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지배하는 가혹한 미래

Google_1984

“If Google did not act we faced a draconian future. A future where one man, one company, one device, one carrier would be our only choice. That’s a future we don’t want.” – Vic Gundotra, SVP of Google

난 이 슬라이드를 볼 때마다 배신감을 느낀다. 약 2년 반 정도가 흘렀다. 2010년 5월에 열렸던 ‘구글 I/O’ 행사에서 빅 군도트라 수석부회장은 누가 봐도 애플(‘1984년’이라는 매킨토시 광고로 유명한)을 연상시키는 이 사진을 화면 가득 띄워놓은 채 세계의 안드로이드 팬들을 선동했다. “만약 구글이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가혹한 미래를 맞게 될 겁니다. 한 사람, 한 기업, 하나의 디바이스, 하나의 통신사만이 우리의 유일한 선택이 되는 시대 말입니다. 그건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아닙니다.”

오늘 아주 매끈한 구글맵을 새 아이폰5에 설치했다. 해외로 출장이나 여행을 떠날 때마다 엉터리 애플맵으로 길을 잃을까봐 조마조마했던 마음을 다시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2년 반이 흐르는 동안 스마트폰의 세계에서 구글은 ‘선택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기업, 하나의 서비스’가 돼 버렸다. 그건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아니었을텐데.

하지만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구글은 앙시앙 레짐을 대혁명 이후의 자유 시민들의 삶에 다시 불러들였다. 2009년 11월 이후 한국은 엄청난 속도로 변했다. 혁명적인 정책도 없었고, 혁명적인 혁신기술도 등장하지 않았으며, 혁명적인 사상도 유행하지 않았다. 혁명은 그저 아이폰이라는 기계 하나였다. 그 이전까지는 세 개의 통신사가 혁신을 위한 경쟁도, 값을 낮추기 위한 경쟁도 멈춘 채 과점 상태에 머물러 통신시장을 정체시켰다. 하지만 아이폰 이후 모든 게 뿌리부터 흔들렸다. 그 이전까지는 외국 기업이 한국에서 사실상 장사를 못하게 만들 수준이었던 비관세 장벽에 가까운 각종 규제(예를 들어 WIPI)들이 존재했지만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사라졌다. 그 이전까지는 통신사 만큼이나 독과점 상태였던 무소불위의 한국 휴대전화 제조업체들도 아이폰 이후 완전히 새로운 변화에 직면해 혼란에 몸부림쳤다.

엄청난 혼란기였고 구체제의 권력자들은 불안에 떨었다. 한번도 왕좌를 놓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절대군주 수준의 권력을 갖고 있던 통신업계의 왕 SK텔레콤은 실속없는 봉건 영주인줄로만 알았던 KT가 아이폰으로 반란군의 대열 앞에 서자 이를 진압하기 위해 피를 흘려야 했다. 전장에서는 왕이 예상치 못한 마케팅비용 3000억 원을 2010년 한해에만 추가로 쏟아부었다는 소문이 횡행했다. 제조업계의 절대군주 삼성전자도 두려움 앞에서 혼란에 빠져든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세상은 한번에 바뀌지 않았다. 앙시앙 레짐이 흔들리고 혁명이 유럽으로 퍼져나가려고 할 때엔 서로 앙숙인 부르봉 왕가와 합스부르크 왕가라 할지라도 손을 잡게 마련이다. 구 체제의 왕들은 구글이라는 적의 적과 동맹을 맺었고, 몇 년 전만 해도 도무지 어울리는 부분이라고는 하나도 없어보였던 두 세력은 이제 동맹군이 된다. 동맹의 신무기 기술을 받아들인 삼성전자는 안드로이드폰을 만들었고, 동맹의 군사 운용법을 배운 SK텔레콤은 T스토어를 만들었다.

3년 전, 한국은 햅틱과 아몰레드가 시장을 지배했고, 통신사가 요청했다는 이유로 모든 휴대전화에 와이파이조차 달 수 없던 나라였다. 그 이후 6개월 동안 코뮌의 시대가 잠시 왔고, 이후 예고된 반동이 시작됐다. 2년 반이 지났다. 한국은 이제 갤럭시가 시장을 지배하고, 통신사의 요청에 따라 망중립성 같은 소리는 집어치운 나라가 됐다. 절대군주 삼성전자의 위세는 더 강해져서 모토로라와 HTC 같은 영주들은 영지를 빼앗긴 채 쫓겨나기 시작했고, SK텔레콤은 자신이 공급하는 동영상과 콘텐츠는 통신요금에 합산되지 않고, 자신과 제휴하지 않은 독립업체의 동영상과 콘텐츠에만 통신요금을 과금하는 통신망 편향적인 독특한 시장을 만들어냈다. 정확히 3년 전과 똑같이.

빅 군도트라가 얘기하던 가혹한 미래는 이제  결국 그 구글의 손에 의해 도래하기 시작한 게 아닐까. 기대할 수 있는 건 오직 구글의 선의 뿐이란 점에서 지금 우리의 처지는 군주와 귀족들의 선의만을 기대하던 앙시앙 레짐의 시민들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게다가 구글은 그동안 앙시앙 레짐을 지원하던 비용을 다시 회수하기 시작했다. 통신사에게선 앱 판매 수수료를 제값에 받아가기 시작했고, 삼성전자와의 독점적 밀월도 끝내고 다른 영주들과도 동맹을 맺기 시작했다. 이건 뭘 뜻할까? 구글의 선의? 내게는 이제 그들이 다시 왕과 귀족 사이의 게임을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패배자를 앞에 놓고 전리품을 챙기는 시기 말이다.

그러니 내 과거의 농담은 완전히 틀린 것 같다. 애플 제국과 안드로이드 동맹군 사이의 스타워즈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 옆을 지나간 건 혁명이었다. 시민의 편을 든 귀족과 앙시앙 레짐 사이의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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