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소리

아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따리로 받아 챙기는데, 아빠는 아무 것도 받는 게 없어서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다. 새 맥북을 샀다. 아직 한 달도 안 됐지만 꽤 만족하고 있다. 게다가 교육 할인 참 좋다. 아내의 비싼 등록금을 쓸데없는 곳에서 일부 환급받은 기분이다. 어쨌든 눈이 계속 침침해져서 화면이 좋은 노트북이 절실했다. 어차피 컴퓨터 화면을 안 보고 사는 삶은 남은 인생에 얼마 안 될 테니까. 게다가 아이패드에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적용되면서 눈이 편해졌던 기억도 있었다.
화면이야 당연히 기대했던 만큼 만족하고 있는데, 쓰다보니 새로운 변화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소리다.

사실 줄기차게 얘기되는 ‘혁신이 없다’ 레퍼토리는 애플 제품 라인업 거의 대부분에 적용되는 얘기인데, 이 기준에 따르면 아이팟은 플래시메모리 셔플이 나왔던 2005년 1월 이래 8년 간 혁신이 없는 셈이고,(음… 주력이 셔플이 아니라 나노일까?) 맥북프로도 2008년 유니바디 제품이 처음 나온 이후로 혁신이 없던 셈이다. 그냥 조금씩 개선만 됐다. 애플 제품이 사실 다 이렇다. 겉보기엔 계속 비슷해 보이니 신제품이 나와도 잘 모른다. 예를 들어 내가 지난 3년 간 맥북을 세 차례 바꾼 걸 아는 동료는 한 명도 없다. 다들 3년 전 쓰던 그 유니바디 제품을 지금까지 쓴다고 생각한다. 다 알루미늄에 비슷하게 생겼으니까.

이런 기준에 따르자면 레티나 맥북프로도 혁신은 없다. 작은 개선이 있을 뿐이다. 우선 화면 베젤이 조금씩 좁아졌다. 그래서 13인치 모델은 생각보다 두께가 덜 줄어들었는데도(하드디스크와 ODD를 뺐는데 왜 더 안 얇아지는지…) 무게는 가볍다. 절대 크기가 작기 때문이다. 아담한데도 화면 크기는 유지됐다. 그리고 두께를 못 줄인 대신 설계를 최대한 조절해 스피커를 손봤다. 어차피 노트북의 스피커라는 게 물리적 크기의 한계로 음질은 거기서 거기다. 그런데 이걸 귀로 듣자니 확연히 차이가 난다. 심지어 두 대를 나란히 놓고 비교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새 노트북을 켜자마자 깨달았다. 스피커가 죽여주네!

13인치 맥북프로의 좁은 공간에 더 좋은 스피커를 넣을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이냐고 물어봤더니 애플 쪽에서 설명해준 건 설계 변경이었다. 스피커의 물리적 개선도 최대한 했지만, 힌지(접히고 열리는 관절부분) 주위 설계를 바꾼 게 체감하는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별도의 좌우 스피커가 사용자의 귀로 제대로 된 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15인치 모델과는 달리 13인치는 공간 부족 때문에 힌지 부분에 스피커 출력 장소가 자리잡고 있다. 전에는 이 곳에서 소리가 그저 새어 나왔다. 물론 발열팬의 공기도 이쪽으로 빠져 나왔다. 13인치에서는 이 발열팬 방출 부분을 조금 바꿨다. 각도를 수정해서 새어 나온 소리가 흩어지지 않고 화면 앞에 있는 사용자에게 최대한 제대로 전달되도록 한 것이다. 똑같은 연주도 탁 트인 야외에서 듣는 것과 관객석을 향해 음향 반사를 고려해 만든 전문 콘서트홀에서 듣는 게 다른 것과 비슷한 이유다.

생각해보니 이런 식의 설계 변경이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이어폰이 대표적이다. 아이폰5와 함께 새로 나온 ‘이어팟’은 예전 이어버드와는 달리 이어폰의 진동판 뒤쪽과 특이하게도 이어폰 아래쪽에도 구멍이 뚫려 있다. 공기 흐름을  제어해서 음질을 높여보겠다는 설정인데, 그 덕분에 비싸지 않은 번들 이어폰 치고는 꽤 괜찮은 소리를 들려준다.

아이패드도 달라졌다. 설계를 완전히 새로 한 아이패드 미니는 더 큰 아이패드 모델보다 값이 싼데도 불구하고 사운드는 훨씬 뛰어나다. 스테레오 스피커를 썼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피커 위치도 바닥으로 이동했다. 뒷면을 바라보는 아이패드와 달리 비교적 제대로 화면 앞 사람에게 소리를 전달한다. 사실 예전부터 이렇게 만들었어야 했다고 생각하지만.

애플 제품들은 새 제품이 나오면 확실히 뭔가 변해 있다. 혁신이 사라졌다고 비웃을 수야 있겠지만, 진지하게 하루 종일 씨름해야 하는 기계를 고르는 사람 입장에선 선뜻 다른 브랜드에 손을 뻗기가 두렵기 마련이다. 등산을 다니면서 수십년 동안 한 브랜드만 고집하는 사람들의 마음 같은 것 아닐까. “이 회사 밧줄이 암벽에서 날 구해줬거든” 식의 신뢰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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