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 and Frequ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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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이 발발한 1936년의 스페인은 여전히 농업 국가였다. 게다가 대공황이 미국은 물론 유럽대륙의 경제까지 엉망으로 만들어서 내정도 극도로 불안했다. 정치세력은 무정부주의자부터 왕당파에 이르기까지 극단적으로 분열돼 서로 대립하고 있었고 모로코에선 프랑코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킨다. 민주 정부를 세워 보겠다던 공화파의 편에 사회주의자들이 합세하자 인민전선이 구성됐고, 이는 이후 파시스트와 인민전선 사이의 스페인 내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내전은 곧 모두의 전쟁이 됐다. 농민과 노동자는 지주와 자본가를 상대로 싸웠고, 파시스트 이웃 국가였던 히틀러의 독일과 무솔리니의 이탈리아는 프랑코의 편을 들었다. 신생 사회주의 국가였던 소비에트 연방은 인민전선을 지원했고 파시즘의 광기를 우려한 유럽과 미국의 지식인들도 자원해서 내전에 참전해 인민전선 편에 섰다.

문제는 땅이었다. 땅과 자유. 발을 디디고 몸을 누일 곳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져야 하는 기본 권리 말이다. 그런데 스페인에선 이게 그렇게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무능한 왕정은 자유를 억압했고, 프랑코의 파시스트 정부도 자유를 빼앗아갔다. 땅은 지주와 교회의 소유였고,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늘 가난에 시달렸다.

프랑코와 지주, 그리고 교회는 땅을 자신들의 소유물로 여겼다. 교회의 땅은 신의 대리인인 자신들을 위해 세속 권력이 양도한 침범 불가능한 재산이었다. 지주들의 땅도 대대로 세습되어 온 재산이었다. 프랑코는 충실히 이런 질서를 지켜나가고자 했다. 이들에게 땅은 ‘우리 것’이었다. 하지만 농민들의 생각은 달랐다. 랜드앤프리덤은 인민전선이 파시스트로부터 수복한 지역에서 벌어지는 토지 분배 논쟁을 아주 디테일하게 긴 시간을 할애해서 보여준다. 땅은 누가 가져야 하나? 답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다. 땅이 필요한 사람이 가져야 했다. 이들에게 땅은 ‘우리 것’이 아니라 ‘필요한 자의 것’이었다.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결국 이들은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뤄낸다. 그리고 소련이 등장한다. 소련이 원하는 건 자신들이 파시스트에 맞서 싸웠다는 대의명분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이권이라도 챙기면 더 좋았다. 게다가 소련의 붉은 군대는 애초에 오합지졸인 인민전선 의용군들과 자신들이 동급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들에게 땅은 토론을 통해 합의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 그냥 ‘당의 것’이었다.

길게 영화 얘기를 꺼낸 건 주파수 논쟁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LTE 통신망에 쓸 수 있는 신규 주파수를 새로 할당할 계획이라 통신업계가 시끄럽다. 시끄러운 이유는 간단하다. KT가 이번에 나오는 새 주파수 가운데 특정 대역을 낙찰받으면 별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갑자기 LTE 속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KT 가입자들만 좋은 일이 생기고, 경쟁의 균형이 깨진다. 그렇다고 KT에게 이 대역을 할당하지 않으면 모두 그대로다. 누구도 좋아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걸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시각으로도 보고, ‘공정 경쟁을 저해하는 특혜’로도 본다. 그런데 구도를 조금 더 넓혀서 생각해 보자.

통신사들은 스페인 내전 당시의 지주 계급 같다. 자신들의 울타리 바깥은 볼 생각도 없고, 존재를 인정할 마음도 없다. 지주들끼리도 재산권을 두고 다툼을 벌인다. 하지만 땅은 늘 자신들의 것이다. 통신사의 주파수도 마찬가지다. 다툼은 벌이지만 이건 통신사의 전유물이다.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이외의 누군가가 이 다툼에 끼어들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소비에트 연방 같다. 통신사들이 싸움을 벌이는 걸 잘 관리하면서 ‘국민을 위했다’는 대의명분만 지킬 수 있다면 그만인 듯 싶다. 애초에 통신사가 아닌 누군가의 존재는 정부 또한 생각도 하지 않았다. 소련군이 인민전선의 의용군을 쳐다볼 맘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다면 인민전선은? 정말로 땅이 필요한 사람들은?

