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다른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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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크레이그 샤피로를 만났다. 워렌 버핏도 아니고, 마이클 모리츠도 아니고, 존 도어도 아니고, 요즘 잘 나가는 마크 안드레센도 아니지만, 그래도 만나고 싶었다. 그가 하는 투자는 좀 달랐다.

그는 초기 기업에만 투자한다. 자기 퇴직금과 가족들의 지원금, 친구들의 쌈짓돈 등을 모아서 사업을 시작하는 창업자에게 제대로 된 첫 펀딩, 그러니까 이쪽 업계에서 시리즈A라고 부르는 그 펀딩을 받을 때까지 버틸 수 있도록 투자하는 앤젤투자 전문가다. 한국에도 이름부터 앤젤인 본엔젤스 같은 곳이 비슷한 일을 한다. 그러니까 앤젤이라 만나고 싶었던 건 아니다. 대신 그가 투자하는 회사들이 눈길을 끌었다.

그냥 회사 이름만 적어보자. 킥스타터, 겟어라운드, 태스크래빗, 코드카데미 등등. 물론 이 회사들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도 아니고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작은 회사들이긴 하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서 요새 가장 뜨는 회사들을 불러보라면 꼭 포함되는 회사들이다. 킥스타터는 최근 지난해 성과를 발표하면서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았고, 사업 모델이 워낙 매력적이고 이상적이라 언론에서도 엄청 다뤘다. 태스크래빗은 작년에 1780만 달러 투자를 받았고, 겟어라운드도 1390만 달러 투자를 받았다. 돈 액수도 대단하지만 이 회사들에 투자한 사람들이 마리사 메이어(야후 CEO)나 마이클 아이즈너(전 디즈니 CEO) 같은 사람들이란 것도 화제다. 코드카데미(codecademy라고 a가 빠졌음. 코드아카데미 아님)도 작년에 1000만 달러 투자유치에 성공했다. 온라인으로 코딩을 배우는 웹사이트 말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이게 모두 작년 1년 얘기다.

회사들로만 보면 샤피로는 마이더스왕 같다. 만지기만 하면 모든 걸 금으로 바꿔내는. 그런데 이 회사들은 모두 뚜렷한 특징이 있다. 협력적 소비(collaborative consumption)라는 트렌드를 상징하는 회사들이라는 점이다. 한국에선 공유경제(sharing economy)라는 말이 좀 더 한국어로 직관적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이 용어가 더 많이 쓰인다. 샤피로가 운영하는 앤젤투자 펀드의 이름이 바로 컬래버러티브 펀드(Collaborative Fund)다. 그러니까 샤피로는 공유경제라는 트렌드에 투자한 셈이다. 그렇다고 유행하는 산업만 좇아 투자한 건 아니다. 그러려면 인스타그램이나 팬시, 핀터레스트 같은 소셜미디어를 찾았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소개하는데, 만나보니 내성적이라기보다는 정말 겸손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지금까지 거둔 성과가 보통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성과를 부풀리지도 않고, 상대방의 얘기도 진짜 잘 들어준다. 어찌 보면 좋은 벤처투자자의 기본 조건이 이런 잘 듣는 능력 같은데, 사실 실제는 그렇지 않다. 그동안 만난 국내외의(특히 미국의) 벤처캐피탈 사람들은 대부분 속된 말로 밥맛 없었다. 돈 좀 만졌다고 자기가 벤처를 다 만드는 것처럼 생각한다거나, 제 자랑 일색이었다. 특히 “우리는 다른 벤처캐피탈하고 달라요. 좋은 VC는 돈만 주는 게 아니라, 경영 노하우, 좋은 인재 채용, 좋은 고객 소개 등을 제공하죠”라면서 거들먹거릴 때 그런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런 말은 그냥 교과서에 나오는 좋은 레토릭에 불과하다. 현실 사회의 VC는 대부분 거꾸로 움직인다. 자기가 돈을 좀 투자했다는 이유로 경영에 (노하우 전수라며) 시시콜콜 간섭하고, 좋은 인재를 소개시켜 주겠다는 이유로 자기 사람을 심어놓는다. 또 좋은 고객을 소개시켜 준다면서 자기가 투자한 회사들끼리 거래시키게 마련이다. VC의 대부분이 그런 식이다. 그럴싸하게 포장해 놓았을 뿐. 그래도 그 돈이 필요하고 아쉽기 때문에 기업가들은 그 투자를 받는다. 어쩔 수 없다.

얘기가 좀 딴 길로 샜는데, 샤피로는 좀 달랐다. 컬래버러티브 펀드의 투자 원칙은 ‘핵심 가치'(core value)다. 투자하려는 기업의 핵심 가치가 펀드의 투자 가치와 적합하면 투자하고, 아니면 하지 않는다. 신문 기사에도 썼지만, 펩시와 넷플릭스 사례가 그 핵심 가치를 설명하는 사례다. 펩시는 건강에 나쁜 탄산음료를 팔아 큰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사회를 이롭게 하기 위해 사회공헌 활동도 벌이고 몸에 좋은 음료도 만든다. 넷플릭스는 사회공헌 같은 일에 별 관심이 없다. 당장 회사가 살아남아 성장하는 게 목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DVD 생산량을 줄이고, 자원을 적게 쓰고, 결과적으로 환경을 이롭게 한다. 기업의 생존과 성장이 곧 사회에 도움이 되어야 그게 펀드의 핵심 가치에 맞는 것이다. 샤피로는 그래서 펩시는 무시하고 넷플릭스에만 투자한다.

