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

그 회사에 관련된 예측은 늘 틀렸던 것 같다. ‘이 정도 제품은 누구라도 만들 수 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들만이 그런 제품을 만들었다. ‘그런 낡은 방식은 먹히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들은 그걸 먹히게 만들었다. ‘그들의 능력은 너무 제한적’이라고 비난받았지만 그들은 그 제한을 역이용해 오늘의 발전을 이뤘다.
애플 얘기냐고? 삼성 얘기다. 아무리 생각해도.

2010년 갤럭시A가 처음 나왔을 때 난 신문에 이렇게 시작하는 글을 썼다. “첫인상은 ‘미인(美人)’이었다. 모난 곳 하나 없는 유선형의 몸체는 날렵하면서 세련됐다. 그런데 하루 종일 써 보고 나니 조금 더 교양을 갖추고 절제된 자세를 보인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진정한 미인은 겉모습만이 아닌 교양과 훌륭한 인성을 갖춘 사람인 것과 마찬가지였다.” 소제목은 이렇게 달렸다. ‘특별한 디자인, 특별하지 못한 소프트웨어’.

2010년 4월이었으니, 갤럭시S4와 비교해 만으로 3년 쯤 차이난다. 삼성전자의 첫 안드로이드폰 갤럭시A는 그렇게 내가 보기엔 부족해 보였다. 2013년 3월, 3년 전을 돌아보면 그저 놀랍다고 얘기하는 걸로는 부족한 느낌이다. 3년 전 나는 ‘노키아와 모토로라의 아성에 도전하며 휴대전화 시장을 호령했던 삼성전자가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LG전자는 실제로 이 기간에 심각한 위기도 겪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오늘, 세계가 삼성전자의 신제품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취재해 보겠다며 난리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애플의 수석부사장과 삼성전자의 무선사업부 사장 인터뷰를 함께 주선했다. 망할 것 같던 회사는 어디로 갔나?

그러니까, 이제 오늘의 삼성전자는 3년 전의 애플처럼 됐다.

2010년 갤럭시A에 대해 내가 워낙 혹평을 써놓자 삼성전자에선 날 따로 불렀다. 갤럭시A를 만든 실무팀이 “기사의 평가가 부당하다”며 자신들의 개발 의도를 설명하겠다고 했다. 난 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지만, 적어도 1시간 정도 진행된 그 대화를 통해 한 가지는 느꼈다. 이들은 자신들의 제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당시 갤럭시A와 비교했던 제품은 HTC의 ‘디자이어’였다. 구글과 손잡고 넥서스원을 만들었던 이 회사는 넥서스원을 개량한 디자이어를 판매했다. 안드로이드 경험이 없었던 어떤 휴대전화 제조사도 가장 초기부터 구글과 협력해 온 HTC보다 더 나은 안드로이드폰을  만들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삼성전자 직원들은 “디자이어의 이 기능은 갤럭시에 이런 식으로 발전적으로 적용됐고, 디자이어가 화려하게 자랑하는 이 UI는 삼성전자에선 소비자가 눈치챌 애니메이션은 없지만 이렇게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며 척척 설명해냈다. 아이폰과의 비교도, 모토로라의 ‘모토로이’와 비교해도 마찬가지였다. 아이폰을 판매한지 5개월, 모토로이가 팔린지 2개월, 디자이어는 국내 판매를 시작하지도 않았던 때였다. 삼성 실무팀은 그 때 이미 당시 판매되는 세계 대부분의 스마트폰을 외우듯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도 갤럭시A가 더 느리고 답답하게 느껴진다”는 내 주관적인 느낌(사실 많은 소비자들도 그렇게 느꼈다)은 변함 없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사랑했던 제품을 최선을 다해 변호했다.

