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네이버가 생각하는 소셜네트워크

그녀는 싸이월드를 만든 사람이라고 했다. 한국인 3000만 명이 쓰던, 그러니까 인터넷을 하는 한국 사람이라면 거의 다 쓰던 싸이월드가 그 사람 손에서 만들어졌다. 이람. 네이버서비스2본부장. 돈도 없을 때 열정만 갖고 열심히 키웠던 회사가 SK텔레콤에 팔린 뒤로는 NHN으로 자리를 옮겼다. NHN에서는 다음이 카페가 강하니 네이버에서도 카페를 키워야 한다는 당연한 얘기가 나오고 있었고, 그러자면 커뮤니티에 뭔가 성공 사례가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왔고, 인터넷 커뮤니티하면 싸이월드였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이람이 그곳으로 갔고, 네이버 카페는 이후 다음 카페랑 경쟁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참, 하나 더. 이람은 카페와는 별도로 네이버 블로그도 만들었다.
“저는 그 시절에 이글루스를 썼는데요? 그게 더 먼저 나온 것 아니었어요?”

이 질문에 그녀는 네이버 블로그가 먼저라고 정정해 줬다. 비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 뭐하느냐, 이글루스가 더 좋아서 그걸 썼다, 게다가 지금도 네이버 블로그는 뭐랄까, 쿨(cool)하지 않고 아줌마들이나 쓰는 서비스라는 인식을 준다…

당연하겠지만, 이람은 자기가 만든 서비스에 대해 “아줌마 같다고 말한다니 가슴 아프다”고 했다. 그래도 그게 돌려 말하면 쓰기 쉽다는 뜻 아니겠냐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와서 계속 생각해 봤다. 쉬운 서비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서비스. 말은 좋은데, 뭐가 쉬운 걸까?

지금 생각해 보면 중요한 건 맥락이다. 이람은 개발자가 아니다. 사회과학도였고, 잡지사 일을 했으며, 잡지를 만들어서는 도저히 먹고 살 수가 없어 동아닷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인터넷 서비스 기획을 시작했다. PC통신을 썼고, 초창기 게시판형 서비스에 익숙했으며, 새 글이 올라오면 댓글이 달린다거나, 글발이 좋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논쟁이 벌어지는 형식의 구조를 이해했고 확대재생산시켰다.

이후 그녀가 성공시킨 서비스를 보자.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게시판 위주의 PC통신 문화에서 막 ‘그림을 단 게시판’으로 사람들이 옮겨오던 2000년대 초에 ‘쿨한 그림'(일본에서 유행하고 젊은 여성들이 일찌감치 받아들였던 픽셀아트)을 단 게시판으로 대박을 쳤다. 차이는 우리 모두 보던 게시판에서 ‘내 게시판’을 만들었다는 점 정도. 이람은 “미니홈피가 ‘나’라면 나는 옷을 입고, 옷은 사입는 거니까, 옷을 팔자”는 생각으로 만든 게 미니홈피였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돈을 벌고 싶은데 돈이 안 벌려서 굶을 지경에 이르니 뭐라도 팔 수 없을까 생각하다 만든 게 미니홈피였던 셈이다. 하지만 그 개념이 모든 걸 갈랐다. ‘우리’밖에 없던, 그것도 시솝이라는 권력의 정점 밑에 부시솝들이 각 게시판들을 군대식으로 관할하던 PC통신 시절의 잔재가 거기서 깨어졌다. 좀 다른 얘길 하자면, 미니홈피의 성공은 하나회 척결과 맞먹는 문화적 대사건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이건 정말 기존과는 다른 서비스였는데 기존 서비스보다 훨씬 쿨했다. 쓰기는 쉬우면서. 쉽다는 건 그런 거였다. 쿨한데 쉬운.

네이버 블로그의 가장 큰 장점은(본인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스마트에디터다. 내가 아줌마들이나 쓰는 것 같다고 불렀던 바로 그 지점 말이다. 누구나 쉽게 사진 찍어 붙이고 디자인할 수 있는 기능. 그 덕분에 정말 수많은 아줌마들이 주방용품, 요리법, 육아용품을 리뷰하거나, 홍보하거나, 영업하면서 네이버 블로그를 즐긴다. 그리고 서로 방문하고 댓글 달고 욕하고 차단했다 다시 보면서 웃고 울고 즐긴다. 계속 즐긴다. 싸이월드 사람들은 자기 서비스 사용자들이 “스물여섯살이 되면 졸업한다”고 말한다. 소녀들은 자라서 아줌마가 되고, 아줌마들은 싸이월드에서 노는 대신 네이버로 옮겨가 논다.

문학소녀 기획자는 자라서 초보 아줌마가 됐고, 본부장이 된 지금은 학부형이 됐다. 그리고 ‘밴드’를 만들었다.

도대체 이 서비스는 뭘까. 워낙 새 서비스가 많이 나오는 시대라서 난 요즘 어지간한 신규 서비스엔 관심도 없다. 흥미도 안 생긴다. 차별화됐다고 얘기해봐야 그 차별화를 애써 이해하기가 귀찮기만 하다. 그런데 밴드에는 관심이 생겼다. 사실 서비스가 좋아보여서였다기보다는, 이건 ‘카페를 말아먹겠다는 생각 아니면 안 만들 것 같은 서비스’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카페 앱을 더 잘 만들어서 모바일 카페를 좀 더 키워보지, 이게 무슨 카니발라이제이션인가. 앱을 다운로드 받은 뒤엔 더 황당했다. PC에선 쓸 수도 없고, 밴드를 만들었더니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글쓰고 사진 올리는게 고작인데, 아니, 이봐요, 이런 거 하는 건 인스타그램과 카카오스토리가 있잖아.

