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라인을 밀어내자?

스페인에서 열리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행사에 와 있다. 그런데 한국 기사를 보니 이석채 회장이 “카카오톡과 라인을 밀어내자”고 말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이상하다. 그런 얘기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물론 카톡과 라인이 통신사의 수익을 갉아먹는 회사라는 얘기는 했다. 그건 사실이니까. 기조연설에 그런 부분도 들어있었다. 기사가 잘못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런데 이 회장 얘기를 패널토론까지 들어보면 뉘앙스가 좀 달랐다는 걸 알 수 있다.
MWC 둘째날 기조연설은 도이치텔레콤, 에릭슨, KT, 그리고 바이버의 CEO가 돌아가면서 15분씩 자기 얘길 하고 함께 20분 정도 토론을 했다. 무료통화 앱을 만드는 바이버가 끼어들어 토론이 흥미진진해졌는데, 마지막 기조연설자였던 탤먼 마르코 바이버 CEO는 “혁신(innovation)과 상호호환성(interoperability)은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고 해서 논쟁이 붙었다.

“바이버 같은 기업은 혁신을 향해 달려가기 때문에 와츠앱, 스카이프와 상호호환을 신경쓰지 않는다. 혁신이란 곧 다른 기업과의 차별화이기 때문이다. 반면 통신사는 서로 다른 통신사와의 상호호환에 가장 신경을 쓴다. 차별화를 없애는 방식이라 혁신이 생기지 않는다. 통신사에게 유일한 차별화는 가격이고, 그건 저가 출혈경쟁으로 이어진다.”

새파랗게 젊은 앱 개발자가 이런 소리를 면전에서 해대니 당연히 통신사는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도이치텔레콤의 CEO 르네 오버만은 “상호호환이야말로 혁신이고, 바이버 같은 기업은 통신사의 이런 기술을 이해조차 하지 못한다”며 “정보보안도 못 지키고 개인정보 보호도 소홀한 기업이 혁신을 얘기하다니”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마르코는 “우리 최고보안책임자가 AT&T 통신망을 해킹했던 사람”이라며 맞섰다. 이 회장도 사회자가 의견을 물어 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차피 바이버는 물론 카톡이나 와츠앱 같은 회사가 문을 닫는다해도 어떻게든 그런 식의 비즈니스모델을 가진 새 회사가 나올 겁니다. 우리가 규제를 통해 이들을 막으려 해도 브로드밴드라는 건 이런 사업자들에게 이를 우회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 거에요. 막으려고 해도 못 막습니다. 이들과는 협력할 방법을 찾아나가며, 이들이 못하는 서비스를 우리가 해야 하지 않겠어요?”

난 이게 ‘카카오톡과 라인을 밀어내자’는 얘기와는 다른 얘기라고 생각한다. KT를 딱히 편들거나 이 회장을 개인적으로 지지할 생각은 없는데, 이번 MWC에서 KT의 얘기는 확실히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유럽 통신사들의 옛날식 사고와 비교할 때엔 매우 진일보한 얘기였다. 물론 스마트폰 보급률이 아주 높은 한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하루하루 온갖 비난과 싸워가야 하는 한국 통신사의 현실이 배경이 됐겠지만.

난 KT가 카카오톡보다 좋은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도 마르코와 비슷한 생각인데, 상호호환성은 차별화를 통해 이룩하는 혁신과는 반대방향을 가리키기 쉽다. 하지만 이번 MWC에서 통신사와 앱개발사, 인터넷 회사들은 으르렁거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뭔가 접점을 찾는 느낌이었다. 예를 들어 결제. 회원가입 후 신용카드를 등록해야 애플, 구글, 아마존 앱스토어를 쓸 수 있는데 이렇게 신용카드 정보를 자발적으로 알아서 입력하는 스마트폰 가입자가 전체 가입자 가운데 얼마나 될까? 오히려 통신사가 통신요금에 합산해서 대신 과금해주고 수수료를 받아주면 편하지 않을까? 구글이 구글플레이를 한국에서 처음 시작할 때 통신사 지불대행 서비스를 요구하고 상당한 수수료를 통신사에게 지불했던 것도 이런 이유다. 결제는 앱개발사에게도 필요하고, 통신사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다. 이런 걸 서로 찾아내는 게 아마 통신산업의 미래가 아닐까.

판단은 어차피 각자 할 일. 다음은 이 회장의 키노트 내용이다. 짧은 영어로 인한 오역과 듣다가 손가락이 아파 받아적지 않은 생략이 존재하긴 하는데, 그래도 보도자료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다.

KT CEO Dr. Lee

이 자리에 서서 영광입니다. 세계에서 오신 여러분. KT는 상대적으로 작은 회사입니다. 우리는 글로벌 회사도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왜 여기 서서 말하고 있는 걸까요? 무슨 자격으로 ‘통신의 미래’를 얘기하고자 나섰을까요? 그건 제게 자신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KT가 처한 현실, 그리고 우리에게 비즈니스모델을 다시 부활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준 상황이 제 자신감의 배경입니다.

