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터넷 실명제, 나의 제한적 본인확인제

당신은 인터넷 실명제라고 부르고 나는 제한적 본인확인제라고 부르는 그 제도. 제한적 본인확인제는 인터넷에서 타인을 상처입히고 심한 경우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주는 식의 부작용을 줄이고자 만든 제도였다. 딱히 옹호할 생각은 없다. 나도 이 제도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받은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정말 실효라곤 없는 바보같은 제도였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이 제도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은 한번쯤 짚어보고 싶다. 지금처럼 이 제도를 조롱하고, 비웃고, 그냥 흘려보내면 조만간 우리 앞에는 다시 당신이 인터넷 실명제라고 부르고야 말 엉뚱한 제도가 나타날 게 뻔하다.
제한적 본인확인제는 실명제가 아니다. 명백히 실명 사용 대신 가명으로 구성된 아이디(ID)의 사용을 용인하고, 이 ID가 ‘불법적인 글’을 남긴 경우에 제한해서 본인을 확인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말 그대로 제한적 본인확인제. 이걸 사실상의 실명제라고 부르든 말든 그건 당신 자유다. 하지만 ‘사실상의 실명제’란 완벽한 실명제는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렇게 실명제도 아니고 비실명제도 아닌 어정쩡한 제도가 태어나게 된 건 모두 알고 있듯 사회적 분위기 탓이었다. 연예인 X파일이 나돌면서 실명의 연예인에 대한 소문이 확대됐고 연예인들은 피해자가 됐다. 아이를 잃은 임수경 의원에 대한 기사에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악성댓글을 다는 패륜적인 인간들이 나타나 사회적 공분을 자아냈다. 개똥녀 사건을 보면 화는 났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그녀에게 평생 겪기 힘들 마녀사냥 같은 공격을 퍼부을 권리를 갖고 있는 건 아니라는 자성도 생겼다. 예전에는 없던 문제가 인터넷 때문에 태어났고, 2005년과 2006년, 이런 문제가 한국 사회의 사회 문제가 됐을 땐 해외에서 네이버 지식인을 배우려고 공부해 가고, 싸이월드가 미국 IT 잡지에 커버스토리로 소개되던 시절이었다. 한국이 인터넷 활용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는 얘기다.

극심한 부작용 때문에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사회 여론이 커졌고, 늘 그렇듯 잘못된 선택이 이어졌다. “정부는 뭐하고 있느냐”며 대책 마련을 촉구한 것이다. 게다가 2007년에는 대선도 예상돼 있었다. 어떤 유언비어가 선거 판국을 어지럽힐지 정치권에서도 두려워 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결국 행정부는 노무현 정부였던 시절의 정보통신부와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앞장서서 제한적 본인확인제를 도입했다. 이 어정쩡한 제도는 그렇게 ‘빠른 해결책’을 정부에게 기대했던 한국적 관행이 만들어낸 한국식 부실공사로 쌓아올린 부실 제도였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 사회 문제가 생겼고, 한국 사회에는 이걸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때까지 기다릴만한 인내심도, 사회적 합의를 쌓아올릴만한 상호 신뢰나 공화주의적 합의의 정신도 없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다른 입장을 가졌던 여야가 합의해서 제한적 본인확인제가 포함된 개정된 정보통신망법을 통과시켰고 2007년 이 제도가 실행된다.

제한적 본인확인제란 그 당시 한국 사회가 해낼 수 있던 ‘한계이자 최선’이었다. 멍청한 노무현 탓도, 이명박의 음모도, 새누리당의 꼬장도, 민주당의 몽니도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만들어낸 한계이자 최선 말이다.

오늘 헌재의 결정을 보면 본인확인제가 위헌 판결을 받은 건 온라인 상의 개인에게 강제로 이름표를 달게 하는 실명제였기 때문이 아니다. 본인확인제의 입법 취지는 사회의 공익을 위한 어쩔 수 없는 경우라 판단될 때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한이 있어도 공익을 위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이 제도는 그렇게 공익을 위하지 못했다. 제도가 실행된 뒤에도 최진실 씨는 악성 댓글 때문에 자살했고, 완전 실명 기반의 인터넷 게시판에도 악성 댓글은 여전히 흘러 넘쳐 실효성 논란은 지속됐다. 단속 대상인 악플러들은 멀쩡한데, 정치적 의견을 나타내고 싶어하는 개인들만 처벌을 두려워하면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됐다 느꼈다. 인터넷 기업들은 한국에만 존재하는 이 제도 때문에 역차별을 받는다고 난리였다. 공익을 다하지 못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니 위헌인 것이었다. 이름표를 다는 실명제여서가 아니라.

