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sing Mavericks

mavericks난 서핑은 할 줄도 모르고, 잘 알지도 못하지만 지난해에 개봉했던 영화 체이싱 매버릭스(Chasing Mavericks)는 정말 재미있게 봤다. 실존했던 서퍼 제이 모리아리티의 전기 영화인데, 가장 인상적인 건 매버릭스의 큰 파도를 타기 위한 과정이었다. 서핑에 대한 지식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무식한 나는 서핑이라고 하면 햇살 따사로운 태평양 해변에서 멋진 수영복을 입고 여자들 앞에서 폼이나 잡는 일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큰 파도를 타는 서퍼들은 달랐다. 큰 파도는 바람과 함께 오는데, 그 중에서도 매버릭스에 나타나는 기록적인 파도는 겨울에 주로 찾아오기 때문이었다. 이런 파도를 타는 진짜 서퍼들은 햇살 따뜻한 한낮의 여름 바다에서 폼을 잡는 대신, 악조건이 다가올 때에야 비로소 길을 나선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쌀쌀한 북부 캘리포니아의 겨울에 이들은 비바람을 예고하는 라디오 일기 예보만 노심초사 기다리다가, 악천후 소식에 환호하면서 캄캄한 새벽에 차를 몰고 바다로 나간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바다 위에서 새벽 태양과 함께 모든 걸 집어 삼킬 듯 밀려오는 집채만한 파도를 향해 널빤지 하나만 의지한 채 몸을 내던진다.
매버릭스는 1975년 제프 클락이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서핑에 성공할 때지만 해도 서핑 하기에는 너무 큰 파도로 받아들여졌다.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이 파도에 도전하게 된 건 그 뒤로도 15년이 더 지난 1990년 부터다. 영화의 주인공 제이는 1994년, 겨우 16살이 됐을 때 매버릭스를 탔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의 전설이 됐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제이가 서핑을 배운다는 건 파도 위에서 한가롭게 노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었다. 여기서 서핑이란 배도 뒤집어버리는 큰 파도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살아남기 위해 서퍼들은 숨을 4분까지 참는 법을 익히고, 근육을 단련하며, 상어를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력을 키운다.

애플이 새 맥OSX을 만들면서 그동안 써 왔던 호랑이, 사자, 재규어 같은 고양이과 동물 이름을 버리고 택한 캘리포니아의 지명 이름 시리즈의 첫 OSX 이름이 매버릭스라는 건 그래서 상징적이다. 서퍼들을 집어삼키는 파도로 유명한 그 곳. 아무나 매버릭스에서 서핑을 할 수는 없는 일이고, 이곳에서 서핑을 한다는 건 목숨을 거는 일이지만, 동시에 매버릭스를 타는 서퍼가 된다는 건 서퍼로서 최고라는 뜻이기도 하다. 애플에게 과연 매버릭스보다 더 적절한 이름 선택이 있었을까.

애플의 지난 2년을 돌아보면 암담했다. 전설의 리더는 그들을 떠났고, 전설의 리더가 만들어 놓은 팀은 분해되기 시작했다. 미디어는 새로 내놓는 제품마다 ‘스티브 잡스의 유작’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경쟁자들의 추격은 거센 파도 정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매버릭스 수준이었다. 주가는 곤두박질 쳤고, 한 때 애플을 ‘미국의 자존심’으로 일컬으며 애플의 편을 들었던 정치권에서까지 애플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파도가 몰려올 때 쉬운 선택은 파도를 피하는 것이지만, 어려운 선택은 파도에 정면으로 맞서는 법이다. 이번 WWDC 발표에서 애플이 보여준 건 이런 정면 대응이었다.

