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켓몬스터

‘티몬이 간다’는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어찌 보면 질투 같고, 어찌 보면 동경 같은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결국 신문에 인터뷰는 이만하게 실은 게 전부였다. 마음은 훨씬 긴 기사를 쓰고 싶었다. 그들은 그렇게 다뤄질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들’이었다. 신현성 한 명이 아닌 평소 잘 얘기되지 않던 다른 사람들. 어느새 이름조차 외워버린 권기현, 김동현, 신성윤, 이지호를 포함한 다섯 명의 이야기. 아, 한 명 더 있다. 유민주. 잘 생겼고, 글도 잘 쓰고, 성질은 불같은 티몬 창업멤버들의 친구이자 그들 이야기의 작가.

그래서 일부러 만나자고 했다. 신현성 대표의 청담동 집으로 한밤중에 찾아가 이삿짐을 정리한 권기현과 김동현을 만났고, 바쁘다는 신성윤을 따로 불러내 잠실의 티몬 사무실 속 회의실에 감금하듯 앉혀놓고 질문을 퍼부어댔다. 모처럼 쉬는 주말을 맞이해 방위산업체 근무 중 서울로 나온 유민주를 서울역 앞으로 불러냈고, 티몬 홍보팀 사람들에게는 온갖 자료와 비사를 요청해댔다. 겨우 200자 원고지 8매 남짓한 인터뷰 하나 쓸거면서 왜 이렇게 열을 올렸을까.

애초에 내가 ‘IT한류’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동아일보에 연재됐던 릴레이 인터뷰를 기획했던 건 ‘남들의 얘기’는 좀 그만 하자는 생각에서였다.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이 잘 하는 것도 하루 이틀 얘기지, 허구헌날 한국의 언론은, 특히 IT 산업을 다루는 언론은 남들의 얘기만 해왔다. 가끔씩 내가 국제부에서 외신 처리하는 기자가 된 게 아닌가 싶은 자괴감도 들었다. 그래서 ‘우리 방식’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을 소개하고 싶었다. 카카오톡이 그랬고, 논란은 많지만 NHN도 그랬다. 그냥 메신저 아니냐고 얘기하던 걸 SNS의 반열로 올려놓은 게 카카오톡의 성공 배경이었고, 그냥 수준낮은 검색엔진 아니냐는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국내 인터넷 인프라를 혼자 쌓아왔던 게 아직까지 네이버가 1위를 지키는 비결이다. 엔씨소프트도, 넥슨도 모두 해외 업체들과 다른 독창성을 조금씩 내부에 쌓아가면서부터 간신히 세계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재미있던 건 티켓몬스터였다. 이들은 비즈니스 아이디어 측면에서 보자면 제일 덜 독창적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신현성 대표는 인터뷰 내내 미국 업체들 얘기를 꺼냈다. ‘그루폰나우'(Grupon Now)의 혁신성, 구글 오퍼스의 도전, 리빙소셜의 차별점 등등. 미국 교과서를 보고 와서 한국에서 사업하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그는 2년 전 한국에 처음 와서 회사를 차리겠다고 했을 때 ‘결제’가 뭐고 ‘홍보’가 뭔지 한국어 단어를 몰라서 자영업자들 앞에서 쩔쩔 매던 사람이다. 2년 만에 유창한 한국어로 언론 인터뷰까지 할 수 있게 된 건 놀라운 집중력 덕분이다.

신 대표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을 살펴보면 더 흥미롭다. 애초에 초기 창업자 5인이 끈끈한 관계를 갖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신현성과 신성윤 두 사람이 미국에서 아주 친한 친구였을 뿐이다. 이들이 함께 창업을 결심했을 때 이지호가 합류했다. 모두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학생들이었다. 권기현과 김동현은 이들이 한국에 왔을 때 우연히 소개받아 만나게 된 사람일 뿐이었다. 그 때 김동현은 신현성과 신성윤에게 ‘달라붙었다’. 창업 계획을 들으면서 본능적으로 이 사업이 될 것 같았으니까. 결과적으로는 성공이었다. 한국말도 서툰 미국 학생들이 한국에서 소셜커머스라는 허울을 뒤집어쓴, 사실은 대학 동아리의 학교축제 스폰서 모집과 비슷한 영업에 나서는 건 애초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때 김동현이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서 영업을 뛰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티몬은 없었을테다. 이후 그는 KAIST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권기현을 티몬으로 데려온다. 그렇게 창업멤버가 완성됐다.

