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음악

매번 그렇듯 휴고 바라가 호들갑스럽게 동료를 소개했다. “이 친구를 떠올리면 늘 음악 생각이 나죠. 구글의 록스타입니다. 크리스 여가를 환영해 주세요.” 그리고 지겹도록 변하지 않는 인상과 헤어스타일의 무뚝뚝한 백인 중년 남성이 무대로 걸어나왔다. 가슴에는 흰색 구글 티셔츠를 입고. 록스타라고?
그리고 재미없는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됐다. 무심한 듯 몇 가지를 소개하다가, “새 음악 서비스에 대해 혹시 알고 싶으세요?”라고 시큰둥하게 말했다. 열광적인 박수가 쏟아져야할텐데 TV 너머로 들려오는 현장의 반응은 그저 그런 듯 들렸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서비스라는 듯 새 음악 서비스를 소개했다. 월 9.99달러, 구글이 재전송 라이선스를 구입해 서비스하는 수백만 곡의 음악 전부를 자유롭게 들을 수 있는 가격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어디에서나. 그래서 이름도 ‘올 액세스'(All Access)다. 도대체 서비스를 만들 때 무슨 생각을 하고 만드는 걸까?

하지만 이렇게 성의없이, 이렇게 평범하고 지루하게 소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올 액세스는 충분히 매력적인 서비스다. 새벽 4시가 넘어서까지 이어진 키노트가 끝나고 좀 자고 일어나 제일 먼저 구글 뮤직 업데이트부터 했다. 미국에서만 서비스, 첫 달은 무료. 여기는 한국이지만 늘 방법은 있게 마련이다. 미국 IP로 우회하고, 미국 신용카드를 요구하긴 했지만 갖고 있는 모든 신용카드를 다 넣어봤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가 승인됐다. 그리고 음악 재생.

가장 인상적인 건 추천이다. 알고리듬을 어떤 기준으로 만들었고 어떻게 개선해 나가는지에 대한 설명은 듣지 못했는데, 그래도 꽤 잘 찾아준다.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을 골랐더니 사운드가든이나 스매싱 펌킨스를 추천해 주는 건 물론이고, 아마도 그 시절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개 좋아할 법한 건스앤로지즈까지 추천 대상에 올라간다. 카를라 모리슨을 택했더니 딱 내가 좋아할 취향의 라틴 음악들이 나온다. 에픽 하이는 하필이면 박봄이 피처링한 노래를 골랐기 때문인지 걸그룹이 따라나와서 의외이긴 했는데, 클래지콰이도 함께 나오는 걸로 보아 이건 라이선스된 한국 음악의 절대 숫자가 적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타다 히카루를 골랐을 땐 일본 여성 솔로 가수의 노래가 잔뜩 추천됐으니까.

두번째로 좋았던 건 속도. 3G를 쓰는데도 음질이 딱히 나쁘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고, 아무 노래나 듣다가 그 노래에서 ‘라디오 시작’을 눌러도 바로바로 새 재생목록이 만들어진다. 구글의 컴퓨팅 파워 덕분이다. 구글이 클라우드로 뭘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걸 보고 있으면 이대로 구글이란 매트릭스 속에 들어가 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난 요즘 같은 세상에서 사람들이 예전처럼 음악이나 영화, 드라마, 책 등의 콘텐츠를 낱개로 사들여 소유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인터넷은 그런 모델을 죽였다. 대신 이런 식의 스트리밍 서비스가 계속 늘어나 확대되리라 생각한다. 음악만이 아니라 책과 영화, 드라마 등 모든 콘텐츠가 전부. 그렇게 되면 과거 사람들이 생계를 해결하는데 바빠 누구도 예술 작품을 사지 않던 시절에도 예술가들이 왕과 귀족, 성직자 계급의 후원으로 먹고 살았던 것처럼, 인터넷에 값싼 콘텐츠가 넘쳐 누구도 예술 작품을 사지 않는 시절이 와도 사람들의 스트리밍 이용료가 시민의 후원금으로 쌓여 작가들을 후원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어쨋든 과연 나는 이 서비스를 앞으로도 계속 쓸까. 아이튠즈 매치는 1년에 약 25달러, 월 2달러가 약간 넘는 돈을 낸다. 개별 음악파일 구매는 알아서 하라고 하고. 그래서 나는 KT에서 월 50곡을 다운로드 받고 스트리밍도 하는 서비스를 같이 쓰는데 이게 월 약 1만 원 쯤 한다. 구글 올 액세스는 다운로드가 안 되고 스트리밍만 하지만 약 10달러, 1만 원이 넘는다. 한국에서 구글 올 액세스처럼 스트리밍만 하는 서비스는 대개 월 약 4000원 수준에 서비스가 되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돈으로 서비스를 비교한다면 구글 올 액세스는 별 장점이 없다.

하지만 음악 서비스를 들을 때마다 제일 아쉬운 건 좋은 음악을 새로 발견하는 일이다. 인기차트에 오르내리는 음악도 좋지만, 운이 나빠 묻혀 있었던 보석같은 음악을 새로 알게 되는 건 훨씬 즐거운 경험이다. 값이 싼 국내 서비스는 이런 추천 기능을 위해 실시간 차트를 만들고, 사용자들에게 ‘공개앨범’ 같은 걸 만들게 해서 취향이 비슷한 사람이 고른 노래들을 들어보도록 돕기도 한다. 하지만 이 과정은 모두 손으로 이뤄지고, 차트를 찾아가고 선곡표를 찾아가야 한다. 역시 불편하다. 그래서 미국에 출장을 가면 늘 판도라를 하루 종일 틀어놓곤 했다. 노래를 몇 곡 골라 듣다보면 아마도 내가 좋아할 음악을 기가 막히게 짐작해 새로운 노래를 추천해줬으니까.

구글 올 액세스도 판도라 같은 경험을 만들어 주는 해답이 될까. 지금까지는 믿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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