을 궁금해하며 설명해달라고 했고, 유타카는 하는 일이 이쪽 일인지라 내가 한마디 하면 금세 맞장구를 치면서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그러다가 알게된 사실, 유타카는 자기 사업을 시작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매주 주말을 이용해 서비스 개발을 하고 있던 것이다. 내가 흥미를 보이자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 설명해줬고,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유타카의 일 진전상황을 듣고 있다. i메시지 만세.

뉴욕에서는 롱비치라는 해변가 집을 빌렸다. 맨해튼에도 에어비앤비 숙소는 있었지만 꼭 해변가에서 자면서 아침에 일어나 바닷가를 뛰고 싶었다. 처음에는 방 한 칸을 빌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방 한 칸이 아니라 단독주택의 2층 전체가 내 차지였다. 컴퓨터를 놓고 일할 수 있는 프린터가 설치된 개인 사무실은 물론, 발코니와 부엌, 심지어 흔들의자가 놓인 거실까지 주어졌다. 400m만 달려나가면 바로 롱비치 해변. 아침마다 동네 사람들과 바닷바람을 맞으며 달리기로 시작하는 하루는 상쾌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집 주인인 아리로부터 메일을 한 통 받았다. 에어비앤비는 집주인이 거쳐간 손님을 평가하기도 하기 때문에 평가를 받은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리는 나를 링크드인 인맥으로 초청했다. 그의 이력도 화려했다. 그냥 유태인 할아버지라고만 생각했는데, 젊어서 광고회사에 다녔고 이후 온라인마케팅 회사를 창업했다. 검색엔진 최적화(SEO) 용역을 주로 판매했으며, 앤젤투자 경험도 있었다. 뉴욕을 조금 작은 실리콘밸리라는 뜻에서 ‘실리콘앨리’라고 부르는데 아리 또한 실리콘 앨리의 주요 참가자였다. 내가 에어비앤비를 구하면서 이러저런 경력을 함께 붙였던 걸 살피고는 자신과 비슷한 분야에서 일한다고 생각해서 링크드인 인맥을 맺자고 요청한 것이다.

에어비앤비는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냥 온라인 민박중개 사업이다. 하지만 실제로 전통적인 민박이 그렇듯, 이런 식으로 타인의 삶 속에 나의 삶을 끼워넣으면 새로운 경험이 생겨나고 인연이 만들어진다. 재미있다. 멍청하게 흘려 보내는 저녁 시간 같은 건 이런 삶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내가 방문하는 지역 사람들의 삶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고, 더 많은 배움을 얻게 된다.

2008년 처음 에어비앤비 사업이 시작됐을 때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탈들은 모두 “누가 자기 집에 낯선 사람을 들여놓겠어?”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고 한다. 지금 이 서비스는 힐튼 호텔보다 더 많은 객실을 소유한 세계 최대의 숙박 서비스가 됐다. 서비스 국가는 192개국. 어디서든 에어비앤비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낯선 이의 집을 찾아다니고 낯선 이를 나의 집에 기꺼이 들인다. 겪어보면 안다. 난 이제 아마도 다시는 호텔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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