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 오텔 드 파리

grandhotel MWC 때문에 스페인에 왔다가 귀국하기 전 마드리드를 잠시 둘러봤다. 마드리드에서는 대학 때 한 달 쯤 살았던 적도 있고, 와이프와 신혼여행 비슷하게 놀러오기도 했던 탓에 꽤 익숙하긴 한데, 저 건물은 늘 지나치면서도 큰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어서 잘 몰랐다. 지금은 공사에 들어간 탓에 다 가려져 있지만 이 건물은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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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지어졌을 때만해도(가운데에 보이는 건물) 마드리드의 중심인 태양의문(Puerta del Sol) 광장의 명물이었다고 한다. 바로 1860년에 세워진 ‘그랑오텔 드 파리’다. 마드리드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파리’라는 프랑스 수도 이름을 달고 영업을 시작했던 건 애초에 이 호텔이 파리에서 마드리드 사이의  철도가 개통되면서 스페인을 찾는 프랑스인들의 수요를 노리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유럽에 프랑스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지 않은 나라가 어디 있겠냐만, 그 중에서도 19세기 후반의 프랑스는 철도의 중심지로 유럽을 연결했다. 바로 옆나라였던, 특히 언어와 문화가 비슷했던 스페인도 이렇게 뻗어나가는 프랑스 파리의 철도와 마드리드를 연결하면서 빠르게 근대화를 시작했다.

그 덕분에 이 호텔은 스페인에서 문을 연 가장 화려한 근대식 호텔이었고, 처음으로 모든 객실마다 개별 욕실을 갖춘데다 ‘룸서비스’라는 개념도 처음 도입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게다가 정통 프랑스 요리를 서빙하는 멋진 식당을 갖췄고, 한번에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제국카페'(Café Imerial)는 마드리드의 명소로 이름을 날렸다. 당연히 엄청나게 비쌌지만, 수요는 늘 넘쳤다. 19세기 스페인의 명물이었던 이 호텔은 20세기 초까지도 엘리베이터를 처음 설치하고 전기로 불을 밝히면서 그 명성을 이어갔다. 하지만 1936년 발발한 스페인 내전은 모든 걸 바꿔 놓았다. 내전이 끝나고 다시 장사를 시작하려고 했더니 경쟁자들이 우후죽순 생겨난 것이다.

마드리드 관광의 시작은 대부분 태양의문 광장에서 시작되는데, 경쟁 호텔이 아무리 늘어난다 해도 그랑오텔드파리의 위치만큼은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위치만 갖고 장사를 할 수는 없는 법이라서 결국 이 호텔은 2006년 문을 닫게 된다. 마드리드에서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잡은 그랑오텔드파리였지만 이후 5년 동안 주인도 나오지 않고 딱히 활용처도 찾지 못한 이 건물은 그냥 흉물스럽게 방치된다.

2011년, 새로운 복구 계획이 나왔다. 새로운 호텔 대신 이 장소에 눈독을 들인 건 애플이었다. 마드리드에 새로 문을 열 애플스토어는 뉴욕 5번가의 애플스토어보다도 더 큰 규모로 지어질 것이며 1, 2층과 지하 일부를 사용한다는 계획에 따라 지어지고 있다.

이 장소의 운명도 얄궂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땐 프랑스인을 위한 것이었고, 세기가 두 번 바뀌면서 이젠 미국 기업의 스페인 진출로가 됐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랑오텔드파리가 스페인 근대화의 상징적인 랜드마크였듯, 애플스토어 마드리드도 스페인 정보화의 상징적인 랜드마크가 되진 않을까. 게다가 애플이라면, 이 역사적인 장소에 가게를 내면서 대충 만들지는 않을 테다. 애플에게도, 마드리드에게도 참 잘 어울리는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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