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크 도적 상원의원

update: 여러분. 콜린 라코위츠 메인주 25구역 주 상원의원 후보가 당당히 당선자가 됐습니다. 록타! 라코위츠 상원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파이널 판타지의 승리의 팡파레 음악을 게이머 지지자들과 나누겠다며 올려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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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정말 가슴이 답답한 일.

트위터에서 @imseong님이 전한 트윗 덕분에 보게 됐는데,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런 일이다. 미국 메인 주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콜린 라코위츠라는 48세 여성은 처음엔 그저 미국 한 지역의 주 상원의원 후보일 뿐이었다. 문제는 공화당이 묘한 네거티브 캠페인을 시작해서였는데, 공화당이 발견한 라코위츠의 약점은 바로 그녀가 게임을 한다는 점이다.

콜린은 와우라고 흔히 부르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팬인데, 가상 세계에선 산티아가(Santiaga)라는 이름의 오크족 도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공화당은 바로 이 점을 문제삼았다. 콜린이 게임에 빠진 더러운 이중인격자인 양 취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래 화면) 특히 그녀의 코멘트들이 문제였다. 콜린은 “나는 독살하고, 칼로 찌르는 일을 사랑해요!”라거나, “감옥에 안가도 살인이 가능하죠” 등의 온라인 코멘트를 남겼다. 그리고 이게 공격의 빌미가 됐다.

WoW

메인주 공화당의 네거티브 캠페인은 이렇게 끝난다. “우리는 ‘우리의 세계’에 사는 상원의원을 원합니다. ‘콜린의 세계’ 말고요.”

자 그럼 콜린의 세계에 살았던 내 과거도 같이 밝혀보자. 수십년을 헬스케어 업계에서 일하는 성실한 납세자로 살아오고, 아이들의 엄마이며 한 남자의 아내인 평범한 여성이 밤이 되면 빠져 든다는 그 살육과 폭력의 가상세계에 나도 함께 존재했으니까 말이다. 아제로스에서의 내 이름은 오리가미. 오크 사냥꾼이고 지금은 85레벨이다. 콜린처럼 수백 시간 이상을 아제로스에서 지냈고, ‘레벨업’을 하겠다는 이유만으로 길을 지나다니는 죄없는 동물들을 향해 총을 쏘고, 칼로 찌르고, 폭약을 매설했다. 때로는 강인한 야수를 꼬드겨 내 애완동물로 길들이고서 제 동족을 학살하게 시키기도 했다. 아제로스 대륙을 돌면서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는 전설의 동물들을 수집해 죄책감 없이 내 우리에 가둬 놓았고, 나와 다른 말을 한다는 이유로 대립했던 얼라이언스 진영의 인간과 드워프들을 만나면 이유없이 총을 쏘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나처럼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현재 지구상에 1000만 명이다. 한 때 이 땅을 거쳐갔던 사람들의 숫자는 훨씬 더 된다. 제시카 심슨, 카메론 디아즈, 빈 디젤, 밀라 쿠니스 등등도 와우를 하고, 이소라와 데프콘도 와우를 한다.

콜린이 와우를 시작한 건 4년 전 ‘리치왕의 분노’ 확장팩이 나왔던 때였다. 그녀는 친구들과 함께 모여서 같은 목표를 이뤄간다는 게 재미있었다고 한다. 물론 와우 이전에도 여러 가지 비디오 게임을 했었고, 그게 문제가 되는 일이라는 생각은 당연히 없었다고 했다. 인용한 기사에 따르면 콜린은 “실제로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은 게이머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이 사실과 다르다는 걸 깨닫질 못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게임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게이머들이 몽땅 방구석에 쳐박혀 하루종일 모니터만 들여다보는 외톨이 정도인 줄 안다는 것이다. 콜린은 “내가 게임을 할 땐 대학교수나 변호사 같은 사람들도 나와 함께 게임을 해요. 어른들과 함께 게임을 하는 것이죠. 평균적인 나이는 30대 중반 쯤 되리라 생각해요.”라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콜린이 올해 1월 이후로는 만렙의 오크 도적 산티아가로서 아제로스에 접속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에 관심이 갔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녀가 아제로스에 갈 수 없던 이유는 딱 하나였다. 상원의원이 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했고, 이 일 때문에 바빴으며, 바빴기 때문에 취미활동부터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참, 그녀의 취미는 아제로스에서 단검을 적의 등에 꽂는 일 말고도 한 가지가 더 있었는데 그게 바로 뜨개질이다. 물론 올해 1월부터 그녀의 손에는 뜨개질 실과 바늘이 들릴 시간 또한 거의 없었다. 그러니까 나도 똑같았다. 게임은 시작하면 늘 중독되는 그런 마약이 아니다. 일이 있으면 잠시 미뤄둬야 하는 취미일 뿐.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전국적인 관심을 끌 일이 없던 메인 주의 상원의원 선거가 갑자기 전국 단위의 관심을 끌더니, 급기야 세계적인 관심까지 끌게 된 것이다. 심지어 한국의 나까지 이 뉴스를 봤으니 말이다. NBC가 그녀를 취재하고(링크한 기사가 NBC의 게임 담당기자의 기사다.) 그 뒤에는 CNN에서 생방송으로 그녀의 인터뷰를 한 뒤 세계로 내보냈다. 전 세계의 와우팬들이 흥분했고, 그녀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찾아가 격려의 메시지를 남기기 시작했다. 심지어 공화당 지지자조차 “정치적 견해는 다를지 모르지만 나도 내 동료 호드가 이런 식으로 대접받는 건 참을 수 없다”며 콜린을 지지했다. 애초에 공화당의 네거티브 캠페인만 없었다면 세계적인 이슈가 될리가 없는 일이었다.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이런 식의 어이없는 일은 늘 현실에서 일어난다. 이건 초창기에 록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치 악마의 음악을 듣는 사람 취급하던 시선과 크게 다를 바 없다. 10년만 지나도 얼마나 우스운 일이었는지 깨닫게 되겠지만, 참 한심하다.

그러니까, 게임을 도끼눈뜨고 쳐다보시는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여러분의 시대에 여러분의 부모께서 이상한 음악을 듣지 말라고 강요하던 그 일을 지금 여러분의 자녀에게 똑같이 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것도 전세계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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