이 비디오는 다시 볼 때마다 애플이 어떤 회사인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애플이란 원래 사회 부적응자이고, 반항아이며, 문제아였다. 네모난 구멍에 박혀 있는 동그란 못 말이다. 이 비디오에서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예를 들었지만, 사실 전자기기 제조업체 가운데 애플처럼 취향(taste)을 반영한 제품을 만드는 회사란 과거의 소니말고는 생각나질 않는다. 사실 지난 2년 동안 애플은 완벽하게 자신들의 취향을 잃어왔다. 회사의 기본 철학이 ‘다르게 생각하는 것’인데, 이들은 다르게 생각하기는 커녕 회사 전체가 스티브 잡스 추모 모드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잡스의 시대에 만들던 것 같은 제품들의 ‘조금 나아진’ 후속판들만 계속 공개됐다.

이번엔 달랐다. 필 실러는 발표 일정도 정해지지 않은 새 맥 프로를 자랑스레 보여줬고, 새로운 프로모션 비디오는 몇 마디의 문구를 담은 글자와 점, 선, 면으로만 완성된 ‘디자인’부터 총천연색 TV 광고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됐다. 심지어 레드 제플린을 데모 음악으로 쓰는 일이 생겼고, 경쟁사에 대한 비아냥을 점잖게 가리는 일도 사라졌다. 각각의 발표자들은 모두가 스스로 주인공이 되려는 듯 자신의 성과를 자랑했다. 다양함이 솟아났고, 일관성은 사라졌다. 번잡스러웠지만, 그게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 질서가 생겼다는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든 건 디자인’이란 투로 이번 발표를 얘기하지만, 오히려 눈에 띄는 건 엔지니어링과 서비스다. 어떤 OS도 보여주지 못했던 깊이감을 가진 새 iOS7은 디자인 팀의 상상력 덕분에 만들어진 새 개념이지만 동시에 이를 가능하게 하는 엔지니어링 덕분에 현실이 됐다. 중력센서로 화면을 기울일 때 여러 장의 레이어에 깊이감을 만들어내는 게 단순히 장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런 식의 인터페이스는 상하좌우로 화면을 ‘평면적으로’ 밀어내는 것 말고는 아무런 동작도 할 수 없던 기존의 스마트폰 OS에 깊이감을 만들어냈다. 에디 큐의 서비스도 달라졌다. 아이북스가 맥으로 자리를 넓힌 것도 인상적이지만, 이른바 아이라디오가 결국 나왔다. 구글의 올 액세스 음악서비스가 아주 좋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이라디오도 똑같이 좋은 음악을 사용자의 취향에 기반해 소개해 준다. 다만 주안점이 다르다. 구글이 강조하는 건 어떤 음악이든 소유하지 않고 클라우드에 두고 들을 권리다. 애플이 강조하는 건 소유하는 음악에 기반한 새로운 발견이다. 다르게 설명하자면, 구글의 올 액세스를 쓴다면 새 음악을 발견하긴 상대적으로 힘들어도, 한 번 발견한 음악은 내 음악처럼 찜해놓고 몇 번이고 들을 수 있다. 반면 애플의 아이라디오를 쓴다면 한 번 발견한 음악을 내 음악처럼 몇 번이고 들으려면 돈을 내고 그 음악을 사야 한다. 하지만 ‘살 마음이 들 법한’ 음악을 끊임없이 들려주면서 새 음악을 발견하게 한다. 심지어 세상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신보를 독점 제공하면서까지. 그러니까, 이건 이런 뜻이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애플이 모든 걸 다 잘하던 시대는 끝났다. 하지만 이들은 대신 애플 방식으로 모든 걸 만들기 시작했다.

스티브 잡스가 팀 쿡에게 했던 마지막 충고는 “나라면 어떻게 할지 생각하지 마세요”였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이제야 자신들의 위대했던 옛 리더의 그늘에서 벗어난 것 같다. 옛 시대는 끝났고 이제 매버릭스의 시대가 왔다. 파도는 어느 때보다 높고 거칠고 두렵지만, 파도 위에 올라서야 파도를 탈 수 있는 법이다.

Advertisements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