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TE 만세

“개방·확산·상생의 대전제 아래 스마트폰 고객 증가 등 제반 환경과 ICT 생태계 조성 등을 고려해 투자를 동반하는 데이터 무제한서비스 및 m-VoIP 서비스를 도입하게 됐다”

원래 2010년 7월만 해도 이랬는데,

“통신망의 포화 상태가 통신사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네트워크를 활용해 이익을 보는 모든 사업자들이 돈을 내야 한다.”

작년 2월엔 이랬다.

“미래를 위한 네트워크 투자 없이는 재앙이 발생할 수 있다.”

석 달 지나니까 이런 공포 발언까지 등장했지만,

오늘 LG유플러스는 언제 이런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2010년으로 돌아간 것처럼 LTE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만들어서 발표했다. 자기들 영업정지가 끝나는 이달 31일부터 이 요금제로 가입자를 모으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절대로 LTE에선 무제한 요금제 같은 건 없다던 KT가 후다닥 “우리도 무제한”이라면서 동일한 요금제를 만들어 발표했다. SK텔레콤도 곧 비슷한 요금제를 내놓겠다고 한다.

LTE 만세. 나 말고 통신사들에게.

3G에서 무제한 요금제 만드느라 투자여력이 전혀 없다고, “재앙이 온다”며 난리를 치던 회사들이 결국 지난해 1년 동안 한 일이라고는 갤럭시S3에 보조금 퍼붓는 전쟁을 벌여가면서 ‘균형을 잡은’ 일 외에는 없다. 시장점유율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제자리 걸음을 걷기 위해 3개 회사가 수조 원을 퍼부었다. LTE를 전국에 두번은 깔았을 돈이다.

참, LTE는 기존 WCDMA 통신설비와 호환성이 있고, 기술 발전으로 장비가격도 떨어져서 설치 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 3세대 WCDMA는 독자적인 CDMA 방식으로 서비스를 하던 한국 통신망을 유럽식인 GSM 기술의 발전형 모델인 WCDMA로 완전히 뜯어고치는 투자였다. 기존 장비와 호환이 안 되니 신규 통신망 설치 비용이 엄청났지만 이젠 그럴 일이 없는 셈이다.

그러니까 비용은 줄었고, 요금은 늘어났다. 통신사로서는 횡재한 셈이다. 위의 통신사 CEO들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 돈을 통신사들이 더 좋은 통신망 투자에 쓸 거라고 기대하는 게 마땅하지만, 사실 그들은 그 돈을 몽땅 다 보조금 전쟁으로 태워없앴다.

그리고 또 무제한 요금제다. 다시 한 번 예전의 그 사이클을 반복하자는 기세다. LG유플러스가 먼저 시작했더니 KT는 그날 부랴부랴 방송통신위원회로 비슷한 요금제를 만들어 들고 갔다. 퇴근시간 이전까지 자료를 배포하겠다고 기자들에게 안내까지 한 뒤 LG유플러스와 거의 똑같은 요금제를 베끼다시피 해서 내놨다. SK텔레콤도 다음주에 비슷한 방안을 마련해 발표하겠다고 한다.

세상에, 무제한 데이터는 곧 ‘네트워크 재앙’이 닥치게 만들 거라더니.

시간이 지나면 돌고 돌아 제자리다. 소비자를 바보 천치로 아는 식이다.

참, 난 LTE를 1주일 쯤 쓰다가 다시 3G 무제한요금제로 돌아왔다. 벌벌 떨면서 와이파이존 찾아다니는 것도 싫고, 보통 5~7GB 정도의 사용량이 나오는데(동영상을 안 보는 헤비 사용자의 월간 데이터 소모량이다.) 5, 6GB 선에 요금 경계를 맞춰놓은 속 보이는 정책도 짜증난다.

한가지만 더.

처음 아이폰이 들어왔을 때 기준 가격은 4만5000원이었다. 통신사의 보조금이 모두 이 요금제에 맞춰져 있어서 사람들은 너도나도 이 요금제를 택했다. 그걸 6개월 쯤 지나 무제한데이터라면서 5만5000원으로 1만 원 올려놓았다. 물론 보조금도 이 요금제 가입자에게 가장 많이 제공됐다. 그리고 1년 반 쯤 신나게 경쟁했다. 기억날지 모르겠는데, 이때가 블랙베리, 노키아, HTC, 모토로라, 소니에릭슨 등 수많은 해외 제조업체가 한국 시장에서 한 번 경쟁해보겠다고 마케팅에 불을 붙이던 시기다. 통신사들이 보조금을 적당히 쓰고 돈을 적게 벌 때면 한국 소비자들이 수많은 선택을 눈 앞에 둘 수 있다는 소리다.

그리고 2011년 10월부터 LTE폰 경쟁이 시작됐다. 보조금은 6만2000원 요금제에 맞춰졌다. KT가 시장에 뛰어든 2012년부터는 보조금이 6만2000원과 7만2000원 요금제에 동시에 들어갔다. 결국 사람들은 7만2000원 요금제를 쓰기 시작했다. 매년 1인 당 평균 통신요금이 1만 원 씩 오른 셈이다. 그리고 2013년이 시작되자 이젠 9만5000원짜리 무제한 요금제를 쓰라고 한다. 그 와중에 저 많던 해외 제조업체는 모두 다 한국을 떠나기 시작했다. 아니면 시장에서 존재감이 사라지거나. 통신사들이 돈을 풀자 시장의 다양성이 사라졌다.

이게 모두 한국 통신사의 훌륭한 전략 덕분이다. 조만간 3G 품질을 떨어뜨리기 시작하겠지. 나도 LTE로 옮겨가야만 하도록. LTE 만세.

update. 트위터를 통해 지적해주신 분이 계셔서 알게 됐는데, 마지막 부분에 보면 한국의 수많았던 해외 휴대전화 제조업체가 떠난 게 통신사 탓인 것처럼 읽힐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의 부족한 제품 경쟁력은 외면한 채 모든 게 통신사 탓이라 얘기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는데, 다시 보니 그렇게 읽힐 수 있겠다 싶다. 그래서 부연설명하자면, 저 단락을 적은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능력 없는 업체가 시장에서 퇴출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걸 놔둬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하지만 통신사들이 보조금을 특정 모델 출시에 맞춰 단숨에 풀어제치면 비슷한 시기에 나오는 단말기는 모조리 죽을 쑬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1등은 100점, 2등은 90점, 3등은 80점, 4등은 50점, 5등은 30점짜리 휴대전화를 만든다고 치자. 1~3등까지 제품은 그럭저럭 자기 시장을 찾아내고, 4, 5등은 퇴출되는 게 정상적 시장이다. 그런데 통신사가 보조금을 풀면 1등만 살고 2~5등이 다 죽는다. 그래도 경쟁력 높은 1등이 살아남는 것이니 괜찮다고 볼 수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1등 제품 만들던 회사가 폭리를 취할 때 선택할 경쟁제품이 없어져서 결국 손해다. 예를 들어 갤럭시S3는 정말 좋은 스마트폰이지만 그게 17만 원에 팔릴 땐 다른 휴대전화는 누구도 사려고 들지 않았다. 이런 게 보조금에 의한 과도한 시장왜곡이고, 이런 상황에선 다양성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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