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기술

지난 주말 ‘호빗’을 봤다. 지난번 HFR 3D 영화 취재도 했고, 새로운 기술과 기존 기술의 비교 체험도 했던 덕분에 기대가 컸다. 특히 저예산으로 촬영한 국내 독립영화와 달리 호빗은 헐리웃 자본이 들어간 제대로 된 HFR 3D 장편영화라 더더욱 기대했다. 기대하는 게 당연했다. 표 값은 무려 1만7000원. 아내와 둘이 표를 끊으니 3만4000원을 냈다. 적은 돈이 아니다. 돈 때문에라도 더더더욱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에겐 이 비싼 표 값에 대해 “미들어스로 들어갔다 나오는 3시간짜리 관광 상품이란 걸 감안하면 그렇게 비싼 게 아니다. 덤으로 뉴질랜드의 자연도 함께 보여주잖냐”고 설득했다.
보고 나온 뒤 아내의 반응은 “머리가 아프다”였다. 3시간에 이르는 러닝타임 때문에 끼니 때를 거른 탓도 있었겠지만, 이 관광상품은 멀미가 심하게 나는 차에 태워서 미들어스를 돌아다니는 상품이었던 셈이다. 난 딱히 부작용은 느끼지 못했는데, 안 그래도 평생을 초당 24프레임 화면에 익숙해져 살아온 우리의 눈이 두 배의 프레임(호빗은 48fps)을 소화하는 건 사람에 따라 쉽지 않으리라는 경고가 나오던 상태였다. 아내가 그랬다. 나는 개인적으로 좋았다. 호빗은 3D였지만 3D같지 않았다. 액션이 넘쳐나고, 카메라워크도 현란했다. 튀는 부분도, 어색함도 없었다. 자연광 아래에서 촬영된 장면들은 너무 사실적이라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보일 정도였다.(이 때문에 HFR이 필름 분위기의 영화 화면을 TV 방송처럼 망친다는 비판도 있다. 디지털카메라가 처음 나왔을 때 필름 느낌 안 난다던 것과 똑같은 비판이다.) 하지만 과연 이것 때문에 3만4000원을 낼 필요가 있는 걸까?

CES가 개막했다. 척 보기에도 주력 상품은 단연 울트라고화질TV(UHD)다. 일본 가전업체들은 저마다 4K 해상도라면서 익숙한 FullHD 화질을 2배 늘린 3840×2160 해상도 TV를 들고 나왔다. 그런데, 나 이거 2010년 CES에서도 봤다. 소니와 파나소닉이 저마다 4K TV라고 들고 나온 그 울트라고화질 말이다. 물론 이번에는 OLED로 만들었다고 한다. 얇게 만들고, 가볍게 만들고, 반응속도도 빠르고 색감도 생생해 자기들이 ‘꿈의 디스플레이’라고 주장하는 그 OLED 말이다.

한 때는 3D TV가 대세였다. 너도나도 집에서도 입체영상을 즐기라면서 영화 아바타를 틀어댔다. 그 다음엔 스마트TV가 나왔다. 인터넷을 즐기고, 앱도 다운받아 게임도 하라는 얘기였다. 돌고 돌아 다시 초고화질 TV다. 솔직히 해마다 TV 트렌드가 뭐였는지도 구분도 안 간다. 내 TV는 별로 넓지도 않은 안방에 놓인 40인치 HD TV다. 그것도 Full HD가 아닌 해상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1280×768 HD급 TV지만 안경을 끼고 봐도 격자를 잘 알아보기가 힘들다. 내 눈이 나쁜 탓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눈이 화면과 멀리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50인치 크기의 TV에 4K 해상도라면, 과연 내 눈이 그걸 알아보기는 할까?

올해 CES에선 역시 ‘꿈의 디스플레이’라는 OLED도 열심히 전시될 모양이다. 값은 여전히 비싸고, 상용 제품은 여전히 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 OLED가 사실상 유일하게 상용화된 분야인 스마트폰에서도 아직 OLED의 화질 때문에 스마트폰을 고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두께를 줄이는 데에도 큰 영향을 주진 않았다. 그 얇은 아이폰5조차 아직 LCD를 쓰면서 두께를 줄인다. 언젠가 OLED가 블루투스처럼 충분히 값이 떨어져서 실제로 여기저기 쓰일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는 소비자의 눈에는 그렇게 큰 차이를 주지는 못할 것 같다.

그래서 HFR로 촬영된 호빗에 3만4000원을 주기가 아까웠던 느낌을 TV를 보면서 다시 받게 된다. 과연 수백만원씩 써가면서 안경을 끼고 가까이 가지 않으면 차이도 알아볼 수 없는 UHDTV를 살 소비자가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들이 잘 튜닝된 LCD와 OLED의 차이에 감탄할 수는 있을까? 기술적 성취는 인정하지만, 그걸로는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열게 만들기는 힘들 것 같다. 어렸을 땐 IT 기자가 되어 CES에 취재하러 가는 게 꿈이었던 적도 있는데, 이젠 이 과잉 기술에 감탄은 커녕 실소만 나온다. 도대체 그걸 어디다 쓰라고?

물론 쓸데없는 기술도 언젠가는 도움이 된다. 버블이 생겨나는 시기에 혁신도 따라오는 것처럼, 쓸데없어 보이는 기술에 대한 투자가 미래에 생각지도 못한 혁신을 가져오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혁신이 과연 소니와 파나소닉의 것일까?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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