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의 협상

스티브 잡스가 뉴스코프의 제임스 머독과 아이패드 발매를 앞두고 주고받은 이메일이 얼마전 공개됐다.
협상가로서의 스티브 잡스는 늘 유명하지만, 이 이메일들은 특히 인상적이다. 원래 협상의 실무란 지난한 일이다. 그건 실무자들의 영역이고 이 경우도 마찬가지라서 협상 담당은 애플의 에디 큐와 뉴스코프 자회사(이자 담당회사)인 하퍼콜린스의 CEO인 브라이언 머레이였다.

그리고 ‘끝판왕’인 제임스 머독이 막판에 나타나 이 최종 협상안을 뒤집겠다는 얘기를 한다. 협상에서 협상 최종결정권자는 도장 찍기 직전 아니면 협상에 등장하지 않는다. 자기 선에서 밀리면 거기에서 협상이 끝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머독이 직접 협상 테이블로 나왔다는 건 애플이 워낙 완고해서 이미 애플의 제안을 그대로 받든지, 아니면 포기하든지 두 가지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 이메일 대화는 뭔가가 이뤄지고 변했음을 뜻하지 않는다. 10달러와 13달러라는 가격 차이가 문제라고? 왜 애플과 다른 가격에 다른 유통사에 책을 팔면 안 되느냐고? 좀 더 시간을 가져보면 안 되느냐고? 다 거짓말이다. 그건 그냥 편지 서두에 쓰는 날씨 얘기 같은 겉치레에 불과했다.

머독은 스티브 잡스에게 끊임없이 “우리는 이런 걸 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한다. 애플이 로열티 조항을 완화한다면 우리는 좋은 가격 딜을 주겠다, 애플이 협상 기간을 늘려준다면 더 좋은 대안을 내겠다, 잡스가 전화한다면 나는 영국에서 주말이지만 바로바로 답하겠다, 는 식이다. 이게 진짜다. 머독은 “우리가 지금 애플과의 협상에서 약자입니다”라는 얘기를 한 것이다.

그래서 잡스가 한 건 이런 얘기를 하는 파트너가 원하는 걸 제공하는 일이었다. ‘명분’ 말이다. 잡스는 “아마존이고 애플이고 모두 못 믿는 건 상관없는데, 적어도 애플은 아마존보다 훨씬 나은 대안이니 둘 다 써보고 비교해 달라”고 말한다. 다른 얘기는 다 수사다. “우리가 아마존보다는 착하거든요”라는 한 마디, 이 얘기가 핵심이다. 머독이 잡스에게 설득당해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을까? 천만에. 이 이메일이 죽은 스티브 잡스의 책상에서 나왔을 리가 없다. 제임스 머독이 머레이에게 메일 내용을 전달한 뒤 “뉴스코프의 실질적 지휘자로서 나는 이 만큼 노력했다”는 생색을 냈을 테고, 뉴스코프 내부에서 돌고 돌았을 것이며, 그래서 법원에도 증거물로 올라갔겠지.

그러니까 좋은 협상가의 조건은 상대가 실질적으로 원하는 걸 찾아내는 능력이다. 이른바 BATNA(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 말이다. 이 계약의 막바지에 서 있는 스티브 잡스에겐 다 만들어 놓은 판을 깨지 않는 게 배트나였다. 이를 위해선 하퍼콜린스에게 립서비스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만 상황이 나빠지면 계약은 깨도 된다. 그리고 머독에겐 머레이의 징징거림을 달랠 명분이 배트나였다. 아무리 봐도 애플의 계약안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경쟁사들이 다 그랬으니까.) 그러니 주말도 잊고 노력해서 잡스에게 립서비스를 받는 게 영화와 방송, 출판, 신문을 소유한 거대 미디어 기업 2세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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