오늘 기사에도 썼지만 밴드는 사실 그래서 만든 서비스라는 게 이람의 설명이었다.

인터뷰를 시작했을 때 그녀가 처음 보여준 게 바로 이 슬라이드였다. 이건 구글 출신(지금은 페이스북)으로 구글 플러스의 ‘써클’ 기능에 큰 영향을 줬던 폴 애덤스가 ‘현실의 소셜네트워크'(real life social network)를 설명하는 그림이다. 온라인에서 그냥 통으로 관리되는 사람들과의 소셜네트워크와는 달리 현실에선 내 주위 사람들이 그룹별로 묶여있게 마련이라는. 결국 구글은 이런 방식을 도입해 구글플러스에 써클이라는 형태로 친구들을 구분하는 기능을 만들었고, 애덤스가 페이스북으로 옮긴 뒤에는 페이스북에도 그룹이라는 비슷한 형태가 도입됐다.(이른바 ‘친친소팅’, 즉 친한 친구 분류하기가 이래서 가능해졌다.) 네이버에서도 뭔가 만들면 이런 걸 만들고 싶었다는데, 결정적인 문제는 페이스북 그룹이든, 구글플러스 써클이든 간에 처음 쓰는 사용자들은 뭔가 쓰기가 복잡하고 어렵다는 데 있다.

그래서 밴드(서비스)에선 그냥 밴드(서비스 내의 모임)를 만들면 그 밴드끼리만 묶이게 해놨다. 밴드앱 내에서도, 네이버에서도, 절대로 밴드 사용자가 어떤 밴드에 가입돼 있는지 검색되지 않는다. 끼리끼리 모이고, 끼리끼리 얘기하다가 그 밴드 돌아가는 분위기가 맘에 안 들면 나오면 그만이다. 물론 일단 나오고 나면 다시 초대받을 때까진 한 번 나온 밴드를 되찾아 갈 수도 없다. 검색이 안 되니까. 이거 좀 무서운 것 같지만, 사실 현실 속 관계가 그런 게다. 그러니까 카페와는 다르다. 카페는 검색돼야 하고, 카페 속 지식이 곧 카페의 존재 이유다. 밴드는 아니다. 검색되면 안 되고, 밴드 속 정보는 그 집단만 공유해야 하는 약한 비밀에 해당한다.

허술해 보일 지경이었던 밴드의 기능도 이람의 설명에 따르면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었다. 처음 쓰는 사람들은 도대체 이 서비스가 왜 만들어진 것인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해야 했는데, 그렇게 하려면 기능이 많은 것보다 적은 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밴드를 처음 기획했을 때 목표로 삼은 건 대학생들이 조모임 할 때 쓰는 서비스였다고 했다. 그래서 사진 올리고, 약속 잡고, 전화번호 공유하고, 글 쓰고 채팅하는데에만 집중했다는 얘기다. 조모임이 타깃이었기 때문에 곧 추가할 기능도 N드라이브하고 연동해서 파일을 주고받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놓고보니 활용처가 의외로 다양했다. 이람 스스로 ‘1학년5반’, ‘사사과91학번’, ‘Exconnect’(NHN 임원모임) 등 서로 섞
면 어색할 모임들을 만들어 따로 가입해 있었다. 이외에도 잘 돌아가는 모임으로 교회의 지역모임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알고 지내면 괜찮지만, 페이스북 피드에 뜨는 건 싫은 사람과의 느슨한 관계도, 날마다 할 말이 무지 많지만 이 사람과의 얘기가 다른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공개되는 건 싫은 끈끈한 관계도 따로따로 잘 관리되는 셈이다.

이 글의 제목은 네이버가 생각하는 소셜네트워크라고 달았지만, 사실 ‘밴드’는 ‘이람이 생각하는 소셜네트워크’다. 성공할까? 나도 모른다. 나로서야 그냥 페이스북만 쓰는 세상이 더 편하고 좋은 것 같긴 한데, 생각해보면 그건 네이버 블로그 초창기를 볼 때도 내가 했던 생각이다. 왜 네이버는 선진적인 워드프레스나 무버블타입 같은 걸 안 만들고 저렇게 후진 네이버 블로그를 만드느냐고. 그렇게 주장하던 내가 어느날 워드프레스로 회사 홍보 블로그를 만들었다가 그 콘텐츠를 함께 관리할 우리 팀원들에게 된통 잔소리를 들었다. 에디터 쓰기가 너무 힘들어서 블로그를 새로 배우는 것 같다는 얘기였다. 네이버 카페를 보면서도 저게 무슨 정보의 보고냐고 비웃기 일쑤지만, 사실 그렇게 비웃는 집단은 전체 인터넷 사용자 가운데 극소수다.(아마도 이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여러분?)

홈페이지와 블로그 그리고 현재의 페이스북 페이지와 타임라인 등으로 사용자를 교육시키며 진화했던 미국 인터넷 문화는 한국 인터넷 문화와는 많이 다르다. 미국에선 Geek들이 직접 혼자서 모든 걸 다 하면서 인터넷에 접근하기 시작했다가 가입형 서비스들이 확대되기 시작했고, 결국 대부분의 미국인이 가입하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PC통신 게시판부터 시작해서 포털 게시판, 카페 게시판, 미니홈피 게시판, 블로그 게시판의 순서로 시작부터 지금까지 모두가 함께 갔다. 인터넷 사용자가 증가하긴 했지만 핵심사용자들은 변함없이 모든 서비스를 관통하는 일관된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다. 게시판과 댓글 문화.

그리고 이람은 지금 모바일 게시판을 만든 것이다.

어떻게 될까. 그녀의 꿈처럼 한국의 모바일 게시판이 세계의 게시판으로 확대될까. 아니면 타임라인과 써클의 모바일 공략이 한국까지 접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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