이는 어떤 측면에서는 우리가 최전선에 서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KT는 과거의 유산인 구식 통신망을 갖고 있는 회사입니다. PSTN(유선 시내전화망) 매출 비중이 컸죠. 그런데 이게 급격히 감소하고, 문자메시지(SMS) 매출도 마지막 통계로 기존보다 65% 하락했습니다. 제 체감에는 최근에는 75% 이상 감소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국에서 SMS를 이용하지 않기 때문이죠. 음성통화도 16%나 감소했습니다. 그 자리에 OTT(over the top, 통신망 위에서 사업하는 카카오톡 같은 유사통신사업자를 통신사가 부르는 용어) 업체가 엄청난 성공을 거뒀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성공했죠. 이들이 무선통신을 엄청나게 씁니다.

여러분, KT의 경험을 바탕으로 비전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이른바 All-IP 시대입니다. 유선통신때보다 훨씬 더 큰 변화가 무선에서 일어날 거에요. 세계 모든 지역이 변할 겁니다. 이 장소에 오기 전에 에릭슨의 리포트를 봤습니다. 50달러 미만의 스마트폰이 나올 거라고 얘기하더군요. 한국에선 이미 3분의2 이상의 휴대전화 가입자가 스마트폰을 씁니다. 한국에서 한 사람이 한 달 동안 쓰는 무선 데이터 양은 1.7GB에요. 2009년 초만 해도 1인 당 10MB를 썼습니다. 160배 늘어난 겁니다.

All-IP 얘기를 하는 게 이런 배경에서입니다. 1990년대 말, 유선 브로드밴드는 거대한 사이버공간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런데 통신사 대신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이베이, 네이버 같은 회사가 이 공간을 차지했죠. 통신사는 여기서 아주 작은 조각만 차지했습니다. 모바일에선 더 큰 사이버 공간이 생길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세계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갈 겁니다. 전자정부를 비롯해 수많은 다른 서비스 들이 이 공간에 등장할 거에요. 그런데 이게 커다란 인터넷사업자, 새로 번성하는 OTT에 의해 점유된다면 어떨까요?

지난 4년간 KT의 수익은 성장을 멈췄습니다. 반면 시설투자는 40억 달러에 이르렀죠. 모바일 데이터를 위한 망 투자 때문입니다. 또 경쟁은 심했고, 정부 규제도 심했죠. 이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통신사가 동일할 겁니다. 그런데 All-IP 시대에서는 이러닝, 이헬스, 이가버먼트 등이 모두 IP망으로 갈 겁니다. 우리는 이걸 가상재화(virtual goods)라고 부릅니다. 실물 재화(physical goods)에 대항하는 말이죠. 이게 세계 경제를 이끌어갈 테고, 이런 사이버공간에서의 가상재화 판매로 구글, 네이버 등의 사업자들이 돈을 벌고 있습니다. KT는 이런 시장에서 번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새로 확장된 가상 공간에서 우리는 르네(앞서 발표했던 도이치텔레콤 CEO)가 얘기했던 것처럼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구글은 가상재화의 시대에 최적화된 네트워크를 직접 준비하고 있습니다. 클라우드 컴퓨팅 등을 소프트웨어 공학 기술로 해결해나가기도 합니다. 통신의 경계로 들어오고 있어요. 그런데 통신사는 기존의 통신 경계, 인프라만 만들던 그 경계에 갇혀 있습니다. 경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는 것처럼 우리는 WAC(통신사 공동 앱스토어)을 만들려다 실패했습니다. 아마 제가 WAC 얘기를 꺼내면 그 단어 자체가 듣기 싫은 분들도 계시겠죠. 그런데 WAC 같은 가상재화 공동시장을 제안하면 맘에 들어하실까요? 아닐 겁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WAC은 비현실적이었습니다. 미들웨어를 하나 만들고 그게 성공할 거라 믿었으니 불구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상재화 단일 공동시장도 당연히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건 가입자라는 고객 기반이고, 그걸 나눠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타이젠, 파이어폭스 등 다양한 대안 OS도 지원해야 합니다. OASIS를 보세요. KT와 차이나모바일, NTT도코모가 함께 하는 서비스입니다. 2년을 했는데 우리가 작은 성공의 사례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이렇게 같은 아이디어를 갖고, 지역적 기반에서, 심지어 경쟁업체들이라 할지라도 합쳐가면서 빠르게 시장을 확대하고 가입자 기반을 늘리는 게 중요합니다.

지속가능한 방법이 있습니다. KT는 이미 혁명적인 All-IP 네트워크를 소프트웨어적으로 만들었습니다. 클라우드 컴퓨팅 역량도 갖췄습니다. 통신 사업이지만 경계를 넘어서려고 하고 있죠. 우리는 또 미디어 그룹으로도 변하고 있습니다. IPTV를 유선과 모바일 양쪽에서 서비스하고, 이런 기반을 이용해 사회의 교육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이러닝 등을 제공합니다. 컨텐츠 프로바이더 역할도 시작했죠. 그러니 이런 걸 확대해야 합니다. 여러분 글로벌 가상재화 시장을 키웁시다. 제 생각에 이건 옵션이 아니라 숙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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