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미래

NHN 이해진 CSO가 지난달 사내강연에서 했다는 얘기가 기사화되면서 시끄럽다. 개인적으로 이 기사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마지막 단락의 이 멘트,

이용자의 요구를 악착같이 파악해 독하게 추진하는 기업이 결국 이겼다. NHN에는 혁신이 더 이상 없고 독점적 지위로 경쟁사를 압도해 1등을 했다고 이야기하지만 IT산업 특성상 이용자를 배려하는 혁신 없이는 계속 1위를 지킬 수 없다.

전형적인 자기 성공 신화에 매달리는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같다. 한 번 성공했던 기업은 성공에 사용됐던 공식을 환경이 변화한 뒤에도 계속 사용하려 한다. 지금 NHN에게 필요한 혁신은 과거에 야후나 다음 같은 경쟁사와 경쟁하던 시절의 혁신이 아니다. 그 때 NHN이 해야 했던 건 말 그대로 남들이 하는 걸 더 잘하는 것이었지만, 지금 NHN과 경쟁하는 회사들은 모두 NHN이 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NHN의 핵심을 건드린다. NHN은 안드로이드도 만들지 않고, 아이폰도 갖고 있지 않으며, 소셜네트워크는 형편없다. 그리고 이런 경쟁사들 모두가 NHN의 핵심인 검색(검색광고)과 미디어(디스플레이광고), 게임(한게임매출)을 건드린다.

모두가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했을 때 나오는 결과물 또는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하기 전 화면에 함께 등장했던 콘텐츠의 품질만으로 경쟁하던 시절에야 그걸 잘 하는 게 옳았다. 그래서 구글보다 좋은 결과물을 보여주려고 지식인이 나왔고, 다음보다 더 훌륭한 네이버 카페가 나왔으며, 싸이월드보다 쌈박한 블로그도 등장했다. 그런데 지금 NHN에게 위기를 느끼게 하는 회사들은 다른 창에서 경쟁한다. 그런 점에서 “모바일 붐을 일으키려는 그 시기에 모바일 센터를 없애고, 메신저 서비스가 모바일에서 킬러 서비스가 되려는 시작의 시기에 네이버 폰 서비스를 없애는 등은 누구의 잘못인가요?”라는 이 분 지적이 납득이 간다.

예전에 휴맥스 이야기를 하면서 변화 관리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변화 관리의 과정은 일반적으로 이렇게 나타난다. 위기의식(Urgency), 단합(Coalition), 비젼(Vision), 소통(Communication), 권한부여(Empower), 성과(Wins), 지속(Sustain).

NHN에는 위기의식이 생겼다. 그러니 변화가 필요하다. 창업자가 나서서 위기를 고취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그 다음 필요한 단합이 사라졌다. 경영진부터 반성하고 구성원을 하나로 결집시켜야 할텐데 그 대신 책임자를 찾아 단죄했다. ‘조기축구회’로 NHN을 만들고 만 삼성 출신 직원이 희생양이었다. 전형적인 ‘죽은 말 올라타기’다. 위기의 상황에서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회사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부터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앞서 얘기했던 휴맥스의 경우 이 위기를 넘기기 위해 창업자인 변대규 사장이 직접 “내 잘못으로 몇 년을 허비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해봅시다”라고 말하는 게 변화의 시작이었다. 잘못되고 있었는데 책임자가 반성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단합이 되겠나. 단합된 이후에는 책임자가 길을 제시해야 한다. 그게 비젼이다. 단합이 없으면 멋진 말을 늘어놓아봐야 새 비젼을 잘못 따라갔다가 자칫 다음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구성원들이 누구도 움직일 리 없다. NHN의 지금 상황에서 다음 단계는 요원해 보인다.

변화를 자발적으로 이끌지 못하고 셔틀버스를 없애고, 카페를 없애고, 기강을 바로잡는 관리와 통제만 도입하고 나면 그 다음에 남는 건 연공서열 문화다. 그래서야 온갖 복지혜택 다 받아가면서 높은 근무만족도까지 가진 채 한국 사람들 못잖게 미친듯 일하는 실리콘밸리의 경쟁사들을 앞설 수 있을까? 길게 얘기하기엔 너무 긴 얘기라 간단히 말하자면, 나이와 권위로 일을 하는 회사에선(대개는 이런게 관리와 통제로 나타난다) 누구도 자발적으로 일하지 않는다. 성과와 능력으로 평가받고 빠르고 차별적인 보상을 받는다면 네가티브한 통제 없이도 사람들은 미친 듯 일하게 마련이다. 능력있는 사람이 빨리 승진한 뒤 일찍 은퇴해 쉴 수 있다면 최고는 최고의 대우를 해주는 회사에 충성하게 마련이다. 이 경우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부터 회사를 나간다. 반면 위기를 ‘게으른 직원들’ 탓으로 돌리면 능력있는 사람들부터 회사를 나간다.

조직이 커지면 훨씬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복잡한 문제를 만들어내는 경영진 자체가 문제다. 기업이 성장할수록 업무는 단순해져야 한다. 오죽하면 스티브 잡스가 래리 페이지에게 구글이 제품을 너무 많이 만든다고 뭐라고 했고, 구글은 경쟁사 라이벌의 조언을 받아들여 잡다한 서비스를 정리했을까. 통제되지 않는 제품과 서비스는 회사의 집중을 분산시킨다.모두의 정신을 사납게 만드는 것이다.

솔직하게 생각해 보자. NHN이 지금까지 어떻게 위기에 대응해 왔나. ‘똑똑하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에게 자리를 하나 만들어 앉혀주고 “자 이제 똑똑한 네가 해결해봐”라고 했던 것 아닌가. 검색 최고로 잘 만들던 사람이 SNS도 최고로 잘 할 수 있다면 래리 페이지가 페이스북을 만들었어야 옳다. 일은 사람이 한다고 하지만, 그 사람을 가장 정확한 자리에 갖다 놓는게 경영이다. 그래서 CEO가 모든 걸 파악해야 하고, 그러려면 사업이 단순해져야 하는 것이다.

네이버가 제품부터 봤다면 어땠을까. 네이버가 잘 하는 건 과연 뭘까. 검색? 솔직히 구글만 못하다. 우리 모두 안다. 큐레이션?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걸 진지하게 생각했어야 한다. 네이버의 서비스도 모두 그런 식으로 바뀌어야 했고. 예를 들어 미투데이를 사들이는 대신 ‘트위터캐스트’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네이버 메인 화면에 오픈캐스트로 대한민국 모든 블로그를 모아놓았던 것처럼. 라인을 만드는 대신 네이버 이용자가 뽑는 ‘오늘의 카톡’을 만들었다면 그건 또 어땠을까. 그러면 사용자들이 알아서 트위터를 네이버에 실시간으로 중계하기 위해 트위터피드를 네이버와 연결했을지 모르고, 카톡 메시지를 친구에게 보낼 때마다 네이버에도 보내줬을지 모를 일인데.

스스로 잘하는 걸 파악하는 건 중요한 전략적 사고다. 하지만 과거 성공의 유산에 사로잡혀 있는 건 바보짓이라고 부른다. 지금 NHN은 그 둘 가운데 어딘가에 서있다. 어느 쪽으로 움직일지 모르겠지만, 잘 움직였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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