‘착한 투자’만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샤피로는 꽤 냉정한 투자자다. 컬래버러티브 펀드를 만들기 전 두 건의 투자를 개인 돈으로 해봤는데 그게 다 잘 돼 벤처 투자자를 직업으로 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첫째는 모블리라는 일종의 모바일 상품추천 회사였다. 친구들끼리 좋아하는 제품을 모바일에서 추천하고 공유하게 해 주는 회사였는데 여기에 투자했다가 나중에 이 회사가 그루폰에 매각됐다. 이 때 좀 큰 돈을 벌었고 이게 컬래버러티브 펀드를 시작하는 자금이 됐다. 또 하나는 페이스북이었다.

그리고 첫 투자는 반드시 초기 단계에만 한다. 물론 태스크래빗처럼 나중에 잘 되어 시리즈 A, B로 이어지는 투자 기회가 있을 땐 계속 투자하지만 그 시작은 제대로 된 VC를 못 잡은 작은 기업들로 한정된다. 이런 기업에 많은 돈을 투자하지도 않는다. 비즈니스의 성격에 따라 액수는 달라지지만, 보통 10만~50만 달러 사이로 투자한다고 했다. 투자의 기준은 “1년에서 1년 반을 버틸 수 있는 돈”이다. 1년도 못 버티면 가능성이 없는 기업이고, 1년을 버티면 다음 투자자를 소개해 준다고 했다. 그게 샤피로의 일이다. 심플했다.

경영 노하우 같은 것도 전수하지 않는다. 오로지 두 가지만 가르친다. 프레젠테이션 기술과 각종 숫자를 읽는 기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많은 창업가들은 아이디어와 열정은 넘치는데 재무제표에는 익숙하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 초기에 이 부분에 어두우면 나중에 사업이 잘 될 때 배울 시간 내기도 힘들고, 초기 단계에서 실수할 가능성도 크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프레젠테이션이다. 샤피로는 “창업 단계의 초기 기업에서 정말 중요한 건 스토리”라는 걸 여러 차례 강조했다. 초기의 고객 반응 가운데에서 좋은 스토리를 찾아내고, 이를 잘 설명해야 투자자를 사로잡으며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에어비앤비 사례를 들었다. “에어비앤비가 처음에 소개한 상품은 리처드 브랜슨(버진그룹 회장, 괴짜 CEO의 대표주자)의 섬 하나를 통째로 빌려주는 상품이었어요. 이 회사의 진짜 매출은 브랜슨의 섬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값싼 일반 가정집을 빌려줄 때 나오지만, ‘브랜슨의 섬도 거래된다’는 사실이 화제가 돼 모든 매스컴이 에어비앤비를 다루기 시작한 거죠.”

그가 Good이란 잡지사를 맡아서 흑자전환시킨 경험이 이런 식의 스토리텔링 능력에도 도움이 된 것 같았다. 그는 비영리기구의 소식을 다루는 이 좋은 일 하는 착한 잡지(이름이 Good…)가 적자를 볼 때 CEO를 맡았는데, 사람들 사이에 이 잡지가 화제가 되도록 만들기 위해 정기구독료 수입을 모두 포기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는 “독자 여러분께서 정기구독을 해주시면 그 수입은 100% 비영리기구를 지원하는데 사용됩니다”라고 캠페인을 벌였다. 10%도, 50%도 아니고 100%였다. 판매 수입을 완전히 버린 셈이다. 그런데 일단 이렇게 방향을 바꾸자 비영리기구 사람들이 모두 Good 매거진의 홍보원이 됐다. “이 책 보면 우리 후원하는 셈이거든! 한 부 구독해!” 사람들은 기꺼이 좋은 일을 하려 했고, 잡지의 타깃 독자에게는 이 전략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Good은 판매 수입을 포기한 대신 부수가 올라갔고, 광고 수입도 따라 늘어서 결국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자신이 투자한 기업들을 설명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겟어라운드가 시스템이 어떻고, 경쟁 환경이 저떻고 하는 얘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작년에 중고차 시세가 400달러밖에 하지 않는 낡은 혼다 시빅을 겟어라운드에 올려놓은 남자가 5000달러를 벌었던 것 아세요?”, “요즘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들 많은데 태스크래빗에서 심부름을 하면서 한 달에 5000달러를 버는 사람도 생겼어요.”, “제가 알고 지내던 실리콘밸리 한 벤처기업 CTO는 요새 회사를 그만두고 스킬 셰어에 나와서 코딩 강의하는 선생님이 됐어요.” 대화가 늘 이런 식이었다. 겟어라운드와 태스크래빗, 스킬셰어가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한 문장으로 이해되도록.

그는 공유경제가 지배적인 사회 트렌드가 될 거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세요. 사람들이 자기가 쓰는 모든 걸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소유하기 시작한 건 산업혁명 이후 경제적 풍요가 찾아온 뒤니까 100년도 안 된 시기에요. 시계추가 지금 이 끝까지 온 것이죠. 어디까지 과거로 돌아갈지는 모르지만 조금은 뒤로 돌아갈 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가진 것의 10%라도 남들과 공유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혁명적인 변화입니다.”

그는 이번에 한국에 와서 한국의 공유경제 기업인들과도 만났는데, 자리를 주선한 게 SOPOONG이었다. 다음 창업자 이재웅 대표가 진행하는 벤처캐피탈. 두 회사 사이엔 사실 공통점도 많다. 초기 투자액이 짜다는 점(재웅님이 이 글 안 보시면 좋겠다)과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기업에만 투자한다는 점. 한국에서 이런 투자가 시작된 것도 얼마 안 됐다. 한국에서도 성공하는 기업들이 계속 나와줬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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