미국에선 주파수 경매에 구글이 입찰했던 적이 있다. 버라이즌이나 AT&T 같은 이동통신사가 통신망을 쥐고 타 사업자들의 진출을 꽁꽁 막았기 때문이다. 통화료는 비쌌고, 스마트폰 같은 건 쓸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직접 통신사를 차리겠다는 식으로 구글이 경매에 뛰어들었다. 통신사들은 강하게 반발했지만 구글은 거침없었고, 경매 참가자의 자격으로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에 낙찰되는 주파수는 낙찰을 받지 못한 사업자에게도 개방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구글의 메시지가 스마트폰으로 오가는데 통신사가 데이터 사용료 이외에는 한 푼도 구글이나 소비자에게 요구하지 못하게 된 것도 구글이 이렇게 경매에 뛰어든 덕분이다. 아이폰을 만드는 애플도 다르지 않았다. 버라이즌과 AT&T에게 통화료를 낮춰야 소비자들이 아이폰을 제대로 쓸 수 있다며 통화료 인하를 요구했다. 하지만 통신사들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러자 스티브 잡스가 “그렇다면 애플이 통신사(MVNO)를 차려서 통신 시장에 진출해 경쟁하겠다”고 통신사를 협박한다. 결국 AT&T가 먼저 두 손을 들고 애플이 원하는 요금제를 만들어 줬다.

이런 기업들이 바로 주파수가 필요했던 사람들이다. 땅이 필요했던 인민전선의 농부들처럼. 한국에서 NHN이 경매에 뛰어든다면 어떨까. 지금도 스마트폰에서 프로야구 중계를 고화질(HD)로 한다고 통신사들로부터 욕을 먹는데, 그냥 통신망을 하나 만들면 어떻게 될까. 카카오도 마찬가지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한국같은 곳은 없다”며 통신사들이 보이스톡을 차단하는 걸 ‘말로만’ 욕해봐야 그들이 눈 하나 꿈뻑하겠나. 그냥 자기 통신망에서 무료 통화 하면 명분도 되지 않나. 엔씨소프트나 넥슨은 또 어떤가. 온라인 게임이 망에 큰 부하를 준다는 소리도 이제 들을 만큼 들은 것 아닐까. SK텔레콤의 시가총액은 약 17조 원, KT는 약 9조 원이다. NHN은 약 13조 원, 엔씨소프트는 약 3.5조 원이다. 비교해 봐도 통신사보다 그렇게 작지도 않은 건 물론이고, 이익 규모로만 따지면 인터넷 기업들이 훨씬 크다. 뒤에 물러서서 말로만 떠들어봐야 얘기가 될 리 없다. 평생 펜대만 굴리던 유럽의 지식인들도 스페인에 가서 직접 총을 들지 않았던가.

땅은 주파수와 다르다고 할지 모른다. 글쎄? 사적 소유가 없어서?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자본주의 경제구역으로 늘 1위를 하는 홍콩에서도 땅은 모두 국가의 소유다. 대신 기업과 개인 등은 장기 사용권을 정부에게서 임대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라가 너무 작아서 이걸 개인 소유로 돌리고, 세습하게 놓아두면 홍콩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주파수도 똑같지 않나.

NHN과 카카오, 엔씨소프트 같은 회사들이 주파수 경매에 뛰어드는 게 불가능한 이유는 늘 이런 얘기를 꺼낼 때마다 100가지씩 듣는다. 구글이 처음 주파수 경매에 관심을 가질 때도 주변 사람들이 비슷한 얘기를 100가지 이상씩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누구도 아이폰이 이렇게 성공할 줄 몰랐을 테고, 구글이 세계 최대의 모바일 기업이 된 오늘날도 상상하지 못했을 테다. 울타리를 넘어서는 한국 기업들은 언제나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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