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WC 2013 결산

지난 주에 모바일월드콩그레스에 다녀왔다. 행사장에서 만난 한 CEO는 MWC에 대해 “세상이 변했는데도 아무 생각없는 통신사들이 풍광 좋은 곳에서 전시회 열고, 비즈니스클래스 비행기 타고 놀러와서 특급호텔에서 며칠 묵으며 환담 나눈 뒤 돌아가는 폼 잡는 행사”라고 혹평했다. 솔직히, 본질적으로 그런 행사라는 생각을 나도 지울 수가 없었다. MWC의 최근 몇 년 간 성과라는 게 전부 허울좋은 말장난이었기 때문이다. 세계 통신사 공동 앱스토어라던 WAC 같은 건 한 번 제대로 시작도 못해보고 끝났고, ‘미래의 기술’이라며 자랑하는 근거리무선통신(NFC) 기술은 올해도 여전히 ‘미래를 경험해 보세요’ 수준이다. NFC가 스마트폰에 딱 맞는 기술이라며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게 2010년이다. 이미 지금이 그 때보다 3년 가까이 지난 미래인데 무슨 미래를 더 경험하라는 얘기?
게다가 올해 행사에서는 모두들 짐을 싸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 시절의 애플이 자체 행사에서 워낙 주목받던 시기에는 일종의 ‘반 애플 동맹’이 MWC에 모여들었지만 애플도 예전같지 않은 지금은 이해 관계가 달라졌다. 원래 한 때 잘 나가던 앙시앙 레짐의 절대군주들은 혁명군의 예봉만 꺾이고 나면 돌아서서 각자 전리품 챙기기에 나서게 마련 아니던가.

예를 들어 이번 MWC에서 전시관도, 신제품 발표도, 컨퍼런스도 열지 않았던 구글은 그래도 공간은 ‘비공개로’ 빌려서 이러저런 ‘비공식’ 만남은 쉼없이 계속 진행했다. 삼성전자도 갤럭시노트 8.0을 공개하긴 했지만 그보다 더 큰 뉴스는 ‘갤럭시S4를 뉴욕에서 3월14일 공개한다’는 일정 발표를 MWC에서 했다는 사실이었다. 삼성이든 구글이든 MWC는 큰 무대가 아니었던 셈이다. 여기 오는 주요 파트너들과 물밑에서 작업을 벌이는 곳일 뿐. 그나마 소니는 아주 성실하게 공식 후원사로 참여하면서 엑스페리아T를 참가자 상당수에게 무료로 뿌렸고, 바르셀로나 시내 광고판 대부분을 (마치 애플이 신제품 발표 직후 샌프란시스코에 하던 것처럼) 신제품인 엑스페리아Z로 가득 채웠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갤럭시S4 얘기만 하더라. 불쌍한 소니.

파이어폭스와 우분투, 타이젠이 엄청난 관심이라도 끌어 모은 것처럼 얘기되긴 했지만 이것 또한 약간 맥이 빠졌다. 일단 삼성전자나 LG전자, 소니, HTC 같은 이른바 안드로이드 메이저 업체는 시제품을 전혀 전시하지 않았다. 대신 “앞으로 하겠다”는 계획만 발표했다. 이런 회사들의 고위관계자들은 “통신사에서 요구하니까 협조하는 것”이라는 얘기를 딱히 비밀도 아니라는 듯 쉽게 얘기했다. 그러니까 딱히 대안 OS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물론 타이젠을 인텔과 함께 밀고 있는 삼성전자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삼성은 좀 더 진지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삼성조차 타이젠 자체의 방향성을 확정짓지 못한 상태다. 정작 만져볼 수 있는 수준의 시제품이 등장한 건 파이어폭스 뿐이었는데, 그 시제품 제조사가 중국의 ZTE였고 당연히 초저가 스마트폰이란 사실은 이게 참 갈 길이 멀다는 것만 보여줬다. 이외에는 (어이없게도) 알카텔이 파이어폭스 스마트폰 시제품을 내놨는데, 이들이 증명한 것이라곤 딱 하나뿐이었다. 북유럽 제조기술은 중국에게 확실하게 밀린다는 사실.

그러니까 이른바 ‘대안 OS의 등장’은 GSMA 차원에서 논의된 통신사들의 위기감의 발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일단 어떤 통신사도 대안 OS로 만든 스마트폰을 시장에 적극적으로 팔겠다는 얘기를 하지 못했다. 마치 ‘파이어폭스 전도사’라도 된 듯 모질라재단을 후원하던 텔레포니카조차 막상 파이어폭스 스마트폰은 중남미 5개국에 ‘제한적으로’ 팔 계획이라고만 설명했다. 올해 파이어폭스 단말기는, 내 생각엔 모두 합쳐도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 8.0만큼도 안 팔릴 것 같다. 손에 쥘 수 있는 데모조차 없는 우분투폰과 타이젠폰은 그냥 올해 내로 완성품이 나와만 줘도 성공이란 생각이다. 물론 이런 OS들의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까지 무시할 생각은 없지만, 이런 대안 OS들이 주목받은 건 좀 거칠게 말하자면 “구글과 애플과 삼성과 인텔과 화웨이와 소니와 HTC 등을 경쟁시켜 다시 우리가 甲질 해보자”는 통신사들의 희망에 따른 것이다.

