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데스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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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27인치 모니터처럼 생긴 새 아이맥은 그 얇은 모니터처럼 생긴 부분이 훌륭한 데스크탑 자체인 컴퓨터다. 성능이 꽤 그럴싸한 스피커를 갖췄고, 전면을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와 주변 소음을 제거하는 지향성 마이크도 달려 있으며 기본으로 제공하는 키보드와 마우스는 블루투스로 깔끔하게 무선 연결된다.

하지만 멋진 외관과 괜찮은 성능에도 불구하고, 과연 난 내 돈을 내고 이 컴퓨터를 살 마음이 들었을까? 아니. 우리 가족들은?

다섯살짜리 아들은 아예 처음부터 절망했다. 배송 상자에서 커다란 모니터(처럼 생긴 컴퓨터)를 꺼내고, 전원을 넣어 화면이 환하게 빛나는 걸 볼 때의 아들은 마치 처음 이브를 만났을 때의 월E처럼 기대가 가득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낙담하는 데에는 몇 초 걸리지 않았다. 화면을 터치했지만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니터를 아무리 손으로 쓸어넘겨봐야 화면은 변하는 게 없었다. 아빠는 오히려 모니터에 지문이 묻는다며 손을 못 대도록 자신을 나무랐다. 그리고는 곧 ‘키보드와 마우스’라고 불리는 이상한 기계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건 그럼 아빠가 해보세요.” 기괴한 풍경에 낙담한 아들은 마치 선심이라도 쓰는 듯 이상한 원시적 장비를 다루는 아빠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그리고는 금세 장난감 자동차와 아이패드를 향해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한 달 남짓 거실 책상 위를 차지하던 이 거대한 기계는 우리 식구들의 관심을 동시에 끌었던 순간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아내도 노트북만 썼고, 아들은 아이패드 이상이 필요할 리가 없었다. 아이맥에 전원이 들어오던 시간은 매일 새벽 5시부터 7시 조금 넘어서까지 뿐. 그러다보니 함께 쓰자고 거실에 내놓은 데스크탑이 노트북보다도 더 나만의 개인적인 장비인 듯 느껴졌다. 새벽에 일어났을 때 책상에 앉으려고 마음을 다잡을 때면 노트북은 좋은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침대에 누워서도, 소파에 파묻혀서도, 거실 바닥에 엎드려서도 쓸 수 있다는 이 기계의 자유로움이 문제였다. 뭔가에 집중해야 할 땐 다른 모든 게 불편해야 집중이 가능하게 마련이었다.

책을 쓰던 때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2007년 첫 책을 쓸 땐 노트북으로 작업했다. 진도는 정말 나무에 새 잎이 난 뒤 단풍이 지고, 결국 마른 잎이 땅에 떨어지고야 마는 과정처럼 더디게 진행됐다. 마감은 다가오고, 진도는 늘 제자리라, ‘다시는 긴 글은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덜컥 일을 벌인 스스로에게 저주를 퍼붓던 시기였다. 2009년 두번째 책을 쓸 때엔 모처럼 데스크탑을 썼다.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 한 번 책상에 앉으면 일어날 줄을 몰랐고, 그렇게 10시간이고 제자리에 그대로 앉아 일했던 기억도 있다. 크리스마스를 포함해 열흘 가까이 휴가를 몰아서 내긴 했지만 그 단 열흘 동안 대부분의 작업을 다 끝냈다. 그리고 작년 책을 쓸 땐 다시 데스크탑 대신 노트북을 썼다. 아니나 다를까 몇달을 끙끙댄 뒤에야 원고가 예상보다 홀쭉한 상태로 완성됐다.

그러니까 데스크탑은 이미 아버지가 된, 앞으로 ‘뭐든지 할 수 있는 가능성’보다는 ‘지금까지 해온 일을 일정 수준까지 올려놓아야 할 의무’만 남은 세대를 위한 생산성 증폭기다. 낡은 세대를 위한 연장 말이다. 터치스크린도 아니고, 키보드와 마우스처럼 구시대의 방법으로 조작해야만 하는 과거의 생산도구. 다른 걸 희생해서 집중을 강요시키는.

지난달 책상 위를 가득 채워 긴 새벽을 함께 했던 그 기계는, 그래서 마치 허리가 잘록한 아르마니 수트를 잘 빼 입은 노신사 같았다. 스타일도 멋지고, 현대적인 감각도 갖춘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낡고 늙었던. 그러니 이건 아마도 아빠가 된 우리 세대 같은 기계 아닐까. 아직 어리고 참신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어느새 낡고 구식이 돼 버린.

그러니, 안녕, 데스크탑. 돌아갈 ‘책상 위'(desk top)란 건 사라져 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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