그런데도 이를 굳이 ‘인터넷 실명제’라고 부르고 싶어하는 건 ‘이름표 다는 제도’를 사람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나도 싫다. coolpint라고 아이디를 만들고 싶은데, 꼭 ‘김상훈’으로 달라고 나라가 강제하면 누가 좋겠나! 우리는 개성을 가진 민주국가의 시민이지 감옥의 죄수가 아니다. 그러니 이런 보통 시민들까지 자기 편으로 늘리고 싶은 정치적 의도를 가진 사람들은 이 제도를 인터넷 실명제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는 팩트의 왜곡이다. 그리고나서 이들은 ‘한국 사회의 한계’가 마치 누군가의 정치적 의도였던 것처럼 몰아붙인다. 누구의 의도인가? 죽은 노무현 대통령의 의도?

좀 더 지켜보자. 우리가 제한적 본인확인제를 굳이 인터넷 실명제라고 불러대면서 이 제도가 사라졌으니 인터넷에 자유가 돌아왔다고 외쳐봐야 결국 바뀐 건 없을 게 뻔하다. 인터넷에 익명이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이 실명확인을 거치지 않아도 당신은 인터넷에 접속할 때마다 접속 기록을 남긴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집에서 통신사에게 어디 사는 누구인지를 다 밝힌 채 정해진 IP에 접속한다. 변동IP라고? 천만에. 통신사가 맘대로 바꿀 수 있어서 변동이지, 통신사 사정이 없는 한 대부분은 며칠이고 몇달이고 그 IP를 고정적으로 이용한다. 그리고 통신사는 지금 어느 IP에 누가 접속해 있는지 다 파악한 상태다. 와이파이를 썼다고? 통신사에 아이디나 이름, 주민번호를 알려주시지 않았던가. 보안 없이 열려있는 사설AP를 쓰셨다고? 요즘 그런 AP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보안 문제 탓이다. 이미 해커들이 일부러 먹잇감아 걸려라, 기다리면서 설치해 둔 그런 사설AP가 수없이 퍼져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헌재도 인터넷 주소만 추적해도 본인확인제가 거둘 수 있는 효과를 충분히 거둘 수 있다며 본인확인제를 없애라고 한 것 아닌가.

생각해 보자. 실명제가 있다가 사라져서 한국이 더 자유롭게 민주화될까? 여러분의 인터넷 신원이 완전한 익명에 숨을 수 있을까? 조만간 그렇게 바뀔 거라고 순진하게 생각하시나? 우리는 지금 우리가 최선을 다해 만들어냈던 한 시대의 제도를 떠나보낸 것이지 실명제라는 악법에 맞서 승리를 거둔 게 아니다. 지금 우리가 도대체 우리는 5, 6년 전에 왜 지금 수준의 논의를 사회적으로 하지 못했던 걸까 깨닫지 못한다면, 왜 사람들은 제한적 본인확인제 같은 제도가 말도 안 된다는 전문가들의 얘기 따위는 당시에 듣지도 않았던 건지 깨닫지 못한다면, 왜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설득 능력은 그다지도 떨어져서 일반인들을 설득하지 못하는지 되돌아보지 않는다면, 그러면 지금보다 더 어이없는 제도가 나와도 그걸 막을 능력 따윈 없다. 어차피 ‘당연한 일’이라는 본인확인제 폐지도 5년이 지나서 헌재가 위헌이라 말씀해주신 덕분에 가능했던 것 아닌가. 정당 정치도, 정부 입법도, 시민 청원도 아닌 높으신 헌재 재판관님 몇 분의 판단 덕분에.

우리가 이 지경까지 온 건 들어야 하고, 합의해야만 하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보수의 음모’ ‘진보의 모략’으로 치부했던 탓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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