그 해 말, 삼성전자는 구글과 손잡고 ‘넥서스S’를 만든다. 한국에서는 7월에 나온 갤럭시S 하나만 갤럭시S였지만, 미국 시장에서 갤럭시S는 한국 제품과 비슷한 모델부터 시작해 키보드를 붙인 제품, 통신방식이 다른 제품 등 다양한 제품들이 모두 갤럭시S로 판매됐다.  물론 구글과 손잡고 만든 이 넥서스S도 역시 갤럭시S였다. 이것이 여러 스마트폰을 하나의 브랜드로 판매하는 삼성전자식 마케팅의 시작이었다. 그 덕분에 경쟁 제품인 아이폰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제품으로 평가받았지만, 갤럭시S는 같은 이름을 두고도 1년 내내 하드웨어가 진화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런 변화를 1년 내내 진행시키는 걸 가능하게 만든 하드웨어 개발 스피드도 효과를 봤다. 연말, ‘최고의 스마트폰’을 선정하기 시작했을 때 이 모든 능력 덕분에 갤럭시S는 이러저런 매체에서 최고의 스마트폰으로 이름을 올렸다. 모두 다 삼성전자는 안 될 것이라고 했고, 갤럭시S는 아이폰에 못 미친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갤럭시S는 최고가 됐다. 갤럭시S 정도는 누구나 만들 수 있다고 쉽게 평가절하했지만, 단 1년 동안 삼성전자는 애플 말고는 경쟁자가 없을 수준까지 자신들의 기술 수준을 높여놨다.

그리고는 전형적인 낡은 방식이 이어졌다. 삼성은 수직계열화된 부품 경쟁력을 이용해 제조원가를 낮추면서도 제품 품질을 높였고, 마케팅 전문가 최지성 부회장이 이끄는 마케팅팀은 처음에는 촌스럽다는 비난을 받던 ‘갤럭시’ 브랜드를 반짝이는 은하수의 이미지로 성공적으로 바꿔 놓았다. 비결은 간단했다. 엄청난 광고물량(promotion), 세계 각국의 통신사와 맺은 굳건한 영업제휴(place), 대안을 찾을 수 없는 좋은 품질의 안드로이드폰(product), 그러면서도 아이폰보다 싼 가격(price). 마케팅의 4P 원칙이었다. 애플은 멋진 광고, 애플스토어라는 자체 영업망, 아이폰이라는 유일무이한 제품, 대중이 살 만한 가격이란 나름의 원칙이 있었지만 시장에는 애플의 우군이 적었다. 애플은 독보적 1위라서 늘 외로웠지만 삼성전자는 대안을 찾는 모든 반 애플 전선 기업의 유일한 대안이었다. 적의 적끼리는 그렇게 쉽게 손을 잡을 수 있었다. 낡은 방식 같았지만 이 낡은 방식을 삼성전자보다 잘 해낸 곳이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도 “삼성이 소프트웨어는 형편없게 만든다”는 비판은 여전히 존재했다. 애플은 훌륭하게 자신들의 운영체제와 앱스토어,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만들어내는데 삼성은 구글에 의존할 뿐, 대만이나 중국의 하드웨어 OEM 업체와 다를 바 없다는 얘기였다. 여기부터 삼성은 삼성만의 방법을 만들어 낸다. 세계 최대의 OEM 업체처럼 행동하겠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구글이 애플의 앱스토어에 대항하겠다며 구글 플레이스토어 등을 만들 때 수많은 휴대전화 제조사들은 하드웨어에 대한 자신들의 통제력이 줄어든다는 걸 한탄하기만 했다. 자신들이 구글의 공장이 되어간다는 탄식이었다. 삼성은 한숨을 쉬는 대신 인기 앱 개발사들과 번들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드롭박스를 갤럭시에 기본 앱으로 설치해 줄까?”, “플립보드를 1000만 대 쯤 판매하는 폰에 기본 설치하면 어떻겠어?” 삼성의 제안은 작은 앱 개발사들에게는 매력적이었다. 구글 플레이의 메인 화면에 자신들의 앱이 소개되어봐야 1000만 대에 앱을 설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삼성의 제안은 매력적이었고, 삼성은 멍청한 OEM 업체가 아니라 ‘갤럭시를 플랫폼으로 만든 회사’로 변신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갤럭시S4가 나왔다.

갤럭시S4에는 4.2.2 버전의 안드로이드 젤리빈 운영체제가 설치됐다. 최신 OS다. 이때까지 삼성은 넥서스S와 갤럭시 넥서스, 넥서스10에 이르는 3가지 레퍼런스 기기를 만들었다. 넥서스 스마트폰/태블릿 모델은 총 6가지, 이 가운데 절반을 삼성이 만든 것이다. 이제 삼성은 언제든 원하는 순간에 가장 최신의 안드로이드 OS를 자신들의 스마트폰에 설치할 수 있는 노하우를 쌓았다. 비슷한 시기 공개된 소니의 엑스페리아Z와 HTC의 원(One)은 모두 작년에 나온 4.1 버전을 사용한다.