원래 이들보다 나이많은 사람들의 창업기도 마찬가지로 정신없고 예측불가능하기 마련이지만, 젊어서 그런지 이들의 역사는 정신이 하나도 없다. 우선 창업멤버 가운데 하나인 이지호는 미국에 돌아갔다. ‘형들’보다 ‘두 살’ 어리기 때문이고 대학을 마쳐야했기 때문이라는데, 취급액만 수천억 원 대에 이르는 큰 사업을 벌이면서 쉽게 물러난다는 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한 때 CFO를 맡았던 신성윤이 CFO가 된 것도 오직 엑셀 프로그램을 제일 잘 다룬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군대에서 홍대 미대 출신에게 축구장 라인을 그리게 시킨다는 것과 비슷해 보였다. 창업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DSLR 카메라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권기현은 디자인과 웹기획 담당이 됐고, 당연히 ‘한국어 말빨’이 제일 센 김동현은 영업담당이 됐다.

이후 성장통을 넘긴 과정도 흥미로웠다. 이들을 보면 별 욕심이 없는 사람들 같다. 티몬의 직원은 순식간에 100명, 200명이 넘어갔고, 데일리픽을 인수하면서 티몬 직원들보다 평균 연령이 10년 이상 많은 업계 베테랑들도 한 회사 식구로 받아들였다. 그 과정에서 대학 졸업장을 받겠다던 이지호를 제외한 다른 창업자들은 모두 자기 자리를 지켰다. 아, ‘자리’를 지킨 얘기가 아니다. 회사를 떠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정도 규모의 성장 과정에서 창업멤버들은 회사에 남기가 쉽지 않게 마련이다. 아무리 1년 동안 현실에서 뒹굴며 실전으로 배웠다지만, ‘엑셀을 잘 다루는 CFO’와 ‘DSLR을 가진 기획자’, ‘사투리가 구수한 영업총괄이사’로 1000명짜리 회사를 꾸려갈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래서 다행히도 성장기에 접어든 벤처기업은 첫 성공을 거두자마자 내분에 휩싸이게 마련이다.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회사가 크면서 이들도 자리를 전문가에게 내줘야 했다. 대신 불만하지 않았다.(신 대표와 저녁마다 술 마시며 신세한탄은 좀 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영입한 전문가 밑에 들어가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신성윤은 제대로 된 CFO 밑에서 제대로 재무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권기현은 혼자 힘으로 꾸려나갈 수 있는 별동부대처럼 움직이는 작은 서비스기획팀을 만들어 팀장으로 스스로를 강등시켰다. 김동현은 기업 영업으로 역할을 줄였다가, 아예 새로운 사업구상을 맡는 TF를 맡았다. 그들은 욕심이 컸기 때문에 욕심을 줄였다.

아마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다. 2010년 5월에 창업한 이래 창업자 다섯명은 1년 가까이 돈 한 푼 받아가지 않은 채 일했다. 결혼도 하지 않았고, 잠자리는 신현성의 집에 모두 모여서 함께 자면서 해결했다. 그러니까 그들은 라면과 햄버거 값 정도만 있으면 버틸 수 있었다. 첫 월급을 받은 건 작년 7월부터. 그 때 각자 받아간 돈이 월 250만 원인데, 스물여섯 청년들과 또래의 직원들은 회식 한두번만 해도 월급을 다 써버리곤 했다. 명색이 CEO인 신현성 대표가 자기 이름으로 신용카드를 만든 게(신 대표는 법적으로 미국인이다.) 겨우 지난해 10월의 일이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신 대표와 함께 청담동 신 대표 집에 살던 권기현과 김동현은 최근 그 집을 나왔다. 그리고는 ‘티몬이 간다’라는 책을 쓴 KAIST 친구 유민주와 함께 잠실에 집을 얻었다. 시트콤 ‘프렌즈’처럼 친구들 가운데 누군가 먼저 결혼하기 전까지는 같이 살아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들에겐 인생이 여전히 동아리 활동이다.

내가 처음에 입사했을 때 한 선배가 그랬던 기억이 난다. “회사는 월급을 주는 동아리”라고. 그 말에 반해서 미친 듯이 일했다. 뭔가 재미있는 일을 하고, 결과가 나오면 보람도 있는데, 회사가 돈까지 주니까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는 거라고.

당신들에게 티켓몬스터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권기현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다른 곳에서는 20년을 넘게 일해도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을 빠른 성공의 기회를 얻었다고 했다. “내 생각이 옳았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아주 오랜 시간을 보낸 뒤 ‘아 결국 실패였구나’하고 깨닫는다. 하지만 난 내가 옳았다는 걸 아주 짧은 시간에 증명했다. 아주 짜릿했다.”

곧 그들의 눈앞에 닥쳐올 건 실패의 시련이다. 나하고 내기를 해도 좋다. 하지만 인생을 동아리활동처럼 사는 사람들이라면, 실패가 정말 좋은 교훈이 될 테다. 그리고나면 신현성의 뒤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던 창업멤버들은 훨씬 더 큰 성공을 거둘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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