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드프로세서

잠깐 머리식히고자 딴 소리 좀 하자면… 첫 책은 순전히 아래아한글만 갖고 썼다. 그것 밖에 몰라서…는 아니고, 고등학교 때 신경숙이 ‘워드프로세서로 글 쓰는 소설가’ 가운데 한 명으로 소개되는 TV 다큐멘터리를 봤던 적이 있다. 그 때 신경숙의 PC 화면에서 깜박이던 소프트웨어가 아래아한글이었다. 아, 저게 소설도 쓸 수 있는 프로그램이로구나. 그 때 난 정말 그렇게 믿고 말았다.
하지만 결과는 대략 난감.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대략 300매가 넘어가자 마구 버벅이기 시작했다. 아래아한글의 문제라기보다는 당시 내 노트북의 부족한 메모리(무려 512MB였음!) 탓이었겠지만, 어쨌든 너무 불안하고 느려서 결국 챕터별로 파일을 쪼갠 뒤 나중에 합친 기억이 난다.

두번째 책은 좀 제대로 써보자고 생각했다. 마침 맥을 쓰기 시작한 뒤였다. 페이지를 쓰려다가, 많은 사람들이 “맥에는 제대로 된 저작도구들이 많다”고 추천하던 터라 이러저런 새로운 툴을 모두 시험해 봤다. 그나마 가장 좋아했던 게 스토리밀(Story Mill)이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챕터 관리는 물론 등장인물과 배경 장소, 타임라인, 플롯에 따라 하나의 스토리를 여러 갈래에서 되짚어보고 관리할 수 있었다. 딱이었다.

그래서 이걸 쓰고 있는데, 너무 헤비한 프로그램이라 간단한 작업은 텍스트에디터에서 하곤 했다. 그렇게 붙여넣기를 몇 차례. 젠장. 한글관련 최적화가 안 된 프로그램이라 완성된 원고를 소프트웨어가 말아 잡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결국 막판에 다시 최종정리를 하는 바보같은 수고를 거쳐야 했다.

지금은 그냥 페이지를 쓴다. 그리고 의외로 놀라고 있는 중. 이거 꽤 잘 만든 워드프로세서였다. 버벅이지도 않고(물론 메모리는 0.5G 시절보다 16배 늘어난 8G가 됐다.) 한글 지원도 안정적이다. 챕터와 각주 기능도 괜찮고, 자동저장 기능도 나쁘지 않다. 필요하다면 PDF나 워드 문서로 바로 내보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돈 들일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막판에 생각이 꼬이니 스토리밀은 집어치우게 되고, 결국 벽에다 포스트잇을 붙이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돌아가게 되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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