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도95의 재림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8을 태블릿에서도 잘 돌아가는 윈도라고 부른다. 물론 PC에서도 잘 돌아간다. 이런 특징을 강조하려는 듯 윈도8의 겉모습은 윈도폰 OS와 판박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새로운 사용자환경(UI)을 ‘메트로’라고 부른다. 마이크로소프트 사람들은 윈도8이 지금까지의 윈도와는 다르다고 말한다. 정말로 혁명적이며, ‘PC의 새로운 진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강조한다.
사뭇 진지하지만, 기억할 게 있다. 윈도7을 선보이면서 스티브 발머는 “믿기지않을 정도로 쉽게 사람들이 커뮤니케이션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도와줄 파이프라인”이라고 소개했다. 물론 ‘PC의 새로운 진화’ 같은 표현보다는 좀 약하지만. 그렇다면 윈도 비스타를 보자. 발머는 비스타를 소개할 때에도 “다음 세대의 컴퓨팅을 이끌 완전히 새로운 혁신의 물결”이라며 “비스타 출시가 컴퓨터의 장기적 발전 과정에 극적인 충격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윈도XP라고 다를 리 없다. 당시엔 발머보다 빌 게이츠가 더 돋보였던 시기니까 게이츠의 코멘트를 보자. “오늘은 PC 사용자와 PC 산업 모두에 있어 위대한 날입니다. 새로운 윈도는 디지털 세계가 제공할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열어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윈도95 이후로 모든 윈도는 비슷했다.

윈도8은 처음으로 이 모든 걸 뒤바꿨다고 주장한다. 디자인이 완전히 변했고, 철학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수석프로그램매니저 차이타냐 사린은 윈도8 홍보를 위한 글로벌 투어 가운데 한국에 들러 윈도8을 소개했다. 기능들은 충분히 흥미로웠다. 시맨틱 줌(Semantic Zoom)이라고 불리는 내비게이션 기능은 단순히 화면을 확대 축소하는 게 아니었다. 주소록으로 쓰이는 ‘피플(People)’ 앱을 축소하면 친구들의 사진과 피드, 연락처 정보 대신 알파벳 머릿글자가 등장한다. 윈도8의 앱스토어인 윈도 스토어에서도 다양한 앱을 고르다가 줌아웃을 하면 시맨틱 줌이 개별 앱 대신 카테고리를 보여준다.

플립 포워드도 이런 식의 지능형 기능이다. 장문의 신문이나 잡지 기사가 실린 웹페이지는 로딩 속도의 문제 때문에 단일 페이지로 만들지 않고 여러 페이지로 분리해 두게 마련이다. 이런 페이지를 읽을 때 굳이 힘들게 ‘2’나 ‘Next’ 같은 작은 글씨를 클릭하는 대신 손으로 책장을 넘기듯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화면을 쓸어넘기면 윈도8이 알아서 웹페이지를 분석해 다음페이지를 클릭한 효과를 내준다.

멀티태스킹 기능도 다른 ‘태블릿’과 비교하면 꽤 괜찮다. ‘스냅'(Snap)이란 기능 덕분인데, 화면을 분할해서 한 화면에서 동시에 두 개의 앱을 작동시키기 때문이다. 메신저 창을 띄워놓고 웹서핑을 한다거나,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서 워드 작업을 하는 일이 가능하다. 물론 아이패드와 갤럭시탭, 넥서스7 같은 기기에선 아직 이런 일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사실 PC에선 두 개가 아니라 성능에 따라 수십 개의 창도 띄울 수 있다. 메트로 화면은 그래서 뭔가 이상하다. 이건 태블릿을 위한 OS인데도 스스로를 계속해서 PC OS라고 규정한다. 스냅이 등장할 때부터 뭔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윈도8은 과연 태블릿인가 PC인가. 이걸 왜 하나로 합쳐야만 했을까.

사린이 설명한 기능을 보면서 의문이 풀렸다. “윈도8 머신의 장점은 이걸 갖고 진짜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죠.” 그는 자랑스럽게 설명하면서 윈도8을 독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윈도8 시연기기였던 삼성 슬레이트 PC에 연결했다. 짜잔. 노트북이 됐다. 그리고는 ‘데스크톱’ 타일을 클릭했다. 짜잔. 바탕화면이 등장했다. 물론 왼쪽 아래에 ‘시작’ 버튼은 없었지만, 나머지는 윈도7과 다를 게 없었다.

아하. 마이크로소프트는 ‘진짜 일’을 하지 않는 ‘장난감’ 같은 메트로 화면을 윈도7 위에 덧씌운 것이었다. ‘윈도8=윈도7+윈도폰’이었다. 이건 어디서 많이 본 광경이다. ‘윈도95’ 같지 않은가. ‘MS-DOS’ 위에 덧씌워졌던 그 OS 말이다. 1995년의 윈도95가 그랬던 것처럼 윈도8에서도 ‘진짜 일’에 해당하는 시스템 업데이트 같은 중요한 작업은 메트로용 인터넷 익스플로러 앱으로는 할 수가 없다. 반드시 바탕화면을 띄워놓은 뒤 기존 윈도와 같은 방식으로 업데이트 소스에 접근해야만 업데이트가 가능했다. “윈도8의 장점은 기존의 유산을 새 OS에서도 모두 쓸 수 있다는 것이죠.” 사린의 이 설명은 많은 걸 시사했다. 윈도8은 2012년의 윈도95였다. DOS의 유산을 계승해야만 했던 누더기 OS처럼 윈도8도 PC의 유산을 버리지 못해 모바일로 못 가고 발목이 잡힌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앞으로 윈도폰8과 윈도8 사이의 공통점을 늘려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코드 베이스를 가능한 많이 공유해서 API를 최대한 함께 쓸 수 있도록 해보겠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니까 택할 수 있는 방향이라고 생각된다. 그들의 경쟁자들은 아직 PC와 모바일기기를 동일한 OS로 묶어서 완전히 모바일 시대로 향하겠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고 있으니까. 그런데 그 방향이 올바른 방향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새로운 방향을 정하고 그쪽으로 다가가면서도 여전히 기존의 유산과 단절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스스로 잘 알고 있겠지만, 그래도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할 게 있다. 1995년의 마이크로소프트는 PC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2012년 마이크로소프트는 모바일 시장에서 3%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 되기란 이제 예전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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