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발명가: 쿼키

두 사람에겐 꿈이 있었다. 그들은 디자이너였다. 정승준 씨는 대학 때 디자인 관련 행사를 도우면서 방한했던 이탈리아 디자이너를 돕다가 그 사람의 회사에 취직했고, 지금은 이탈리아에서 디자인 컨설팅 일을 한다. 오른쪽의 문서영 씨는 아직 학생. 전공이 디자인이다. 둘은 함께 창업해서 직접 만들고 싶은 제품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려면 문 씨는 일단 졸업해야 했고, 정 씨는 좀 더 경력을 쌓을 필요가 있었다. 돈도 필요했다. 하지만 회사를 세우지 않았다고 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말란 법은 없는 법이다. 요즘 세상에서는 더더욱.
두 사람은 인터넷을 뒤져봤다. 방법이 없을까. 있었다. 쿼키(Quirky)라는 회사였다. 쿼키는 일종의 공장대행업체다. 아마추어 발명가들이 아이디어를 올리면 이 아이디어를 심사해서 대량생산할 제품을 고른다. 일단 대량생산을 결정하고 난 뒤에는 제품 홍보와 마케팅, 판매까지 쿼키가 모두 대행해준다. 그리고나서 매출의 30%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에게 지불한다. 물론 아이디어에 대한 저작권은 최초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소유하게 된다. 아이디어에 대한 지적재산권은 아이디어 제출과 함께 쿼키에 양도하게 된다. 하지만 제품이 상용화되는데 실패할 경우 제품 개발에 기여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기여분에 해당하는 지적재산권을 쿼키로부터 다시 환수할 수 있다. 정승준 씨도 “쿼키의 지적재산권 정책이 가장 합리적이고 IP 보유자를 배려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만든 제품이 토템(TOTEM)이란 컵이다. 바로 이 제품.

아이디어는 간단했다. 컵은 쌓아놓으면 안쪽이 잘 마르지 않는다. 젖은 컵 내부에선 세균이 번식하기도 쉽다. 더운물로 설겆이를 마친 뒤에는 쌓인 컵이 식으면서 꽉 달라붙어 떼어내느라 고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토템은 컵에 돌기를 만든 게 전부다. 쌓아 놓으면 이 돌기에 걸려 바람이 통하기 때문에 잘 마르고, 쉽게 분리된다. 두 사람은 이 아이디어를 쿼키에 올렸고 다른 쿼키의 멤버들이 좋은 아이디어로 호평했다. 쿼키는 대량 생산을 결정했고, 이 컵은 이제 미국의 대형마트 타깃과 욕실용품 전문점 베드배스앤비욘드에서 판매될 예정이다. 가진 것 없는 젊은 디자이너 두 명이서 미국 대형 유통매장에 자신들의 제품을 전시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과거까지는. 이젠 아니다.

혁신은 실리콘밸리에서만 일어난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 혁신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다. 쿼키가 바로 그런 사례다. 이 회사가 문을 연 곳은 대륙 반대편 끝에 있는 뉴욕이었다. 창업자 벤 카우프만은 애플 제품 관련 액세서리를 만들어 판매하던 사람이었고, 맥월드 컨퍼런스에서 스스로 만든 제품이 좋은 평가를 받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생산이었다. 아이디어는 있는데, 제품을 가격경쟁력을 갖춘 수준으로 만들려면 10개, 100개 만드는 걸로는 부족했다. 적어도 1만 개 정도는 만들어야 판매 가능한 제품이 되기 때문이었다. 카우프만 스스로 겪던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을 찾다가 쿼키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만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가진 발명가라는 생각이었다.

정 씨와 문 씨만 성공 사례가 아니다. 유명한 디자인 학교인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의 제이크 지엔 씨는 ‘피봇파워’라는 멀티탭을 만들었다. 크기가 큰 어댑터를 멀티탭에 꽂으면 옆의 소켓까지 가려버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그 아이디어에 700여 명의 쿼키 회원들이 달려들었다. 이렇게 바꾸자, 저렇게 만들자는 의견이 줄을 이었고 색상과 적정 가격 책정까지 다양한 아이디어가 구체화됐다. 피봇파워는 지엔의 아이디어였지만 쿼키는 그에게 세상에서 온라인으로 모이는 집단지성을 이용한 거대한 팀을 만들어줬다.

이 사진 속 제품이 피봇파워다. 쿼키는 맨해튼 서부 첼시 지역의 옛 창고 건물을 개조해 본사로 사용하는데, 사무실 안에는 3D 프린터와 제품 사진 촬영용 스튜디오 등이 있다. 쉽게 시제품을 만들어 보고 그럴싸한 마케팅 자료까지 직접 제작하는 시스템이다.

이 과정에서 쿼키의 직원들은 대량생산을 결정한 제품을 놓고 아이디어 회의를 벌인다. 쿼키 회원들도 이 회의에 참석한다. 브레인스토밍을 벌이는 회의실에는 벽에 아이디어를 적은 종이가 빽빽하게 걸려 있다. 그리고 다른 회의실과는 다른 특징이 한 가지 있는데 바로 천정에 설치된 카메라다. 회의를 생중계해 세계의 쿼키 멤버들이 회의에 참여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렇게 회의에 참여한 멤버들이 내놓은 아이디어가 제품에 반영되면 각자는 제품에 대한 기여도를 평가받는다. 처음에 제품 아이디어를 내놓은 멤버들은 대개 절반 정도의 기여도를 인정받고 제품의 색상, 소재, 가격, 판매, 영업 등 다양한 기여를 하는 멤버들이 성공에 대한 기여도를 인정받는다. 1개 가격이 30달러인 피봇파워는 24만 개가 판매됐는데 이 과정에서 참여자들에게 배분된 액수가 28만 달러에 이른다. 절반 정도의 기여도를 인정받은 제이크 지엔 씨는 약 14만 달러를 이 제품 하나로 벌어들인 셈이다. 올해 쿼키가 목표로 하는 수익 배분액수는 100만 달러 정도, 약 300만 달러의 매출을 예상하는 셈이다.

쿼키가 첫 제품을 시장에 판매하기 시작한 게 2009년 8월의 일이다. 시작 당시 멤버는 8명. 지금 직원 수는 72명으로 늘어났고, 매주 2500개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올라오고 있다. 공장은 중국에 있고, 공급망 관리를 위해 홍콩에도 15명 정도의 직원들이 상주하는 사무실이 있다. 이들 스스로도 회사가 얼마나 성장할지 모른다. 혼자서 23개 해외 유통업체를 관리한다는 해외영업총괄 가렛 반데어붐 씨의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제품을 만드는 방식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 킥스타터 같은 모델도 훌륭하지만, 이런 모델은 최종 완성품이 나오지 않으면 아이디어를 내고 사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소송을 당할 수밖에 없다. 쿼키는 다르다. 책임과 부담은 최소화하면서도 꿈을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다.”

update: @gemong1 님의 지적 덕분에 지적재산권 관련 부분을 수정했습니다. 오류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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