사실 가장 눈에 확 띈 건 구글에 대한 통신사들의 깊어진 원한이었다. 국내외 통신사를 막론하고 구글에 대한 반감은 엄청 높아졌다. 당연한 결과다. 애플이 미우니 애플의 적은 친구였지만, 이제 애플이 밀리기 시작했으니 구글은 통신사에게 새로운 애플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삼성전자와 구글 사이의 불편한 관계를 얘기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들 가운데 누가 제일 많은가하면 바로 통신업계 사람들이다. 통신업계의 관심사는 하나다. 자기들 빼고 모두를 갈라놓기. 그런다면 힘의 균형이 이뤄질 거라고 보는 것이다. 이건 전형적인 귀족들의 행태다. 평민들의 반란은 용납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강력한 왕권도 견딜 수 없는.

그래도 구석구석 재미있는 제품들도 있어서 눈이 심심하진 않았다. 구글글래스가 요즘 화제이지만 사실 이걸 써볼 수 있는 사람들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후지쯔가 비슷한 컨셉의 제품을 선보였다. 물론 구글글래스는 안경처럼 쓰고 다니는 컴퓨터라는데 초점이 더 맞춰져 있고, 후지쯔 제품은 그보다는 디스플레이 자체에 신경을 더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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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델이라 남보기에 그럴싸하지 못해 좀 민망하지만, 전시회에서 갑자기 모델 구해서 남의 사진 찍을 수도 없어서… 어쨌든 사진에서 보듯 눈에 밀착한 흰 플라스틱 통 안에 작은 거울이 달려 있고 이 거울이 레이저를 눈으로 바로 쏘아준다. 물론 후지쯔에서는 시신경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아주 약한 강도의 레이저라고 얘기한다.(아직까지 내 눈에는 별 이상이 없다.) 레이저를 사용한 덕분에 망막에 맺히는 화상은 아주 또렷한데, 특히 배경이 어두운 곳을 바라보면 정말 TV가 눈앞에 떠있는 수준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검은색 벽을 본다거나, 검은 종이를 바라봐도 화면이 확 살아난다. 그리고 일반적인 환경위로 영상이 겹쳐지면서 투명하게도 보인다.

이게 뭐 대단한 거냐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구글글래스 같은 안경 형태 디스플레이의 가장 큰 문제는 초점이다. 한쪽에 맺힌 스크린은 두 눈동자에 서로 다른 초점거리를 강요한다. 이걸 보정해서 해결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우리 눈이 끊임없이 바라보는 거리에 따라 다른 초점거리를 맞춘다는 데 있다. 레이저로 망막에 영상을 직접 쏘아준다면 이런 움직이는 초점거리의 문제가 상당부분 해결된다. 게다가 후지쯔는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이 볼품없이 큰 기계를 실제 선글래스 크기로 소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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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후지쯔가 선보인 스마트폰. 일반적인 안드로이드폰이지만 UI를 완전히 바꿨다. 보면 알겠지만, 직관적이고 간단하다. 마치 노키아 피쳐폰을 보는 느낌. 그러니까 이른바 ‘시니어폰’이다. ‘크롬’도, 위젯도 없다. 그냥 인터넷과 지도, 카메라 등이 큼지막한 그림과 함께 나온다. 스마트폰은 스마트폰인데 피쳐폰처럼 쓸 수 있는 스마트폰이다. 의외로 이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본 기업들은 확실히 틈새를 잘 잡는다. 초고령화 사회니까 가능해 보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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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엉망으로 찍어서 영 별로지만, 이건 소니가 이번 행사 기간에 새로 공개한 태블릿Z다. 뭐 별 게 있겠어 싶은데, 막상 손에 들면 느낌이 다르다. 삼성전자가 만든 넥서스10을 처음 보면 그 커다란 크기와 중후한 디자인에 겁을 먹는데, 막상 손에 쥐면 플라스틱 재질과 고무질감 표면 덕분에 가볍고 착 감기는 느낌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무엇보다 가볍다. 기대보다 가벼워서 놀랄 정도. 이런 걸 보면 왜 태블릿을 꼭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야만 하나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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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ZTE가 만든 파이어폭스 폰. 하도 형편없다는 평가가 많아서 그런데, 싼데다 운영체제가 아주 초기라는 점을 감안하고 보면 생각보다는 괜찮다. 게다가 웹 기반이란 건 일단 안정화되면 오류도 적을 거란 느낌도 주고, 무엇보다 업그레이드도 쉬울 테다. 발전할 일만 남은 폰을 미디어들이 너무 혹평했다는 인상도 받았다. 기억에 남는 말 한마디는, 웹 기반 모바일 OS라는 게 일종의 발전해 나갈 트렌드라고 수년 전부터 주장해 왔는데 구글이 계속 미적거리다가 ‘파이어폭스 OS’가 구체화된 뒤에야 구글이 안드로이드에 크롬 브라우저를 넣기 시작했다는 주장이었다. 바꿔 말하면 구글이야말로 이 시대의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얘기다. 파이어폭스가 없던 시기에는 IE를 업그레이드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얘기.

파이어폭스는 그래서 존재 자체가 늘 고맙다. 점유율이 자꾸 떨어지는 현실은 안타깝지만. 미안하게도, 나도 크롬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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