안드로이드를 이해한 상태에서 삼성은 시선을 스마트폰 화면 밖으로 돌리면 동영상이 멈추는 ‘스마트 포즈’라거나, 이메일이나 전자책을 읽을 때 시선과 스마트폰의 기울기에 따라 화면을 위아래로 움직여 주는 ‘스마트 스크롤’, 손가락을 화면 위로 올리면 내용을 미리 보는 ‘에어뷰’ 등 갤럭시에서만 돌아가는 기능을 잔뜩 소개했다. 개별 기능에 대해 할 말은 별로 없다. 다만 화면 위에서 터치 없이 손만 움직이면 전화를 받거나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에어 제스쳐’ 등은 아마존이나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같은 콘텐츠 앱이 탐낼만한 인터페이스다. 이를 지원한다는 건 ‘갤럭시 플랫폼’이란 개념을 아마존이나 스포티파이가 확산시켜주는 시나리오가 가능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또 이메일과 문자메시지 등을 자동으로 송수신과 함께 번역해 주는 ‘S트랜슬레이터’는 구글 번역보다 품질은 떨어질는지 몰라도 기계와의 통합에 따른 빠른 속도와 편의성 때문에 널리 쓰일 가능성이 높다. 갤럭시S4에는 적외선포트를 사용한 통합리모컨 기능과 앞뒤 카메라를 동시에 사용해 동영상 녹화를 하는 ‘듀얼샷’ 등의 기능도 있다. 많이 봤던 것처럼 보인다면, 이런 기능이 팬택 스마트폰이나 LG 스마트폰이 갖고 있던 기능이기 때문일테다. 그런데 이들은 삼성처럼 단일 모델을 수천만 대 씩 판매하는 회사가 아니다. 이런 기능이 주목받게 되는 유일한 이유는 갤럭시에 이런 기능이 사용됐다는 점이다. 삼성이 아닌 외부 업체들도 수천만 명의 갤럭시 소비자 시장을 위해 기꺼이 삼성의 제안을 받아들일 이유 말이다.

S헬스 기능은 또 어떤가. 일종의 개인 건강관리 도우미인 이 기능은 갤럭시S4하고 호환되는 서드파티 기기를 이용해 다양한 건강관리를 돕는다. 나이키의 ‘퓨얼밴드’ 같은 액세서리가 ‘안드로이드용’이 아니라 ‘갤럭시용’으로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헥사 밴드 LTE’ 사용도 눈에 띈다. 최대한 갤럭시S4를 단일 모델에 가깝게 만들어서 세계에 동시 판매하겠다는 뜻인데, 생각해 보자. 이미 한국에서는 안드로이드 파편화의 문제를 갤럭시 시리즈만 대상으로 테스트하는 방식으로 소수 사용자를 버리고 넘어가는 앱 개발자들이 많다. 삼성이 계획대로 갤럭시S4를 1억 대 판매한다면, 갤럭시 플랫폼은 1억 명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시장이 된다. 이래도 삼성이 멍청한 하드웨어 OEM 업체일까?

그러니까 지금의 삼성은 3년 전의 애플 역할을 하기 시작했고, 당연히 구글과 묘한 경쟁 상황에 들어가게 됐다. 물론 삼성과 구글의 경영진들은 공식적으로 이런 관측을 부인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삼성은 1년 중 가장 중요한 행사에서 구글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은 걸까. 왜 구글 간부가 한두 명 초청돼 무대에 오르지 못했을까? 왜 구글은 넥서스4를 LG와 만들고, 모토로라를 통해 제대로 된 ‘X폰’이라는 하이엔드 스마트폰을 선보이겠다면서 마이웨이를 고민하는 걸까? 이들의 강한 부인은 립서비스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여전히 삼성에는 뭔가가 부족하다. 매력이다. 구글이 뭔가를 시작하면 전 세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의 가슴 속에는 열정이 끓어오른다. 요즘은 여기저기서 퇴색한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구글은 개방과 공유의 상징이다. 애플이 뭔가를 벌이면 충성스러운 소비자들이 환호한다. 애플은 세상에서 가장 쿨한 기업이라고 생각하는 팬들이 전 세계에 존재한다. 삼성이 뭔가 중요한 일을 시작할 때 소리를 지르며 환호하고 박수를 치는 건 누구일까. 삼성에겐 아직 경쟁이 끝난 게 아니다. 이제 출발선이 비슷해졌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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