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의 철학, 익명성

다음에는 왜 소셜로그인이 없을까. 본인들이 써놓은 긴 답변을 읽고 나니 궁금증이 풀린다기보다 오히려 새로운 의문이 들었다. 과연 다음에게 인터넷이란 공간은 무엇을 뜻할까.
인터넷의 익명성은 굉장히 오래된 논란거리다. 익명성 때문에 인터넷이 쓰레기로 가득찬 공간이라는 주장부터 시작해서 익명성이 있어서 인터넷은 그야말로 직접 민주주의의 도구가 됐다는 주장까지 양 극단이 존재한다. 물론 이 두 가지 극단적인 주장은 모두 사실의 일면을 엄청나게 과장한 시각에 가깝다. 실제 인터넷은 이 극단의 중간 어딘가에 존재한다.

그런데 이 글을 읽어보면 다음은 익명성의 중요함에 무게를 싣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익명, 그리고 익명이 제공하는 자유로움과 해방감, 여기서 피어나는 다양한 논의와 토론 등. 좋은 얘기다.

그러다보니 예전에 광우병 사태와 PD수첩 수사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던 때, 수사기관이 다음의 한메일을 뒤져보자 다음은 (다른 인터넷 기업들과 비교해) 유독 강하게, 높은 톤으로 반발했다. 사실 수사기관은 일상적으로 인터넷 회사에 수사협조를 요청하고, 인터넷 기업들은 일상적으로 이런 요청에 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은 이런 식의 수사요청이 (구글로의) ‘사이버 망명’을 불러왔고 서비스 경쟁력이 훼손됐다고 얘기했다. 약간 의아했다. 다른 기업들과 다음은 왜 다를까. 다음이 정치적으로 정권과 반대편이라 그럴까? 그렇게 사업을 하면 안 될텐데 등등의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번 글을 보면서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게 됐다. 이 회사는 애초에 익명에 기반한 인터넷을 스스로의 철학적 근본으로 삼았던 회사였던 모양이다. 정치적인 고려가 중요한 게 아니라, 회사의 근본적인 가치가 수사기관에 의해 흔들리는데 거부감이 들었을 것 같다.

이렇게 한 번 보면 더 이해가 간다. 다음의 정반대에는 싸이월드가 있었다. 이 회사는 완전 실명제를 도입했다. 법적인 강제조항이 없었는을 때 알아서 앞서서 도입한 것이다. 완전실명 기반의 인터넷 문화를 만들어 보겠다고 했다. 역시 정치적 고려 때문은 아니었을 것 같다.

두 회사 사이의 차이는 몇 가지가 있었다. 다음은 미디어 회사를 꿈꿨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새로 등장하는 미디어는 논쟁을 불러 일으키는 게 그 중요한 역할이었다. 주류 미디어와 선명하게 대립해야 하고, 기존의 미디어가 다루지 못했던 영역을 다뤄야 한다. 논쟁이 끊임없이 만들어지려면 논쟁을 제공하는 사람들(기존에는 기자들이었지만, 다음의 경우 사용자들)에게 최대한의 자유가 주어져야 하고, 그 자유를 돕는 방안 가운데 하나는 익명성이다.(삐라에 바이라인 쓰는 경우란 없는 법이다.) 반면 싸이월드는 소셜네트워크 회사다. 사람들 사이의 끈끈한 관계가 경쟁력인 회사에서 익명성은 그다지 권장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익명의 사람과 친구를 맺고 싶어하지 않는다. 알고보니 마케터, 알고보니 잘 짜여진 컴퓨터 프로그램 따위와 친구를 맺을 수는 없는 법이니 결국 소셜네트워크란 실제 아는 사람과의 관계가 온라인으로 확장되는 방식일 수밖에 없다.

둘 사이에 옳고 그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방향과 철학의 차이이고, 주력 서비스의 차이일 뿐이다. 내가 궁금한 건 다음이 과연 지금같은 철학을 앞으로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다음이 지금의 철학을 지켜나가면서도 계속 성장할 수 있다면 이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구글플러스 같은 사실상의 실명성을 기반으로 하는 소셜네트워크가 온라인 세계를 점령해 가는 트렌드와 완전히 거꾸로 가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싸이월드는 실명성 때문에 망한 게 아니라 스스로 삽질해서 망했다.) 인터넷이 보편화되면 사람들은 신뢰할 만한 정보를 찾아 헤맨다. 그리고 이런 신뢰는 정체성에서 나온다. 물론 온라인으로만 쌓은 정체성이 성공적인 평판을 이뤄낸 경우(예를 들면 아고라의 ‘미네르바’라거나 해커집단 ‘어노니머스’ 같은)에는 굳이 신뢰를 실명이 주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날의 인터넷은 너무나 보편적이 돼 버렸기 때문에 아이스에이지4를 네살짜리 아들한테 보여줄만하느냐는 정보라거나, 서대문 김치찌개집이 정말 맛있느냐는 식의 정보도 인터넷을 통해 얻게 된다. 바로 이 순간, 미네르바 같은 권위가 아동 영화나 동네 식당에까지 촘촘하게 존재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실명에 기대게 된다. 결국 이런 이유 때문에 다음도 ‘요즘’에는 예외를 뒀다. 예외를 두면서도 아주 보수적으로 익명성을 관리하겠다는 원칙도 밝혔다. 한마디로 “믿을 수 없는 앱에게는 API를 제공할 수 없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다음은 여전히 익명성을 신봉한다.

회사 동료 한 명은 “페이스북 친구들 가운데 개봉 첫 주말 끝나기 전 두 명 이상이 추천하는 영화는 내 맘에 딱 들더라”고 말하곤 했다. 익명성에 기반한 시스템은 이런 식의 추천 시스템은 만들지 못한다. 다음은 지금까지 미디어기업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소셜이 없는 미디어가 과연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는 미디어일까. 그리고 익명성의 가치를 이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기업이 과연 제대로 소셜한 서비스를 구성할 수 있을까. 소중한 가치가 늘 성공하는 가치는 아니다. 다음은 지금 이 딜레마 앞에서 어떤 결론을 만들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들은 과연 변화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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